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g)
학창 시절, 저는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정작 외로움은 남들보다 크게 타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국어 시간,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교과서 속 글자였을 뿐인데, 그날 이후 이 시는 저의 인생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좋으니, 내 아이를 대신 맡길 수 있는 단 한 사람. 온 세상이 나를 등져도,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저 사람만은" 하고 무조건 믿어주는 그 한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딱 한 명만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든든할까? 스무 해 넘게 사람을 세우고 조직을 매만지는 HR에서 리더로 일을 해오면서, 저는 그때 품었던 그 질문이 실은 평생을 관통하는 소망이었음을 이제는 깨닫습니다.
요즘 가장 화제인 드라마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최종회로 마무리된 웹툰을 원작으로 한 「김부장」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작품을 '김부장'이라 부르지 않고 굳이 '김부장 어벤져스'라 부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김부장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한수와 박진철. 이 두 친구가 곁에 있을 때, 김부장은 비로소 무적이 됩니다. 자식이 납치되어도, 자식을 향해 총구가 겨눠지는 극한의 순간에도, 세 사람이 함께라면 풀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혼자였다면 무너졌을 김부장이, '함께'라는 이유 하나로 세상 어떤 적도 넘어섰습니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건 화려한 액션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갖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장면. 바로 홀로남은 자식를 맡기고 죽음의 길을 나설 수 있는 사람 을 눈앞에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부장의 힘은 김부장 개인의 역량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진짜 스펙은 '성한수와 박진철을 가졌다'는 사실 그 자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요즘 가장 뜨거운 산업 담론인 AI 반도체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AI의 성능을 오직 GPU의 '연산 능력'으로만 설명해 왔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계산하는가.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옮겨가면서, 판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승부를 가르는 것은 계산 속도가 아니라 '메모리', 즉 무엇을 기억하고, 얼마나 빠르게 그 기억을 불러오는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프로세서도 데이터가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계산을 끝내고도 멍하니 기다립니다. 혼자 아무리 똑똑해도, 곁에서 데이터를 건네줄 존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뜻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야기는 한층 명료해집니다. 메모리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핵심 기술은 옆으로 넓히는 것이 아니라 '위로 쌓는' 적층 기술(HBM)입니다. 평면을 아무리 확장해도 한계가 있으니, 서로 다른 층을 정교하게 포개어 대역폭을 폭발적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혼자 넓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고, 여럿이 겹겹이 쌓일 때 비로소 도약이 일어납니다. 반도체 기술자들은 이것을 '비선형 도약'이라 부릅니다. 메모리 하나가 조금 늘었을 뿐인데 시스템 전체 성능이 훨씬 큰 폭으로 뛰어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김부장을, 그리고 함석헌의 시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요. 혼자 옆으로 아무리 넓어지려 애써도 한 사람의 역량에는 천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내 위에, 혹은 아래에 층으로 쌓이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합을 훌쩍 넘어서는 도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김부장이 성한수와 박진철을 만났을 때처럼,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0이 되는 그 비선형의 순간을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특히 조직의 리더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리더의 자리는 외롭다고. 결정의 무게는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하고, 성과의 압박은 매 순간 어깨를 누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꾸만 '더 강한 나', '더 빠른 나', '더 많이 계산하는 나'가 되려 합니다. 연산 능력만 키우면 될 것처럼요. 하지만 추론의 시대가 증명하듯, 혼자 빨라지는 데는 반드시 한계가 옵니다.
정작 당신을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것은 당신의 연산 속도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 데이터를 건네주고 등을 맡길 수 있는 '그 사람'의 존재입니다.
그러니 리더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말해줄 그 한 사람을 나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예스"라 할 때 홀로 "아니"라며 가만히 고개 저어, 나를 알뜰한 유혹에서 건져줄 그 한 얼굴을 나는 곁에 두었는가.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방향이 반대일 때 더 큰 힘을 갖습니다.
함석헌의 시를 온통 '내가 가진 사람'을 헤아리는 시로만 읽으면 절반만 읽은 것입니다. 김부장에게 성한수와 박진철이 있었다는 건, 뒤집어 보면 성한수에게도 박진철에게도 '김부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관계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층이 되어 함께 쌓아 올린 구조였습니다. 적층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위층이 되어주는 사람과 아래층을 받쳐주는 사람이 서로를 향해 있을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탑이 서게 됩니다.
리더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구성원이 자리를 비워야할 때 "네 자리는 내가 지킬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 말해주는 사람. 온 조직이 한 사람을 몰아세울 때 "저 친구만은 다르다"며 믿어주는 사람. 배가 기울 때 먼저 구명대를 건네는 사람. 그런 리더 한 명이 팀 안에 있을 때, 조직은 옆으로 넓어지는 것을 넘어 위로 도약하게 됩니다. 그것이 비선형의 힘이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AI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리더십이라 믿습니다.
기술은 결국 인간을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무어의 법칙의 시대가 적층의 시대로 넘어가듯, 이제 리더십도 '혼자 잘하는 힘'에서 '함께 쌓는 힘'으로 넘어갈 차례입니다. 그 첫걸음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늘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 조용히 이렇게 건네는 일에서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