
대표님, 이 주제는 지금 대표님이 연구하고 계신 시스템 코칭, 소마틱 리더십, AI 시대 조직문화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컬럼이 될 것 같습니다.
저라면 "폭염"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경험에서 시작해 시스템적 코칭으로 확장하겠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은 이제 계절의 특징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습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감정, 관계, 그리고 일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폭염이 계속되면 수면의 질은 떨어지고 피로는 쌓입니다. 피로는 짜증을 만들고, 짜증은 공감을 줄이며, 공감의 감소는 협업을 어렵게 만듭니다. 결국 기후는 몸을 통해 조직문화를 변화시킵니다.
많은 기업은 AI 도입을 준비하면서 디지털 전환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조직이 함께 준비해야 할 또 하나의 전환은 생태적 전환(Ecological Transition)입니다.
시스템적 코칭에서는 조직을 사람들의 집합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태계로 봅니다. 따라서 문제도 개인에게서 찾기보다 관계와 흐름에서 찾습니다. 폭염 속에서 구성원의 집중력이 떨어졌다면 "누가 게으른가?"를 묻기보다 "우리 시스템은 지금 사람들의 몸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하반기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과를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에너지 상태를 진단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팀의 에너지는 어떤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지치고 있는가?"
"어떤 환경이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감정 체크가 아닙니다. 시스템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둘째, 몸을 회복시키는 리듬을 설계해야 합니다.
AI 시대에는 생각을 많이 쓰지만 몸은 점점 덜 사용합니다. 여기에 폭염까지 더해지면 신체는 쉽게 피로해집니다. 회의 전 3분간 호흡을 맞추거나, 짧은 산책 회의를 하거나, 자연광이 있는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팀의 긴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소마틱 관점에서 몸의 회복은 곧 사고의 회복이며, 관계의 회복입니다.
셋째, 정서를 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리더의 불안은 조직 전체로 퍼질 수 있고, 반대로 리더의 안정감도 조직 전체에 전염될 수 있습니다. 시스템적 코칭에서는 이것을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관계 속을 흐르는 에너지로 이해합니다. 하반기에는 정기적으로 "이번 주 우리 팀이 감사했던 순간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다시 힘나게 했는가?"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넷째, 성과의 기준을 확장해야 합니다.
AI 시대의 성과는 단기 생산성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성원이 성장했는가, 팀의 신뢰가 높아졌는가, 고객과 사회에 더 좋은 영향을 주었는가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지속가능한 조직은 숫자만이 아니라 관계와 회복력을 함께 관리합니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생태계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피터 호킨스가 말하는 재생적 리더십은 조직을 사회와 자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봅니다. 리더는 더 이상 사람만 관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조직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조직과 자연의 관계를 함께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AI는 업무를 더 빠르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조직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하반기는 성과를 다시 설계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조직의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건강한 조직은 가장 뛰어난 AI를 가진 조직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정서를 돌보고, 관계를 회복하며, 사회와 지구까지 함께 생각하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창한 전략보다 리더의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 팀이 더 건강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리더십은 그 둘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조직과 사회, 인간과 자연을 다시 연결하는 일입니다.
AI 기후변화는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짐으로 우리의 사고를 확장합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마음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리더십도 사람을 관리하는 기술을 너머 , 관계를 회복하고 생태계를 돌보는 지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