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RD 담당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을, 그러나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높은 만족도 점수와 훈훈한 교육장 분위기에 안도하다가도, ‘현업에서의 실질적 변화’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면 우리는 다시 작아지곤 한다.
기업교육의 본질은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교육이 여전히 만족도나 NPS 중심으로 평가되는 것이 현실이다. 학습 전이(Learning Transfer)를 즉각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좋았다’는 피드백은 교육담당자의 노력과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교육 이후 현장에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HRD가 비즈니스 파트너(BP) 역할을 요구받는 지금, 교육이 조직 변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해 나의 가장 큰 고민 역시 ‘만족’이 아닌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였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금번 중간관리자 대상 1박 2일 과정에서는 단순 만족도 조사가 아닌, 직접 설계한 ‘행동 변화 측정 설문’을 도입했다. 교육 전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문항에 답하게 하여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비교, 분석해보려 한 것이다. 그리고 문항 설계를 할 때는 ‘알고 있다’는 모호한 표현 대신 ‘설명할 수 있다’, ‘실천하고 있다’와 같이 구체적인 실행 가능성을 묻는 행동 중심 문항으로 전이 과정을 구조화했다.
결과는 유의미했다. ‘회사의 전략 방향'을 잘 알고 있는지를 묻는 문항에서 교육 전에는 응답자의 56%가 ‘대략 알고 있다’고 답했으나, 교육 후에는 89%가 ‘정확히 알고 설명할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교육이 회사의 비전, 신사업 목적, 산업 트렌드에 대한 관리자들의 인식을 즉각적으로 확장시켰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해도 향상은 맥락을 이해한 현장 운영을 가능케 해 관리 효율과 변화 대응력을 높이는 핵심 기반이 된다.
Kirkpatrick(1998)의 행동 수준 이론은 학습의 진정한 효과는 '행동 변화'로 증명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단기 교육 직후에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포착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때 유효한 지표가 되는 것이 Ajzen(1991)의 '계획된 행동이론'에서 강조하는 '행동 의도'다. 특정 행동을 수행하려는 의지는 실제 실행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즉, 설문에서 나타난 '설명할 수 있다', '실천하려 한다'는 응답은 향후 현업에서 발생할 실질적 변화의 전조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가설 아래 중간관리자 교육의 사전·사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지적 이해를 넘어 정서적·동기적 측면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포착되었다. 예를 들어 '리더 역할에 대한 자신감' 점수는 평균 3.1점에서 4.4점으로 상승했고, 개방형 문항에서는 "중간관리자로서 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겠다고 생각함", "회사, 일, 구성원을 바라보는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했음"과 같은 응답이 다수 확인됐다. 이는 교육이 단순 지식 습득을 넘어, 리더십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내적동기를 자극하는 심리적 변곡점을 만들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사전·사후 설문 변화가 곧바로 현업에서의 행동 변화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이 변화의 심리적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현업에 돌아가 동료들과 새롭게 소통하며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싶다"는 다짐은 단순한 소감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향한 의지의 발현이다. 결국 교육은 이러한 행동 의도를 자극함으로써, 조직이 필요로 하는 변화의 불씨를 지피는 출발점이 된다.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기에는 비용 효율화라는 명목 아래 교육비 삭감 논리가 힘을 얻는다. 그러나 저성장과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일수록 조직 내 ‘얼라인먼트’와 ‘몰입’의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교육은 조직 역량을 재구성하고, 구성원의 심리적 자본(정체성, 방향성, 몰입)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정비 장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적극적 역할 수행에 있어 기업교육의 가치는 만족도라는 단편적 숫자로 판단될 수 없고, 구체적으로 교육이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15차수 진행된 이번 중간관리자 교육 사례에서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인지, 정서, 행동 의지'가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HRD는 단순히 지식을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라 구성원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돕는 ‘심리적 리더십’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을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것’에 비유하듯,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은 항상 조직 안에서 변화의 불씨를 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직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