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회고] 어쩌다 대표, 사람을 키워간다는 것은](https://cdn.offpiste.ai/default_article_images/default2.jpg)
오늘은 조금 부끄러운, 자기고백 같은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교육자'라고 생각합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사람, 사람, 사람으로 가득하거든요.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제 모든 관심은 그해 저에게 맡겨진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 교회에서 일대일 멘토링을 시작했습니다. 매년 5~10명의 리더를 일대일로 만나 돌보고 가르치며 7년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그들을 키우는 것이 제 사명의 전부라 여겼기에 대학이든 카페든, 서울이든 대전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가 매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람을 기르는 일에는 언제나 낳는 즐거움과 기르는 고통이 함께 있으니까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그 일을 잠시 멈춰야 했을 때, 사람과의 깊은 교제가 끊기고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그때 멘토가 해 준 "지금은 몸으로 사랑을 배워야 할 때야"라는 말에 힘을 얻었고, 두 아들과 지지고 볶으며(행복하게요) 10년을 교사, 멘토, 코치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어느새 길러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리더가 되어 있었고, 그들이 다시 누군가를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을 키우는 사명을 '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코치와 상담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계약직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제게 상담 슈퍼바이저가 "왜 그런 선택을 해…"라며 말리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왜 그때 진실을 다 말해 주지 않으셨을까요? "여긴 정글이야"라고 한마디만 해 주셨어도 이 길에 오지 않았을 텐데요. ^^)
다시 3년이 흘러 마흔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길러진 코치들도 많아졌고, 의뢰받는 일도 늘었습니다. '촌철살인 코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고, 조직을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조직의 사람을 '내부인처럼 아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팀장, 본부장님들 곁에 그림자처럼 밀착해 3~4개월씩 코칭하며 리더들을 길러 냈습니다.
사람을 기르겠다는 진심은 코칭과 상담, 멘토 코치의 역할과 잘 맞았고, 사람들은 그 진심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 온 덕분에 사람을 키우는 근육이 단단해졌고, 숱한 상처를 견디며 마음에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 마음의 핵심이 조금 더 빨리 보이고, 깊이 접촉하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의뢰되는 코칭과 교육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그래서 파트너 코치들과 협력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저처럼 바닥부터 시작하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함께라면 일을 더 빠르게 키우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리더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을 낳는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만들어지고,
혼자 하던 일을 나누었습니다.
고객을 기르던 시간에 어느새 코치들을 기르고, 조직을 관리하고, 고객을 만나 사업을 설명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고객 코칭은 점차 파트너들에게 넘어갔고, 저는 관리자의 관리자, 팀장들의 헤드를 만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그 뒤로 3~4년 동안, 많은 대표들이 겪는 과정을 빠르게 겪었습니다.
정확히는 실패, 상처와 아픔. 다시 견디고, 다시 세우고, 버티고 또 버티는 처절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야생에서 경영자로 길러지는 시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오랫동안 쌓아 온 성과가 쪼개지는 결과로 돌아오기도 했고,
사람을 믿고 크게 품고 오래 길러 온다는 제 신념에 금이 가기도 했습니다.
기획해 만든 프로그램들은 더 크고 발 빠른 회사들에 카피되었습니다.
모든 구멍을 메우기 위해 주 7일, 새벽 5시에 일어났고, 밤 10시 퇴근은 기본, 지하철 막차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엄마는 도대체 언제 자? 맨날 소파에 있고…"
네, 소파에서 잠들고 소파에서 눈떠 일하기를 반복했거든요.
그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좋아, 어차피 실패할 거라면 빠르게, 많이 실패하고 배우자."
"내가 조직을 잘 몰랐으니, 조직의 쓴맛을 이렇게 배우는 거지!"
"젠장, 어쩌다 대표가 되니 사표도 못 쓰잖아!" 하면서 버텼습니다.
"왜 회사를 하는지 모르겠어. 혼자 할 때 가장 잘하잖아."
주변의 이 말이 격려보다는 리더로서 부족하다는 말로 아프게 들렸습니다.
그 질문을 붙들고 지내며, 깊이, 아주 깊이, 어쩌다 '리더'라는 역할을 맡게 된 '사람'들의 빛과 그림자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역할을 넘어, 이 일이 내 인생에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제가 건넸던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뛰어난 실력자였다가 리더가 되어 헤매던 분들이 "받아들여야겠죠?"라고 털어놓던 그 표정들이 제 가슴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 2년 전쯤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다 대표가 되니 더 행복하고, 조직도 참 멋지게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못하던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터널이 이뤄낸 결과들을 봅니다.
그거 아세요?
그림자는 살아 있기에 생기는 현상이에요.
빛 아래 있을 때 그림자가 생기고, 빛을 향해 걸을수록 그림자는 뒤에 길게 따라오죠.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주름이 패고,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는 때가 오더라고요.
이 시간을 지나며 제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과 조직이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리더가 아니면서 온전한 리더십 코치일 수 없고, 경영자로서의 경험이 있어야 경영진을 온전히 코칭할 수 있을 거라는 고집이었습니다.
그 터널 같은 시간을 지나온 지금, 리더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 괜찮아요.
사람을 믿어 왔던, 조직을 믿어 왔던, 자신을 믿어 왔던 그 결과로 패인 그림자.
그거, 있어도 괜찮아요.
그래도… 살아요. “
사람들은 가장 힘든 굴곡에서 저를 자주 만납니다.
저는 그들에게 늘, 그럼에도 당신은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온전하지 못했던 순간의 나, 선택을 잘못했던 순간의 나, 실패했던 순간의 나를 가장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말로 저를 참 많이도 때렸습니다.
이제 저를 그만 때리려고 합니다.
지금은 회사가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었고,
다시 그 안에 사람들이 담겨 자라고 있습니다. 조직, 그리고 개인의 상생이 아주 조금씩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사람을 믿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회사도, 그 안의 사람들도 그 시간의 깊이를 양분 삼아 자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대표도 처음이었으니까요.
이 글을 읽는 리더분들.. 또 사람을 믿어오고 길러오신 분들 ..
더 멋지게, 더 빠르게 믿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그 마음, 알아요.
그런데 우리도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 아직 성장하는 중이고 배우는 중인걸요.
우리, 하루 더 살아요.
to. 세상에서 사람과 조직을 키우는 모든 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