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다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해결되서가 아니라 문제에 적응을 해버렸다 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순간 리더는 침묵하거나 나서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한국 스포츠에서 리더가 나서야 하는 순간을 보여준 두 선수가 있다.
여자축구의 지소연과 배드민턴의 안세영이다.
한국 여자축구의 상징적인 선수인 지소연은
대표팀의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대표팀 보이콧이나 은퇴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71경기 74골.
지소연은 한국 여자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다.

이 정도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이런 말을 꺼낸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오래 쌓여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꽤 강한 발언처럼 느껴진다. 극단적인 발악으로 보는 시선도 많다.
하지만 이 발언의 맥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자축구 선수들은 오래전부터 같은 문제를 이야기해왔다.
여자축구 대표팀 장비 지원 부족
남자 유소년 팀이 사용하던 의류 재사용
남자 대표팀 예산의 10% 수준에 불과한 운영비
지소연은 이렇게 말했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변화를 위해 행동이 필요하다.”

지소연의 발언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여자 대표팀 운영과 지원 체계를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훈련 환경과 장비 지원, 처우 개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가 이어졌다.
물론 한 번의 발언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축구의 처우 문제는 더 이상 내부 불만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의제가 됐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배드민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안세영은 2024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직후, 대표팀 운영과 관련된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장비 문제였다. 대표팀 후원사의 신발이 훈련에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개인 장비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그것은 결국 선수의 선택권과 훈련 환경의 문제라는 점이 드러났다.
실제로 그 발언 이후 협회는 국가대표 선수의 개인 용품 후원 계약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협회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후원 구조가 바뀌면서 약 20억 원 규모의 후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변화는 장비 문제에서 끝나지 않았다.
비(非)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이 폐지됐고,
국가대표 선수의 해외 리그와 해외 초청 경기 참가 제한도 사라졌다.
복식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포함돼 있던 주관적 평가 점수 30%가 폐지됐고,
국가대표 유니폼에 개인 후원사 로고를 노출할 수 있도록 규정도 바뀌었다.

이 변화의 출발점 역시 거창한 정책 논의가 아니었다.
안세영이 “이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순간이었다.
많은 조직에서 문제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먼저 말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다.
보고 체계가 비효율적인 것, 의미 없는 회의가 반복된다는 것, 성과보다 눈치를 보는 문화가 있다는 것.
그런데도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원래 회사는 그런 거지.”, “말해봐자 안바뀌어.”
문제는 이 순간부터 이런 비효율이 점점 당연한 방식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때 리더의 역할은 팀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신 꺼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보고를 줄여보거나, 회의를 조금 줄이거나, 팀원이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신 꺼내보는 것.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이런 작은 ‘나섬’에서 나온다.
정답이 딱 정해져 있는 질문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사례를 보면 리더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에는 몇 가지 공통된 장면이 있다.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생긴다.
다들 속으로는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느끼지만,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침묵이 오래 이어지면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문제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원래 그런 방식”처럼 받아들여진다.이럴 때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 한다.
“이 방식대로 계속 해도 되는걸까?”
리더의 역할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닌,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공개적으로 꺼내는 것에 가깝다.
한 번의 실수나 시행착오는 조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같은 문제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예를 들어 매번 프로젝트 막판에 일정이 꼬인다거나, 회의는 많은데 결정은 잘 내려지지 않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를 점검해야 할 시그널일 수 있다.
이때 리더가 할 일은 탓할 누군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하는 방식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가끔 조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 문제에 익숙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것을 멈추는 역할이 리더에게 있다.
조직에서 어떤 말이 받아들여지느냐는 내용만큼이나 누가 말하느냐에도 영향을 받는다.
같은 말이라도 경험이 쌓이고 신뢰가 형성된 사람이 하면
불만으로 들리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제안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어떤 사람은 아직 말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그 말을 해줄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그럴 때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리더라고 항상 앞에 서서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끝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는 영원히 남게 될 수 있다.
The Other Game은 스포츠 씬 속 리더십과 마인드셋을 연구합니다.
본게임 너머, 경기장 밖의 ‘또 다른 게임’을 다루는 방식이 개인과 팀의 성장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