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트릭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관련된 이해관계자는 많고, 모두의 공식적인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백 명이 있으면 백 개의 의견이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수많은 조율과 Alignment 미팅을 거친 뒤, 최종 의사결정을 기다린다.
특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해관계자의 의견까지 반영하려면 시차까지 고려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늘 ‘더 나은 선택’을 향해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점점 늦어질 뿐이다.
얼마전 타 부서의 외국인 임원과 대화를 나누다 이런 말을 들었다.
가끔은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게 더 낫다.
남편으로서는 많이 공감했던 말이지만,
규정과 절차, 합의를 중시해온 HR 담당자에게 이 말은 무책임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곱씹을수록,
이 문장은 매트릭스 조직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정확히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트릭스 조직은 협업을 전제로 설계된다.
문제는 협업이 종종 의사결정의 유예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더 많은 의견을 듣고,
더 많은 리스크를 검토하고,
더 많은 합의를 기다리다 보면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은
“아직 결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 과정에서 조직은 무의식적으로
한 가지 유형의 사람을 만들어낸다.
의견을 잘 정리하고, 조율하고,
허락을 받아오는 데 능숙한 사람.
반대로,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판단하려는 사람은
조심스러운 존재가 된다.
“허락보다 용서”라는 말은
규칙을 어기라는 조언이 아니라,
신뢰 속에서 책임을 감수하라는 주문에 가깝다.
나의 평판을 담보로, 나는 판단하고 추진한다.
협의 단계에서는 사소한 디테일 때문에
많은 시간과 감정이 소모된다.
하지만 일단 실행되고 나면,
그 디테일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돌이켜보면
그 작은 디테일을 두고
우리가 소비했던 시간과 에너지는
종종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성공하면 ‘적극적인 프로젝트 매니저’로,
실패하면 ‘좋은 경험을 한 주니어’로
남을 수 있는 연차에 있다.

모두의 허락을 구하기 보다는, 질러놓고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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