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워서 남주는 사람들
지난 6월 Women Automotive Network(WAN)에 시니어 멘토로 합류하면서, 멘토링이라는 관계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왜 이 관계는 시대와 문화를 가리지 않고 계속 재생산될까. 세 갈래로 짚어본다.
1. Pay It Forward
멘토링에 대해서 요즘 흔히 듣는 말이 Pay it forward 이다. 흔히 이 말이 실리콘벨리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하는데, 사실 실리콘 밸리가 생기기 이전에도 유사한 개념이 있었다.
1784년, 벤자민 프랭클린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지인 벤자민 웹에게 돈을 빌려주며 조건을 하나 걸었다. 편지 내용/원문은 아래와 같다.
“이 돈을 준다고 말하지는 않겠네. 그저 빌려줄 뿐이야. 자네가 좋은 평판으로 고국에 돌아가면, 언젠가는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사업을 하게 될 걸세. 그때, 비슷한 곤경에 처한 또 다른 정직한 사람을 만나거든 나에게 갚는 대신 그에게 이 돈을 빌려주게. 그리고 그도 훗날 여유가 생기고 같은 기회를 만나면, 같은 방식으로 빚을 갚으라고 부탁해주게. “
"I do not pretend to give such a Sum. I only lend it to you. When you shall return to your Country with a good Character, you cannot fail of getting into some Business that will in time enable you to pay all your Debts: In that Case, when you meet with another honest Man in similar Distress, you must pay me by lending this Sum to him; enjoyning him to discharge the Debt by a like operation when he shall be able and shall meet with such another opportunity."
되갚음(pay back) 대신 전달(pay forward) 하는 것. 멘토링도 이 구조 위에 있다. 멘티가 멘토에게 받은 걸 그대로 갚을 방법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멘토는 멘티에게 뭔가를 받아야겠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기꺼이 나누기 위해 만났고, 그 과정에서 교류를 통해 새로운 관점, 오래 지속되는 인생의 소중한 관계, 우정 등을 얻게 되면 그걸로 감사한 마음이다. 멘티는 멘토에게 받은 도움을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을때, 다음 사람에게 주면 된다.
2. 한국의 선후배 문화
사실 pay it forward는 한국에서 낯선 개념이 아니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 선후배 문화가 오랫동안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선배가 후배를 챙기고, 그 후배가 다시 다음 후배를 챙긴다. 서구에서 멘토십이 프로그램과 매칭 시스템으로 제도화됐다면, 한국은 위계와 정서적 유대를 기반으로 비공식적으로 작동해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학교 입학했을때 선배들이 점심을 사준다거나, 시험 문제 족보를 공유한다거나, 취업 자소서 작성을 도와준다거나, 이런 소소한 도움들이 쌓이다보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엄청난 도움이었다는걸 좀더 나이가 들고 나서 깨달았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직장 선배 도움으로 업무를 좀더 쉽게 하는 요령, 인간관계 요령, 애매한 상황에서의 표정관리 등 오직 관계를 통해서만 배울수 있는 정보를 통해 성장했다. (물론, 선배로서의 선의의 베풂이 의무가 되면 부담이 되고, 사회적 기대와 압박이 생기면, 거기서 오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안다).
3. 좋은 멘토, 나쁜 멘토
대학교 3학년때, HR을 해야겠다고 생각한것도 우연한 멘토링을 통해서였다. 누군가의 짧은 만남이 인생의 방향을 크게 바꿀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이후, 멘토링을 받아보고, 주기도 하고 해보니 멘토링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나는 멘토링 요청을 받으면 바로 수락하지 않고, 30분씩 1-2번 콜을 먼저 해보자고 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니즈와 문제에 대한 도움이 되는지 , 서로의 personal Character fit 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보고나서 그때도 내가 상대의 마음에 들면 멘토링을 이어가자고 한다.
예전에 내가 멘티였을때, 내 멘토링 니즈랑 잘 맞지 않는 멘토와 매칭되어서 멘토링이 흐지 부지 끝난 경험이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혹은 인품이 훌륭한 멘토라고 해서 나에게 반드시 좋은 멘토가 되는것은 아니었다.
내가 멘토링을 할때, 나는 멘토링과 코칭을 분리해서 적용한다.
코칭에서는 종종 질문을 통해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다. "답은 당신 안에 있다"는 접근이다.
그러나, 내가 멘티였을 때는 그런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멘토를 찾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혼자 고민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본 상태다. 요즘은 커뮤니티도 활성화 되어있고, 링트인 커피챗 문화를 활용할수도 있다. 그런데도 답을 찾지 못했으니 경험 있는 사람, 이미 그 길을 가본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멘토가 질문만 던지면서 " 답은 네 안에 있으니 스스로 답을 찾아보세요"라고 하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면 멘토링을 신청하지 않았을 텐데?"
멘티의 인생관이 대화 주제면, 질문/대화 코칭 방식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정보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면 멘티로서 듣고 싶은 내용은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이렇게 판단했다."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런 선택을 할 것 같다."
"내 경험상 이 선택지의 리스크는 이런 부분이다."
최종 결정은 멘티의 몫임을 인정하면서도, 멘토로서 자신이 가진 경험과 관점을 솔직하게 공유해줘야한다. 때로는 반복해서 이야기를 해줘도, 멘티가 이해하지 못할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강요하지 말고, 둬야한다. 다른사람의 이야기를 반추해보고 소화하는건 생각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반대로 내가 경험한 나쁜 멘토는 멘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자기 자랑(본인자랑, 집안자랑)만 늘어놓거나,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반복하거나, 자신의 가치관과 선택을 정답처럼 이야기했다. 멘토링을 멘티의 성장이 아니라 자신 만족의 시간 위한 무대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직속 팀원들에게는 의도적으로 멘토 역할을 하지 않는다.
리더로서 코칭하고, 피드백을 주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내 역할이다. 하지만 멘토링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멘토링은 평가와 이해관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관계여야 한다. 직속 상사와 팀원 사이에는 아무리 좋은 관계라 하더라도 성과평가, 승진, 보상, 업무 배분과 같은 현실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다 보면 팀원은 모든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렵고, 나 또한 완전히 중립적인 관점에서 조언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 종종 이야기한다.
"나는 스폰서의 역할에 집중할테니, 외부에서 멘토를 한두 명 더 찾아보라."
한 사람의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상사의 관점만으로 커리어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을 보는 시야도 좁아질 수 있다. 좋은 멘토링은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멘토링이 시대와 문화를 넘어 계속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누구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경험을 빌려 성장하고, 또 언젠가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 사람에게 건넨다. 배워서 남주는 행동의 무한 순환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많은 선배들과 멘토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멘토링을 할 때마다 "나와의 멘토링이 끝나고 나면, 이사람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까? 자문한다.
AI가 발전하면, 정보를 찾고 답을 구하는 과정을 더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관계에서 얻는 배움과 경험까지 완전히 대체할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만난 누군가가 비슷한 고민을 했고, 어떻게 해결했고, 혹은 해결하지 못했고, 나도 그떄 그랬다를 들으면서 얻는 위로는 정보라기보다는 감정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멘토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