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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AI를 외칠 때, 나는 '투박함'을 선택한다

모두가 AI를 외칠 때, 나는 '투박함'을 선택한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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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팀 회복 아키텍트 최지훈Mar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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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AI를 외치는 시대에 나는 투박함을 선택한다.

매일 내 SNS 타임라인에는 오늘 어떤 에이전트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바이브 코딩을 해서 어떤 솔루션을 만들었는지, 어떤 AI를 사용했더니 어떤 결과값을 얻었는지에 대한 글들이 무수히 올라온다. 당장 인스타그램 릴스만 봐도 AI 마케팅을 한다는 분들이 이미지를 완성할 때는 무슨 AI, 글을 쓸 때는 무슨 AI, 멋진 영상을 만들고 싶을 때는 무슨 AI라며 속사포처럼 에이전트 이름을 줄줄 읊어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저 AI를 당장 구독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은 강박을,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저 AI들을 모두 구독하면 도대체 월 얼마를 부담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난 수많은 구독 서비스 속에 헤엄치고 있는데 말이다.

새로운 기술을 그때마다 업데이트해주고 자신의 업무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나누어 주는 분들의 노력은 참 감사하지만, 정작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변하는가?’

나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다루는 일을 한다.

정확히는 일터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협업할 때 어떤 장면들이 일어나는지, 그 장면들은 때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해석되는지, 그렇게 해석되는 데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인지, 사람이 혼자 있을 때와 여럿이 있을 때는 무엇이 달라지는지,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지, 그 수많은 요인 중 어떤 사람에게 특정 요소가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 내가 하는 일을 나타내는 질문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사람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지, 특히 일터에서 그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루는 것이 내 일의 본질이다.

AI 에이전트를 통해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효율성이나 생산성 측면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나만 하더라도 생산성 측면에서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도움을 받는다. 운영 중인 스터디에서 다루는 논문 요약본을 확인하고, 이를 팟캐스트나 영상 콘텐츠로 몇 분 만에 생성해내기도 하며, 후속 참고문헌을 찾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바이브 코딩으로 간단한 조직 진단 앱을 만들어 교육에서 써먹어 본 적도 있고, 이를 통해 기록된 데이터로 고객사에 좋은 인사이트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분명 AI를 통해 우리의 ‘일하는 방식’, 더 정확히는 일할 때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고 결과물에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정체성’은 어떤가.

AI는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변화를 안겨주었는가?

이를테면, 탁월한 AI 기술을 가진 리더는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인가? AI로 다양한 결과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인플루언서는 탁월한 마케터가 될 수 있는 것인가? AI로 교육에 활용할 다양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멋진 교육자가 될 수 있는가? 도대체 훌륭한 리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탁월한 마케터는 어떻게 되고, 멋진 교육자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스킬'의 영역이 아니다.

최근까지 HR 영역에서는 스킬 기반 교육(Skill-based)이 트렌드였다. 본래 그 개념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실제 현장의 많은 조직은 그저 마이크로하게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스킬 콘텐츠에만 집중해 왔다. 이와 페어링 되어 함께 화두가 된 것이 ‘마이크로 러닝’이다. 나는 이 현상이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기업 조직의 ‘조급함’과 ‘성과에 대한 강박증’이 만들어낸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GROW 모델을 줄줄 외운다고 코칭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SBI 프레임 예시를 다양하게 알고 있다고 피드백을 잘 나누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코칭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존중, 무엇보다 ‘인내’가 있어야 하고, 피드백 대화 역시 타인에 대한 지지와 성장을 응원하는 진심이 있어야 비로소 작동한다.

얼마 전 만난 한 교육 담당자는 회사에서 교육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안 할 거면 흉내라도 내봐라, 그럼 언젠간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흉내를 내다보면 언젠가 할 수도 있다는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의도가 담긴 흉내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때야 가능한 법이다. 우리는 그것을 ‘훈련’이라고 부른다. 그저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의 흉내는 그저 ‘연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이 변하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사람은 변한다. 다만, 삶의 과제가 바뀐다면.

삶의 과제가 바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 삶을 반추하며 예를 들어본다.

