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헬리콥터] 다정함, 그리고 수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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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헬리콥터] 다정함, 그리고 수학에 관하여.

한국계 이민2세가, 애슐리 스튜어트라는 회사를 파산 위기에서 흑자 전환시킨 비결에 대해 쓴 경영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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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원
연승원Aug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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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도 잠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경영서를 읽고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레드 헬리콥터]는 분명 한 기업의 극적인 턴어라운드를 다루는 책이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때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재무제표의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지켜낸 '다정함'이었다.

제임스 리는 파산 3주 전, 22년간 단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한 회사의 키를 잡았다. 리테일 경험도 없는 사모펀드 투자자가, 그것도 자신과는 인종도 배경도 다른 저소득층 흑인 여성 패션 브랜드를 살려내겠다고 나섰던 것은, 출발선부터 이미 많은 이들이 퀘스천을 품고 말리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를 구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재무 전략에 앞서 '사람'에서부터 출발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고 와닿았던 챕터는 5장, '균형'이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여러 조직문화 연구들이 ‘동지애’와 ‘유머’가 생산성에 필수적임을 보여준다는 것. 이 문장이 실은 이 책 전체의 뼈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오래도록 조직에서의 '따뜻함'을 생산성과는 별개의, 심지어 대립하는 가치로 여겨왔다. 웃음과 유대는 사치스러운 여유이고, 진짜 성과는 냉정한 숫자와 규율에서 나온다고 믿어온 것이다. 그러나 저자 제임스 리는 그 오래된 이분법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무너뜨린다. 동지애와 유머,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는 생산성의 장식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말이다.

그가 파산 직전의 애슐리 스튜어트에 가져온 것은 두 개의 언어였다. 하나는 한국말로 '정(情)'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정함]의 언어. 다른 하나는 매출과 비용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읽어내는 [수학]의 언어였다. 신기한 것은 이 둘이 그의 안에서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확한 숫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그는 어디에 다정함을 쏟아야 할지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었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냉정한 구조조정의 순간에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았다. 그 균형의 결과로, 이미 미국의 언론에 수년 전에 많이 알려졌지만(많은 언론에서 다루어짐) 파산 직전의 회사는 몇 년 만에 이례적인 반전을 이루어냈고, 온갖 상을 휩쓸 만큼 센세이셔널한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리는 이 책에서 경영의 비법만을 전수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민자 2세로서 겪었던 소외, 주류가 되지 못했던 오랜 시간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잃지 않았던 특유의 긍정성과 감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특히 부모님을 향해 써 내려간 문장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읽던 속도를 늦추게 되었다. 답답할 정도로 헌신하고 성실한 부모에게 느끼는 애틋함과 먹먹함, 그 언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이 페이지 사이로 배어 나왔다. 이것은 비주류였던 한 소년이 자신의 언어와 정서를 잃지 않은 채 결국 주류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을 증명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회사 밖의 삶과 회사 안의 일은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오랫동안 '일하는 자아'와 '개인적인 자아'를 구분해왔지만, 제임스 리는 회사를 살린 것이 다름 아닌 '전인적인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이었음을 담담히 보여준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정서, 소외의 기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과해 얻은 다정함이 있었기에, 냉정한 숫자의 세계에서도 그는 사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조직문화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우리 조직은 동지애와 유머를, 성과의 여백이 아니라 성과의 조건으로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업무 역량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그가 살아온 삶 전체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랜만에 머리가 아닌, 가슴에 잔잔한 파동이 있었던, [레드 헬리콥터] 는 한 사람이 자신의 다정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을 때 무엇이 가능해지는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증언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아 잔잔한 여운으로 흔들릴 것 같다.

  • 스스로를 증명하며 자기 삶을 개척한 선배들에게서 배우는, Wonnie


승원
연승원
행동하는 철학가
HR로 시작한 커리어, 어느덧 십수년째 이 길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소통이 있는 조직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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