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힘]_리더의 관계 역량](https://cdn.offpiste.ai/images/articles/1537/cover/e12c0586-3146-4b55-a949-4ab8988035fe_배려2.jpeg)
한 시중은행의 CS팀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화다. 지방에 위치한 한 지점의 CS점수가 오랜 시간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청원 경찰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그 비결을 파악하기 위해서 나는 고객인 척하고 그 지점에 일부러 방문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 발 들여놓자 마자 환한 미소의 여성 청원 경찰이 나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외출했던 지점장이 돌아와서 나를 알아보는 바람에 고객 코스프레는 금방 중단되었지만 반나절을 그 지점에 머물면서 그 청원 경찰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감동했다. 방문하는 모든 고객의 얼굴을 알아보고, 간단한 안부를 물으며 인사한 후 개개인이 주로 이용하는 금융 서비스를 미리 알아서 안내하고, 고객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커피나 녹차 등 어떤 차를 주로 마시는지도 다 알고 제공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은행 등 금융기관 창구에 앉아서 차를 대접받아 본 일이 있는가? 이 지점의 고객들은 그것이 기본으로 되어 있었다.
이 직원은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계속해서 드나드는 고객들을 안내하고 고객이 뜸하면 ATM기기부터 창구까지 넘나들며 자신의 역할을 찾아서 했다. 착용하고 있던 만보기를 보니 지점 내에서만 하루 이동 거리가 6킬로미터가 넘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들어오시면 바로 팔짱을 끼고 안내하고, 창구의 상담이 길어지면 번호표와 상관없이 신호등이 고장 났을 때 교통 경찰이 수신호를 주듯이 바로 다른 창구로 안내하며 지점 전체의 원활한 업무 프로세스에도 기여를 하고 있었다.
마침 전 은행의 CS교육을 담당하는 직원을 찾고 있던 나는 본점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그 직원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단지 고객님들을 제 부모님처럼 대해드릴 뿐이에요. 여기가 제 고향이고, 아이들도 여기서 키우고 있어서 서울로 가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고객님들하고 지금처럼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다들 저를 배려해주셔서 여기서의 생활이 너무 즐겁거든요.”
배려의 화신이라 불릴만한 본인이 남들에게 오히려 배려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금융회사에서 일반 계약직도 아닌 청원 경찰은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처우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나 그 직원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배려는 아주 작은 마음과 행동으로도 큰 힘을 발휘한다. 배려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사소하지만 상대방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배려다. 우리는 큰 일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마음 상하기도 하고 감동받기도 한다. 그런 직원을 보유한 지점장이 복 받았다고 하니 그 직원은 오히려 ‘지점장님과 직원 분들이 저를 배려해줘서 즐겁게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잠시 대화를 나눈 한 고객님의 농담 한 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OO씨 때문에 내 전 재산을 다 이 지점에 맡겼지요. 전 이 동네에선 좀 먼 곳에 살지만 일부러 택시를 타고 이 지점을 찾고 있어요.”
그 지점이 지역 본부 실적 1위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인간 관계에서의 ‘황금률’은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것이다. 이 황금률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구절을 3세기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드르가 금으로 써서 거실 벽에 붙어 놓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황금률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황금률을 보완해 한 차원 높인 개념이 바로 ‘백금률’이다. 백금률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대접해주라’는 것이다. 황금률이 ‘나’ 중심적 방식이라면, 백금률은 ‘상대방’ 중심적 접근이다. 즉,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낸 다음, 그것을 주겠다는 의미다.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와 기호에 따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백금률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것을 주겠다’라는 관점에서 시작해서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해한 다음, 그것을 그 사람에게 제공해 주겠다’는 관점으로 전환한 것이다. 즉,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와 기호에 따라 그를 대접하는 것이다. 배려의 기본 정신이다.
많은 리더들이 배려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배려는 단지 친절하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다. 말을 부드럽게 하고, 힘들어 보이면 일을 덜 주고,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수준을 배려라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배려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미담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에서 리더의 배려는 단지 착하게 행동하고 친절하게 남을 도와주는 수준의 의미를 넘어선다. 부드러운 가운데 명확하게 말하는 것, 힘들어 보이면 협의의 과정을 거쳐 필요한 지원을 해 주는 것, 불편하지만 필요한 말을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리더의 배려란 ‘구성원이 불편하거나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그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을 의미힌다. 즉, 배려란 단순히 개인적 성향이나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관계와 시스템을 운영하는 리더의 판단 능력이다.
