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관’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분위기가 진지해진다. 왠지 철학 수업이 시작될 것 같고, 까딱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까지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된다. 그런데 사실 가치관은 그렇게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조직 장면에서 가치관은 훨씬 현실적으로 작용한다. 회의에서 무엇을 먼저 말하는지, 사람을 평가할 때 무엇을 눈여겨보는지,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까지 지키는지, 그런 모든 선택의 바닥에 깔린 것이 바로 가치관이다. 즉, 가치관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가’에 대한 솔직한 답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 다르기에 가치관에 대한 연구는 무척 복잡해질 수도 있는데,
샬롬 슈워츠(Shalom H. Schwartz)는 이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Schwartz 는 'Theory of Basic Human Values'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 구조를 연구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10가지 기본 가치를 정의하고, 이들이 서로 어떤 갈등과 조화를 이루는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설명했다. 한 축은 자기 증진(Self-Enhancement) vs. 자기 초월(Self-Transcendence), 다른 하나는 변화 개방성(Openess to Change) vs. 보수·안정(Conservation)이다.
이 두가지 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나의 성공과 성취를 더 중시하는 사람인가(자기 증진), 아니면 타인과 공동체의 안녕을 더 중시하는 사람인가(자기 초월)
나는 새로움과 변화, 자율성을 더 선호하는가(변화 개방성), 아니면 질서와 규범, 안정과 익숙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보수/안정)
이 이론의 핵심은 가치요인이 제각각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까운 가치끼리는 잘 어울리고 반대편에 있는 가치끼리는 긴장 관계를 이룬다는 점이다. 슈워츠는 이를 아래 그림과 같은 원형 구조로 시각화했다.

10가지 가치 요인을 정의하면 아래와 같다.
자기주도(Self-direction): 독립적 사고와 행동, 탐구
자극(Stimulation): 흥미, 새로움, 도전
쾌락(Hedonism): 개인적 즐거움과 감각적 만족
성취(Achievement): 사회적 기준에 따른 개인적 성공
권력(Power): 사회적 지위와 명성, 타인에 대한 통제
안전(Security): 사회, 관계, 자신의 안전과 안정
동조(Conformity): 사회적 기대나 규범 준수
전통(Tradition): 문화나 종교적 관습에 대한 존중
박애(Benevolence): 가까운 사람들의 복지 증진
보편주의(Universalism): 인류의 복지에 대한 이해와 관용
자기주도, 자극, 쾌락, 이 셋은 대체로 변화 개방성과 가깝다. 반대로 안전, 동조, 전통은 보수·안정 쪽에 놓인다. 성취와 권력은 자기 증진의 가치이고, 박애와 보편주의는 자기 초월의 가치다. 쾌락은 변화 개방성과 자기 증진 사이에 걸쳐있는 요인이다.
가치관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각 가치관은 나름의 장점을 지닌다. 예를 들어 성취와 권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보통 경쟁적이고 결과지향적인데, 조직이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는 이런 성향이 강한 추진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반면 박애와 보편주의를 중시하는 사람은 사람의 감정, 공정성,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더 많이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주도와 자극을 중시하는 리더는 변화를 밀어붙이고 실험을 장려할 수 있지만, 안전과 동조, 전통을 중시하는 리더는 리스크를 줄이고 질서를 세우는 데 강점을 보일 수 있다.
리더십 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리더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모르면 자기 판단의 편향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더십에서 가치관이 특히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더는 매 순간 선택한다. 예를 들자면…
성과를 위해 속도를 높일지, 사람을 위해 속도를 조절할지.
익숙한 방식을 지킬지, 불확실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지.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지, 관계를 고려해 예외를 둘지.
이러한 의사결정의 딜레마는 대부분 가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숫자를 먼저 보는 리더, 사람을 먼저 보는 리더, 혁신을 먼저 보는 리더, 안정을 먼저 보는 리더는 서로 다른 가치 위에서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더의 가치관은 회의실 벽면에 붙은 슬로건보다 훨씬 빠르게 조직에 퍼진다는 점이다. 리더가 “우리는 사람을 중시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KPI만 챙기면, 구성원은 곧바로 눈치를 챈다. “도전하라”고 말하면서 실패에 유난히 엄격하면, 조직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자율성을 주겠다”고 하면서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간섭하면, 사람들은 바로 안다. "아, 여기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안전하군." 이렇듯 조직문화는 리더가 믿는 가치의 그림자일 때가 많다.

리더의 모든 말과 행동은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의 어떤 행동을 칭찬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눈살을 찌푸리는지, 무엇은 대충 넘기고 무엇은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는지를 통해 매일 조직에 신호를 보낸다. 리더가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그 신호체계가 바뀌므로 가치관은 리더십의 실제 운영체제에 가깝다. 말로는 혁신을 외치면서 리스크를 피하려고만 하고, 말로는 사람을 강조하면서 숫자만 챙기면 구성원은 금방 알아챈다. 겉으로 표방하는 슬로건보다 리더 마음 속에 있는 우선순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자기 안의 나침반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몇가지 질문을 통해 리더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 볼 수 있다.
나는 평소에 어떤 가치를 가장 우선하는가?
내가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강화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불편해하거나 과소평가하는가?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실제로 나와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은 아닌가?
내가 중시하는 가치가 구성원에게는 어떤 압력으로 느껴질 수 있는가?
내 리더십 때문에 팀원들이 포기하게 되는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조직에서 말로는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보상하지 않는 가치는 무엇인가?
가치관이 분명한 리더는 신뢰를 준다. 그러나 특정 가치에 과도하게 고착된 리더는 위험할 수 있다. 성취와 권력을 지나치게 중시하면 구성원을 수단화할 수 있고, 안전과 동조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도전과 창의성이 위축된다. 따라서 리더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전면에 세우고, 어떤 가치를 보완해야 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다양한 가치 간의 우선순위를 읽고 조율하는 것이 리더십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리더가 자신의 가치관을 자각하고, 구성원의 가치관을 존중하며, 조직이 실제로 보상하는 가치와 선언하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줄일 때 리더십은 더 깊어진다. 가치관은 리더의 말보다 먼저 움직이고, 제도보다 오래 남으며, 조직문화의 가장 깊은 층에서 구성원의 행동을 조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