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의 마지막에 나는 시니어라는 자리가 도착점이 아니라 갈림길에 가깝다고 썼다. 그리고 그건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회사에 있을 때는 명함이 나를 대신 설명해 주었다. 부서장이라는 직책, 오래 다닌 회사 이름, 19년이라는 시간. 처음 만난 사람도 그 한 장을 보면 내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대략 짐작했다.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명함이 배경이 되어 주었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 설명은 명함이 해 주던 것이지, 내가 하던 게 아니었다.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서장이었다는 사실, 시니어 매니저였다는 사실, 오래 근속했다는 사실은 그저 과거의 에피소드였다. 나쁘게 듣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이 궁금한 건 하나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커피챗에서 들은 한마디
8월 둘째 주, 위올워크의 최휘영 대표님과 커피챗을 했다. 비개발직군을 대상으로 커리어를 코치하고 기업에 적합한 인재를 연결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조언을 들었다. 시니어 레벨에서 기다리지 말고, 전문가로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는 것.
기다린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면이 있었다. 누군가 내 경력을 알아봐 주기를, 좋은 제안이 오기를, 19년이 알아서 나를 증명해 주기를.
하지만 상대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르다. 그가 궁금한 건 내 과거가 아니라, 내가 그의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느냐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인가. 그걸 보여줘야 비로소 관심이 생긴다.
시니어와 전문가의 차이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시니어는 지나온 시간으로 설명되는 사람이고, 전문가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로 설명되는 사람이다. 명함은 앞의 것을 증명해 주지만, 뒤의 것은 증명해 주지 못한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계속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동안 고민만 하고 미뤄 두었던 교육을 그 자리에서 신청했다. 성균관대학교와 AWS가 함께하는 [AI 기반 바이오 헬스케어 전문가 양성 과정]. 800시간 국가교육 커리큘럼이다.
나는 제약 산업에서 16년을 경영지원으로 일했다. 도메인은 익숙하다. 하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바이오 헬스케어 현장을 포함해 개발자 출신 창업 대표들이 있고, AI와 클라우드가 있다. 나는 비개발 직군이다. 그들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들어야 한다.
800시간은 긴 시간이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는 오히려 계산이 단순했다. 19년을 쌓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그 19년을 다음 자리로 찾아가는데 800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경력은 문턱까지만 데려다준다
지난 글에서 나는 대표의 입장에서, 경영지원에 어떤 사람을 들일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뽑히는 쪽에서 보면 같은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시니어는 대개 과거의 커리어로 채용의 문턱을 넘는다. 이력서에 적힌 연차와 회사 이름이 일단 면접까지는 데려다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자리에 앉은 다음부터는, 지금 이 회사에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로만 평가받는다.
작은 회사일수록 더 그렇다. 20명 회사에는 과거의 경력을 존중해 줄 여유가 없다. 오늘 무엇을 해내는지가 곧바로 보이는 곳이니까.
그래서 시니어라는 자리는 도착점이 아니다. 거기서 멈추면 지나온 시간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남고, 한 발 더 나가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주는 사람이 된다.
나는 아직 그 길 위에 있다. 800시간 중 이제 막 시작한 참이고, 이 선택이 옳았는지도 아직 모른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졌다. 기다리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는 것.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 19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19년으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요즘 나는 그 질문을 붙들고 있다.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상대에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이 있나요?
나만의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800시간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