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보고서는 한번 알아서 잘 만들어봐요.”
팀장은 나름대로 자율성을 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을 받은 구성원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하다. 보고서의 목적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좋은 결과라고 판단하는지 알 수 없다. 결국 며칠 뒤 초안을 가져오자 팀장은 말한다.
“아...이건 내가 생각한 방향과 좀 다른데요.”
정반대 경우도 있다. 업무를 맡기면서 목차부터 데이터 형식, 보고서의 문장 순서, 고객에게 전화할 시간까지 알려준다. 중간중간 메시지를 보내 진행 상황을 묻고, 자신이 생각한 방식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바로 수정한다. 구성원은 결국 생각하기를 멈춘다. 괜히 아이디어를 내서 해봤자 소용없고 그냥 팀장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가장 ‘안전빵’이기 때문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구성원은 리더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마이크로매니징하는 리더 휘하에서 구성원의 창의성은 말라 죽는다. 위의 두 리더는 모두 자기 스타일대로 업무 지시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좋지 않다. 리더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어떻게 업무 지시를 해야 일이 잘 돌아갈까?

자세히 설명한다고 구성원이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좋은 업무 지시의 핵심은 무엇을 선명하게 전달하고, 무엇을 구성원의 판단에 맡길 것인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업무를 맡길 때 리더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크게 네 가지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다. 그런데 목표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나치게 규정하면 구성원의 판단력과 주도성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보자.
“금요일까지 고객 이탈 원인을 분석해 주세요”
이 지시는 겉으로는 명확해 보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조금만 바꿔보자.
“금요일 경영회의에서 다음 분기 고객 이탈률을 낮추기 위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주요 원인 세 가지와 우선 대응안을 정리해 주세요. 필요한 데이터가 더 있으면 관련 부서에 직접 요청해도 됩니다.”
두 번째 지시에는 목적, 결과물, 시점,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 구성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면서도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스마트한 업무 지시를 위해서는 '지시의 해상도'를 조절해야 한다. 목표와 기대 수준은 선명하게, 실행 방법에는 적절한 여백을 두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같은 방식으로 지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 일을 맡은 신입사원에게 “알아서 해보세요”라고 하면 자율성을 발휘하기는커녕 불안감만 증폭된다. 반대로 업무 경험이 많고 전문성이 높은 구성원에게 세세한 방법까지 알려주면 신뢰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다. 즉, 업무의 난이도와 구성원의 역량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구성원에게는 방법과 주요 체크포인트까지 알려주는 편이 좋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방법에 대한 설명을 줄이고 결과에 집중한다. 충분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에게는 목표와 제약조건만 제시한 뒤 오히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묻는 편이 낫다.
공정성을 추구한답시고 사람을 똑같이 대하면 오히려 반발이 생긴다. 각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필요한 지원을 다르게 제공하는 것이 리더의 공정성이다.
사람들에게 절대로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말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알려주면 된다.
나중에 이들의 독창성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Never tell people how to do things.
Tell them what to do
and they will surprise you with their ingenuity.
일을 맡겼다고 리더의 역할이 끝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불안할 때마다 불쑥 진행 상황을 확인하면 구성원은 계속 리더의 눈치를 보게 된다. 추천하는 방법은 업무를 맡기는 순간부터 체크포인트를 합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착수 후 이틀째에 방향만 한번 보고, 50% 정도 진행됐을 때 주요 이슈를 확인합시다. 이후에는 최종안 전에 한 번 보죠”라고 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구성원은 업무 진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리더도 지나치게 늦기 전에 위험을 발견할 수 있다.
감시당한다고 느끼면 구성원은 일할 맛이 안난다. 일이 제대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한 체크포인트를 잘 설계하면 구성원의 판단력도 좋아진다.
리더는 개입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구성원이 리더가 생각한 방식과 다르게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개입해서는 곤란하다. 리더는 자신의 방식이 더 빠르고 익숙해 보이겠지만 구성원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다.
리더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때는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거나, 중요한 리스크가 발생했거나, 구성원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자원과 권한의 문제가 생겼을 때다. 이때 리더가 일을 가져와서 자기가 직접 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일은 어찌어찌 수습되겠지만 구성원에겐 자괴감만 남게 된다. 리더는 어디까지나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점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일처리 방식과 절차는 이제 AI가 상당 부분 제공할 수 있다. 보고서의 초안을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여러 대안을 제시하는 일도 AI가 능숙하게 지원한다. 그러니 리더들이여 방법론을 가지고 AI와 경쟁하지 말고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자.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리더에게 더 중요한 능력이다.
노자는 『도덕경』 17장에서 리더를 네 단계로 나누었다.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태상, 하지유지, 기차, 친이예지, 기차, 외지, 기차, 모지."
가장 뛰어난 리더는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겨우 알고(下知有之), 그다음은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고 칭송하며(親而譽之), 그다음은 두려워하고(畏之), 가장 낮은 단계에서는 업신여긴다(侮之)는 뜻이다.
리더의 존재를 겨우 안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자가 말한 최고의 리더를 현대 조직 언어로 풀어보면,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방향과 원칙을 세우고, 필요한 권한과 자원을 제공하고, 일이 흘러가는 시스템과 문화를 설계해 놓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장의 뒤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일이 이루어지고 목적이 달성되면 사람들은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는 뜻이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에 쓰여진 글귀의 힘이 놀랍다. 현대 조직에서 권한위임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듯 하다.
처음에는 리더가 방향을 설명하고, 방법을 알려주고, 자주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구성원이 성장하면 지시는 짧아지고 개입은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리더가 자리를 비워도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서로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도덕경에서 말하듯이 최고의 리더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조직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