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피하는 것도 리더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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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피하는 것도 리더십일까

회피해피(happy), 회피새드(sad)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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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김세진Aug 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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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문제를 피하지 않는 사람을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갈등이 생기면 정면으로 다루고, 어려운 결정일수록 앞에 서고, 불편한 이야기도 피하지 않는 사람. 반대로 문제가 생겼는데도 나서지 않는 리더에게는 쉽게 ‘회피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정말 모든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조직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의 말투가 거슬리고, 회의에서 의견이 부딪히고, 이미 결정된 일에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다. 리더가 이 모든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개입하고 해결하려 한다면 어떨까. 오히려 구성원들은 점점 리더에게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굳이 해결하지 않는 것도 리더의 판단일 수 있다.

모든 갈등이 리더의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런 팀이 있을 수 있다. 두 팀원이 신제품 홍보 문구를 두고 회의에서 꽤 날카롭게 부딪쳤다. 한 사람은 “너무 보수적이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현실성이 없다”고 받아쳤다.

회의가 끝나자 다른 팀원이 팀장에게 말한다. “두 사람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은데 한번 이야기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팀장은 상황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두 사람을 불러 면담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평소 협업에 문제가 없었고, 이번 충돌은 사람에 대한 감정보다는 일에 대한 의견 차이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다음 날 두 사람이 다시 함께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권한과 관계도 충분했다. 며칠 뒤 둘은 서로의 안을 섞어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때 팀장이 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반드시 리더십의 부재라고 할 수 있을까. 구성원들이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문제에 리더가 개입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판단이다. 모든 갈등에 리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구성원들은 작은 충돌조차 ‘상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서로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팀장을 찾아가게 된다.

선수들끼리 해결하도록 두는 감독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다. 훈련 중 두 선수가 플레이 방식 때문에 언성을 높인다. 한 선수는 “패스를 빨리 줬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선수는 “네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맞선다. 감독이 그 순간 훈련을 중단하고 두 사람을 불러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잠시 부딪친 뒤 두 선수가 다시 플레이를 이어가고, 다음 훈련에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호흡을 맞춘다면 그 갈등은 선수들이 경기 방식과 관계를 조정해가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감독이 모든 충돌을 없애주는 팀보다 때로는 선수들이 직접 부딪치고 해결하는 팀이 더 강할 수 있다. 리더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대신 해결하지 않는 것 역시 리더의 역할이다. 여기까지는 회피해서 오히려 상황이 개선되는 ‘회피해피(happy)’다.

같은 ‘비개입’인데 결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같은 회사에서 다른 일이 벌어졌다고 해보자. 팀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A가 후배들에게 반복적으로 공격적인 말을 한다. “이것도 못해요?”,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후배 한 명은 결국 팀장에게 이야기한다. “A님과 일하는 게 너무 힘듭니다.”

팀장도 알고 있다. A의 이런 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원래 표현이 좀 직설적인 사람이에요.”, “일할 때는 서로 조금씩 맞춰야죠.”, “제가 개입하면 오히려 더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까 두 분이 먼저 이야기해보세요.”

겉으로만 보면 앞의 팀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갈등에 즉시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앞의 갈등은 당사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반면 두 번째 문제는 이미 반복되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힘의 차이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 구성원이 리더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알아서 해결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을 자율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런 회피는 리더가 피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어려움이 더 커지는 ‘회피새드(sad)’다.

자율이라는 말이 방치가 되는 순간

회피새드도 겉으로는 꽤 그럴듯한 말을 한다. “나는 팀원들을 믿어요.”, “실무자들끼리 해결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웬만하면 내가 개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팀원에게 해결할 힘이 없는 문제까지 맡기는 순간이다. 그때 자율은 방치가 된다.

급도망

특히 리더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누가 어떤 일을 맡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 성과를 평가하는 일, 반복적으로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제재하는 일, 한 사람에게 일이 지나치게 몰리는 구조를 바꾸는 일. 이런 문제는 구성원끼리 ‘잘 이야기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즉 회피가 문제가 되는 지점은 단순히 리더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다.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된다.

감독이 외면한 문제는 팀의 규칙이 된다

스포츠에서도 회피새드는 생긴다.