스무 살의 나를 한국에 남겨두고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이 먼 과테말라로 이민을 갔을 때. 홀로 남겨진 내가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야 했을 때, 내 과제는 바뀌었다. 3년 넘게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풀타임 대학원생으로 진학을 선택했을 때, 내 삶의 과제는 또 한 번 바뀌었다. 대학원생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랑을 가득 누렸을 때, 그때 내 삶의 과제는 또 바뀌었다. 8년 전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나고 분만실에서 내 손으로 직접 탯줄을 잘라주었을 때, 내 삶의 과제는 다시 바뀌었다.

이런 인생의 대사(大事)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과제는 일상 가운데 늘 불현듯 찾아온다.

존경하던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때마다 전화와 문자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실 때, 고단한 일상에서 늘 옆에 있는 아내가 나를 위한 기도를 놓지 않고 있음에 문득 감사함을 느낄 때, 이전 직장에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프로젝트의 TF 리더를 맡게 되었을 때, 읽고 있는 책이나 영화에서 울림 있는 한 문장을 마주했을 때. 이럴 때 역시 우리는 자신의 삶의 과제를 점검하고 다시 설정하는 기회를 얻는다.

만일 이런 '삶의 과제'를 점검해 주는 AI 에이전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을 사용한다고 사람들이 진짜 삶의 과제를 재설정할 수 있을까?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볼 순 있겠지만, 깊은 성찰을 거쳐 행동 양식을 바꿀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삶의 과제는 무수한 관계와 맥락에서 일어나는 '스토리'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가, 사과하고 화해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진심을 전하는 그 모든 시간에 누적된 경험.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인 관계의 온도와 맥락이, 이 문제가 더 이상 단순한 고민이 아니라 내가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삶의 아젠다’임을 깨닫게 한다. 직장에서 조바심과 부담감, 염려와 함께 키워나간 노력과 작은 성취를 통해 발견한 기쁨 등이 얽히고설키며 내 삶의 과제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렇기에 나는 요즘 시대에 역설적으로 투박하게 삶의 과제를 바라보는 시간과 맥락을 설계한다.

내게 개인과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분들이 허락해 준 시간은 짧게는 2시간, 길어봤자 6~7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제한된 시간 속에 '연결'과 '맥락'을 집어넣는다.

AI 덕분에 지식과 정보는 이미 넘쳐난다. 프롬프트 한 줄이면 몇 초 만에 좋은 이론을 구조화해 준다. 귀한 시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식 덩어리만 던져줄 거라면 뭐 하러 나 같은 사람을 부르겠는가. 결국 나 또한 이 시대에 맞춰 내 역할의 과제를 바꾸어야 한다.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재설정하도록 돕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배움 재료들의 연결성과 맥락에 집중한다.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질문에 집중한다.

일터에서 일어나는 시선과 스토리에 집중하고, 그 스토리를 해석하는 개인의 사유에 집중하며,

개인의 사유가 모두의 사유로 흐르는 그 관계성에 집중한다.

내 역할은 사람들이 일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와 새롭게 관계를 맺도록 돕고, 그들이 일터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도 더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변화와 개발'이라는 다소 강압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낼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들을 통해 어제보다 좀 더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AI는 생각의 단서를 제공하고, 이를 명료화하고 구조화하여 고도화된 결과물을 주는 데 유용하다. 우리가 미처 미치지 못했던 영역의 해상도를 높여주어 다음 생각으로 뻗어 나가게 돕는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삶의 과제를 마주하고 다시 조율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확장보다 '돌아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돌아봄의 핵심은 관계와 연결, 그리고 맥락을 살피는 것이다. 관계와 연결은 이후 다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또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삶의 과제를 확장하고 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다소 투박하더라도 날것의 질문들을 마주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다시 비추어보고, 조금 다른 각도에서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볼 때, 삶의 과제는 전혀 다른 빛깔을 내게 보여준다. 그리고 평소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곁에서 나를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나의 존재에 대한 수용과 긍정은 내가 내 삶의 과제를 확장하고 더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 8년 전, 내 삶의 과제와 가장 긴밀하게 관련된 존재가 태어나다


지훈
팀 회복 아키텍트 최지훈
팀 회복 아키텍트 ㆍ조직문화 작가
팀 본연의 힘을 회복시키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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