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한위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리더는 거의 없다. 문제는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못한다는 데 있다. 머리로는 안다. 모든 일을 리더가 다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팀이 성장하려면 일을 맡겨야 한다는 것, 자신도 더 전략적이고 본질적인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현실로 들어가면 마음이 바뀐다. 맡겨봤더니 속도는 생각보다 안 나고, 결과물은 기대에 못 미친다. 답답하고 불안하다. 결국 리더는 구성원이 보내온 보고서를 열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후, 타이핑을 시작한다. 그리고는 속으로 주문을 왼다.
“에휴..내가 하는 게 빠르지.”
“내일 오전에 보고 들어가야 하니 시간이 없어. 딱 이번만 내가 하자.”
"믿고 맡기기엔 아직 애들이 뭘 몰라.”
강한 책임감은 리더의 권한위임을 방해한다. 일이 잘못되면 결국 마지막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니까 선뜻 손을 못 놓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책임감이 리더를 실무에 묶어두고, 팀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다. 권한위임이 왜 중요한지는 다 아는데, 왜 실제로는 이렇게 어렵고 답답할까.
SK그룹은 오래 전부터 권한위임을 리더의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해 왔다. SK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는 1979년에 최초 정립되었다. 이후 주기적인 업그레이드와 개정을 통해 SK그룹의 모든 구성원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경영 수준을 높이는 토대가 되어 온 시스템이다. 현재는 매우 간소화된 버전으로 축약되어 있지만, 과거엔 경영관리의 세부 사항까지 언급이 되었는데 그 중 권한위임과 관련된 핵심 내용을 소개해 본다.
"조직운영의 묘란 가능한 한 많은 일을 구성원에게 맡겨서 운영하되 방임이 되지 않도록 잘 챙기면서 맡기는 것을 말한다."
"일을 많이 맡길수록 리더의 관리역량이 커지고 구성원의 역량도 신장된다."
"일을 챙기면서 맡기는 모든 과정에서 리더와 구성원이 상호 충분히 토의/합의해 가도록 한다."
무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강조했건만 아직도 잘 안되는 게 권한위임이다. 모두 권한위임을 리더의 당연한 역할로 여기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원칙이 현장에서는 자주 무너진다. 왜 그럴까? 2025년 HBR에 실린 아티클 <Why Aren’t I Better at Delegating?>은 권한위임이 안되는 이유를 네가지로 정리한다.
실무를 하면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가는 만족감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빨리 나온다. 반면 리더의 일, 즉 방향을 잡고 맥락을 설명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은 훨씬 더 느리고 덜 즉각적이다. 그래서 많은 리더가 무의식적으로 다시 실무로 돌아간다. 아티클은 이를 극복하려면 리더의 일에도 체크리스트와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왜 이 일을 하는지 설명했는가, 기대 결과를 분명히 했는가, 필요한 지원을 확인했는가” 와 같은 체크포인트를 만들라는 것이다.

팀원들이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요?” “이건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순간 리더는 다시 실무자로 끌려 들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정답을 바로 주기보다는, 맥락을 다시 상기시키고 질문을 되돌려야 한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요?” “현 상황에서 무엇이 우선이라고 보나요?” 필요하면 과거 사례를 설명해 주되, 답 자체를 대신 내려주지는 말아야 한다.

어떤 리더는 부하직원보다 오히려 자기 상사 때문에 위임을 못한다. 상사가 세부 사항까지 다 알고 있기를 기대하거나, 고객이 늘 리더가 꼼꼼히 챙기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티클은 이 경우 ‘매니징 업(Managing-up)’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은 범위부터 위임하고, 결과에 대해 내가 책임지겠다고 분명히 하며, 팀원들이 senior-level 보고에 직접 들어가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성이 강한 리더일수록 그렇다. 변호사는 계약을 직접 따내고 싶고, 엔지니어는 제품을 직접 개선하고 싶고, 영업 리더는 고객 앞에서 직접 성과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리더의 성공은 이제 개인 기여도가 아니라 팀의 성과를 얼마나 확장시키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팀이 더 많이 하도록 만들면 훨씬 큰 스케일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리더가 되기보다 전문가로 기여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리더가 되어서도 실무자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조직과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심각하게 가로막기 때문이다.

많은 리더가 위임을 못하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서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직접 하면 더 빠를 것 같고, 하나하나 챙겨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실무를 꼼꼼히 챙기고 나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파민이 분출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팀 구성원은 점점 수동적이 되어가고, 리더 자신은 실무자로 다시 회귀한다.
권한위임의 본질은 일을 떠넘기는 데 있지 않다. SKMS가 말하듯, "잘 챙기면서 맡기는 것"이다. 방향과 기준, 기대 결과는 분명히 하되, 실행의 주도권은 구성원에게 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과 충분히 토의하고 합의하며, 리더는 맥락을 설계하고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권한위임은 리더가 덜 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조직의 역량을 더 키우기 위한 리더십의 핵심 Skill이다.
참고: <Why Aren’t I Better at Delegating> (Harvard Business Review, September–Octobe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