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자기 객관화' 인 것 같습니다.
"내가 정답이다, 내가 다 옳다"는 독선은 위험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독선은 리더의 자리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내가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면 리더도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책임을 나누자는 말이 아닙니다. 회피하자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는 신호를 건네는 일, 그것이 확신과 독선 사이에서 리더가 지켜야 할 균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돌아보면 저는 완전히 상반된 두 유형의 리더를 곁에서 모셔보았습니다.
한 분은 "내가 정답"이라 믿는 유형이었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촘촘히 그려가며 가르쳐 주셨고, 완벽을 추구하며 스스로 끝없이 노력하셨기에 배울 점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다만 제가 낸 아이디어에도 "그거 예전에 내가 하자고 했잖아" 하며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시는 분, 조직의 변화를 본인이 이끌었다고 내세우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다른 의견을 꺼내면 들어주시기는 하지만, 결국 본인의 뜻대로 진행됩니다. 때로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방향과 목적”만 말하는 유형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에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셔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자리에서 점점 뒤로 밀려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기다려 주고 인내해 주셨기에, 저는 그 곁에서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해보자"며 지지해 주셨고, 본인은 뒤로 물러나 저를 앞세우셨습니다. 다른 의견을 말해도 판단 없이 품어 주셨습니다.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렸을까요. 저는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는 이런 리더십이, 저런 상황에는 저런 리더십이 필요했습니다. 리더십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그것이 두 분에게서 얻은 결론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정답이 없다면서, 조직은 리더십을 평가합니다. 그것도 동일한 문항으로, 동일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 결과는 종종 이렇게 나타납니다. 성과가 잘 나는 조직의 리더는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조직의 리더는 성과는 아쉬워도 점수는 높게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리더십 점수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좋은 리더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직무가 다르고, 성과를 내는 방식이 다르고, 조직이 처한 국면이 다른 리더들을 하나의 자로 재는 일. 그것이 과연 공평한가, 공정한가. 저는 이 지점에서 오래 의구심을 품어왔습니다. 같은 자로 재는 것이 '평등'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곧 '공정'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붙들고 있던 즈음, 애플의 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26년 9월 1일, 팀 쿡(Tim Cook)이 15년간 지켜온 CEO 자리를 엔지니어 출신 존 터너스(John Ternus)에게 넘겼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시대에서 팀 쿡의 시대로, 그리고 또 한 번의 전환. 애플은 리더십의 교체를 다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팀 쿡을 향한 평가가 15년 내내 엇갈렸다는 점입니다. 잡스의 카리스마와 혁신을 기대한 이들에게 그는 '범생이 관리자'로 비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동안 애플의 매출은 약 4배로, 서비스 사업은 연 매출 1000억 달러 규모로 커졌습니다. 그는 '지키는 데 그친 후계자'였을까요, '창업자 없이 거대한 조직을 일군 리더'였을까요.
한 전직 애플 엔지니어는 쿡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세상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리더가 많은데, 팀 쿡만큼 자기 객관화가 잘 된 리더도 없다"고요. 쿡은 잡스의 '기준'은 자신의 DNA에 새기되, 잡스의 '방식'까지 흉내 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비전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완성된 비전을 최적화하는 운영자임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붙들고 아쉬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의 건강한 리더십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던 이는 쿡과 같은 '운영 라인'의 2인자였습니다. 그러나 쿡과 이사회가 택한 사람은, 오히려 잡스에 가까운 '제품쟁이' 존 터너스였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쿡의 마지막 자기 객관화였는지도 모릅니다. 2011년엔 자신이 잡스가 아님을 받아들였고, 2026년엔 미래의 애플에 '또 다른 쿡'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횟집에는 정가가 아니라 싯가(市價)가 있습니다. 처음엔 그 불확실함이 불편해 보였는데, 곱씹을수록 참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의 물때와 어획량, 계절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니까요. 고정된 값이 아니라, 상황에 응답하는 값입니다.
리더십 평가도 이렇게 싯가로 매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어떤 기업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이지만, 저는 이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가지 그림을 그려봅니다.
상황 가중치(市價 계수)를 두는 평가 : 성장기·안정화기·전환기 등 조직이 처한 국면에 따라, 그리고 리더가 맡은 직무의 성격에 따라 평가 항목의 가중치를 다르게 매기는 것입니다. 안정화가 필요한 조직에는 운영·리스크 관리에, 돌파가 필요한 조직에는 도전·혁신에 무게를 싣는 식입니다. 같은 문항이라도 국면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지금 이 조직에 필요한 일'을 먼저 정의하는 평가 : 고정된 루브릭을 들이대기 전에, 이 시기 이 리더에게 맡겨진 '미션'을 먼저 합의하고, 그 미션의 달성으로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잘 푸는 능력이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를 제대로 골랐는지를 봅니다.
자기 객관화 자체를 지표로 삼는 평가 : 팀 쿡의 마지막 선택처럼, 리더가 자신의 강점이 여전히 유효한지 스스로 의심하고 갱신하는 능력을 평가에 담는 것입니다. '오래된 강점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자각,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건너는 리더의 핵심 역량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싯가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값을 정하는 이의 자의(恣意)가 개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싯가형 평가에는 투명한 기준의 공개와 사전 합의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날의 시세를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물때와 어획량이라는 근거 위에서 매기듯이 말입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풀어야 할 문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한번 정한 방향으로 몇 년을 달려도 괜찮았고, 그 문제를 정확히 잘 푸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푸는 사이에 문제 자체가 형태를 바꿉니다. AI 전환이 그렇듯, 조직 바깥의 변화가 순식간에 안으로 밀려듭니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도 달라져야 합니다. 현재의 고객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변화의 흐름을 읽고 다음 고객을 선제적으로 정의하는 일까지가 리더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조직이 의도적으로 자리를 마련해야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미래를 체계적으로 준비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수익성이 33% 높았고, 시가총액 성장률은 200% 이상 높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로르벡·쿰, 2018). 문제가 달라지는 시대에는, 리더를 재는 자(尺)도 함께 달라져야 마땅합니다.
결국 좋은 리더인지 아닌지는 하나의 점수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리더 스스로, 그리고 조직이 함께 이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지금 내 조직에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
둘째, 그중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셋째, 내가 잘해온 방식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때, 기꺼이 변화를 고민할 수 있는가.
정가표를 들이대며 "당신의 리더십은 78점"이라 말하는 대신, 이 세 질문 앞에 리더를 세우는 것. 그것이 어쩌면 리더십을 싯가로 매기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리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의 시세에 정직하게 응답하는 리더가 있을 뿐입니다.
본 칼럼은 아래 자료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필자의 경험과 관점을 더해 재구성한 글입니다.
롱블랙, 「팀 쿡의 재발견: 전 애플 직원이 말하는, 천재를 잇는 경영자의 방식」 — 팀 쿡의 자기 객관화, 운영 혁신, 존 터너스로의 승계 결정에 관한 내용을 참조했습니다(박지수 전 애플 엔지니어·현 메타 매니저 인터뷰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