배려란 행동 이전의 생각에서 시작된다. ‘이 말이 저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이 결정이 저 직원에게 과도한 부담은 아닐까?’, ‘내가 지금 말하는 이 타이밍이 적절할까?’,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1대1로 말하는 것이 나을까?’ 등등의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배려는 행동으로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생각이나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면에서 배려는 행동보다 먼저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배려하는 리더는 생각이 한 박자 늦게 보여지기도 한다. 바로 말하지 않고, 바로 결정하지 않고, 바로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례 1> “지금은 제 생각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A팀장이 회의 중 한 팀원의 판단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회의 때는 바로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회의 후 그 직원과 1대1로 대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의의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았고 김대리의 생각을 다른 사람 앞에서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제 의견은 이러니 조금 더 보완해서 다음 회의 때 다시 한 번 발표해주세요.”
A팀장은 다른 팀원들 앞에서 지적해서 바로 고치는 것보다 존중을 먼저 기억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그 직원은 자신이 지적 당했다는 생각보다는 존중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례 2> “지금은 프로젝트의 완성도보다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초안을 먼저 보고해 주시겠어요? ”
B팀장은 해당 직원이 익숙하지 않은 신규 프로젝트를 맡아 적응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일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부여한 리더의 판단이었다.“
다음 사항들은 조직에서 리더의 배려가 필요한 순간들이다.
1. 공개해야 할지 비공개해야 할 지 구분해야 할 때
배려를 잘 하는 리더는 문제와 사람을 분리하여 접근한다. 성과와 기여, 칭찬할 것들은 공개적으로 하고, 실수와 피드백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공개적인 지적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참석자들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당사자의 마음이 상해서 맞게 되는 부작용이 더 크다. 부득이하게 공개해야 할 때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와 상황에 집중하도록 공개한다
2. 업무를 배분할 때
배려는 특정인에게 업무를 덜 주거나 쉬운 업무를 맡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누구에게 어떤 일을 배분하는 것이 성장의 기회가 될지 고민하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당장은 효율적일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어떻게 업무를 배분하는 것이 구성원에게 훈련이 될지, 도전이 될지, 부담이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배려가 없는 공정은 구성원을 소진시키고, 배려가 있는 공정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시간과 타이밍을 고려해야 할 때
리더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 의해 구성원의 하루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퇴근 직전의 업무 지시나 안건 없는 회의 소집, 충분한 설명 없는 긴급 지시 등은 구성원을 지치게 만들고 상하 관계도 피로해진다. 배려는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을 지시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퇴근 직전에 부득이하게 지시해야 하는 업무인지 결정하는 것도 늦지 않다.
4. 개인의 상황을 고려해줘야 할 때
조직의 구성원은 능력도 다르고 개인 특성도 모두 다르다. 배려는 사생활을 캐묻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이 관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는 선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상황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이 때 개인적인 특혜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구성원들이 이해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다른 구성원들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므로 특혜를 주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다. 그러나 개인적 부담이 큰 시기에 업무를 변경해 주거나, 새로운 업무에 도전할 때 실수를 감안해 주는 등 각자의 조건을 고려해 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리더는 항상 공평할 수는 없어도 공정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5. 기다려줘야 할 때
리더가 모든 상황에서 즉각 반응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바로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감정이 격해진 후 바로 결정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몰아붙여 즉답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기다려주는 것,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은 방임이 아니라 존중의 형태로 나타나는 배려다.
늘 팍팍하고 여유가 없는 일터에서 리더는 “나는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런 배려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습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배려는 단순히 착함이나 친절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라 더 넓은 시각으로 상황과 환경을 보는 리더의 능력이다.
오늘날 조직을 흔드는 갈등과 구성원 이탈의 상당수는 리더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배려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리더의 배려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의 넓이와 깊이의 문제다. 배려는 단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구성원이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하도록 만드는 활동이다.
배려는 리더의 선택 사항이다. 착해 보이고 인기를 관리하려는 선택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가져가면서 조직과 구성원을 동반 성장시키기 위한 리더의 전략적인 선택 사항이다. 배려가 없는 성과는 빠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배려를 통한 관계는 함께 멀리 가는 오래 가는 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배려]를 위한 셀프 점검 질문들
• 나는 내 기준의 배려가 아니라, 상대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배려를 하고 있는가?
•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작은 신호나 불편함은 없었는가?
• 오늘 내가 한 배려 중, 조직이나 관계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높였던 행동은 무엇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