이를테면 팀의 핵심 선수가 반복적으로 규칙을 어긴다고 해보자. 한두 번 늦는 것이라면 감독이 굳이 문제를 확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행동이 반복되고, 다른 선수들이 “왜 저 선수에게만 다른 기준이 적용되느냐”고 느끼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때 감독이 “선수들끼리 알아서 이야기해라.”, “시즌 중이니까 괜히 분위기를 흔들 필요 없다.”고 계속 넘긴다면 그것은 단순히 갈등을 피하는 일이 아니다. 리더가 결정하지 않는 동안 팀에는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진다. ‘성과가 좋으면 규칙을 조금 어겨도 된다.’ 리더가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구성원들은 새로운 규칙을 하나 배운 셈이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실적이 좋은 영업사원이 회의에 계속 늦는다. 다른 직원에게 업무를 떠넘기기도 한다. 팀장은 알고 있지만 성과가 좋다는 이유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팀장은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구성원들이 읽는 메시지는 다르다. “우리 팀의 규칙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구나.”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사람들은 공식적인 규정이 아니라 리더가 실제로 무엇을 허용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리더가 회피한 문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팀의 문화가 되어버린다.

회피해피와 회피새드를 가르는 세 가지 질문

그렇다면 둘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문제를 피했는가’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어떤 이유로, 어디까지 지나쳤느냐다.

1/ 이 문제를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

사소한 감정까지 리더가 관리하지 않는 것, 구성원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갈등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 중요한 목표를 앞두고 일시적인 잡음에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 이런 회피에는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반대로 권한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문제, 같은 피해가 반복되는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리더가 빠져도 되는 문제인지 판단하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이 문제를 당사자들이 실제로 해결할 힘을 갖고 있는가?”

2/ 내가 가만히 있으면 이 문제는 작아질까, 커질까?

두 번째는 시간의 문제다. 한 번의 말다툼은 시간이 지나면서 작아질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무례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문화가 된다. 한 번의 업무 실수는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계속 특정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된다. 리더의 비개입은 그 순간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 내일 구성원의 자율성을 키울지, 아니면 문제를 더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지를 봐야 한다. 회피해피와 회피새드의 차이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 만들어낼 리스크’​에서 드러난다.

3/ 나는 팀을 위해 넘어가는가, 내가 불편하기 싫어서 피하는가?

마지막 질문은 리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 “구성원들을 믿고 맡기고 싶다.”,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다.” 모두 합리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 말들은 때로는 리더가 자신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논리가 되기도 한다. 개입하지 않는 리더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용기다. 반대로 개입해야 할 순간에는 다른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 갈등을 감수하고 기준을 세우고, 때로는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도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용기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입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보다 왜 그 선택을 했느냐에 가깝다.

좋은 리더는 모든 문제와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리더의 반대말은 회피하는 리더가 아닐지도 모른다. 좋은 리더는 모든 문제와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문제와 자신이 반드시 나서야 하는 문제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에 가깝다. 조직에도 어느 정도의 회피는 필요하다. 모든 문제를 확대하지 않는 여유, 모든 감정을 관리하지 않는 거리, 구성원이 스스로 부딪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공간. 그 공간이 있어야 구성원도 문제를 다루는 힘을 갖게 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리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훈련장에서 두 선수가 언성을 높였을 때 감독이 지켜보는 것은 “이 정도의 충돌은 너희가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가 반복해서 규칙을 어기는데도 침묵한다면, 그 침묵 역시 “이 정도는 허용된다”는 메시지가 된다.

책임 막중

회피해피와 회피새드의 경계는 ‘문제를 피했느냐’에 있지 않다. 내가 물러난 그 자리에 구성원의 자율이 남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부담과 침묵과 불편함이 남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문제까지는 팀에 맡겨도 되고 어디서부터는 자신의 책임이 시작되는지를 알아차리는 능일지 모른다.


The Other Game은 스포츠 씬 속 리더십과 마인드셋을 연구합니다.
본게임 너머, 경기장 밖의 ‘또 다른 게임’을 다루는 방식이 개인과 팀의 성장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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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The Other Game
스포츠에서의 리더십과 팀 문화를 연구하여, 그 인사이트를 개인과 조직에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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