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년 오논강 일대에서 열린 쿠릴타이에서 테무진은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었다고 전해진다. 나이만을 비롯한 주요 경쟁세력이 무너지고 자무카도 사라진 뒤였다. 오랫동안 갈라져 싸우던 여러 집단이 한 지도자 아래 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이긴 것과 하나의 조직을 만든 것은 다른 문제였다.
테무진 곁에는 오래된 친족과 노코르가 있었고 정복과 복속을 통해 들어온 여러 씨족과 부족의 사람도 있었다. 과거에는 서로 적이었던 집단이 같은 군대 안에 들어와야 했다. 사람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규칙과 충성관계가 한 조직 안에 겹쳐 있었다.

이때부터 칭기즈 칸에게 필요한 능력은 ‘사람을 모으는 힘’에서 ‘모인 사람을 구조로 움직이는 힘’으로 달라졌다.
작은 집단은 지도자를 보고 움직일 수 있지만 큰 조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정리되어야 움직인다.
칭기즈 칸이 된 테무진에게 조직설계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이유다.
창업 8년 만에 직원이 여든 명으로 늘어난 회사가 있다. 처음 열 명일 때는 대표가 조직도였다. 영업담당이 바쁘면 대표가 대신 고객을 만났고 개발팀에 문제가 생기면 대표가 직접 일정부터 다시 짰다.
이제 팀이 일곱 개다.
그런데 직원들에게 “누가 이 일을 결정합니까”라고 물으면 답이 제각각이다. 직급상 팀장이 결정해야 할 일도 오래된 직원은 대표에게 바로 묻는다. 신입은 팀장에게 보고하지만 창업멤버는 대표에게 카카오톡을 보낸다. 직책은 생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관계를 따라 움직인다. 대표는 매주 조직개편을 고민한다.

상자를 옮기고 팀 이름을 바꾸고 본부를 새로 만든다. 그런데 몇 달 뒤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조직도가 문제가 아니라 실제 권한과 책임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누구를 보고 움직여야 하는지,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를 새로 정하지 않으면 조직개편은 디자인 변경에 그친다. 그저 대표가 PPT에서 텍스트 상자만 이리저리 옮긴 결과였다.
1206년 이후 칭기즈 칸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씨족과 부족의 관계를 그대로 둔 채 이름만 제국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사람을 새 단위로 묶고 누가 누구를 지휘하는지 다시 정해야 했다.
칭기즈 칸이라는 칭호의 정확한 의미와 어원에는 여러 해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름 자체보다 이 시점에 테무진의 정치적 위치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더 이상 여러 몽골계 지도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복속된 넓은 집단을 통합해야 하는 최고권력자가 되었다. 『몽골비사』는 1206년을 전후해 공을 세운 사람들을 정리하고 천호 단위의 지휘관을 세우는 내용을 자세히 전한다. 번역과 계산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흔히 95개의 천호 조직 또는 천호장 명단이 언급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방향이다. 기존 집단을 예전 모습 그대로 두지 않고 새 지휘체계 안에 다시 배치했다. 회사가 성장한 뒤 조직개편이 필요한 이유도 같다. 예전 영업팀의 사람을 그대로 묶어놓고 이름만 ‘사업본부’로 바꾼다고 구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사결정과 책임의 선이 실제로 바뀌어야 한다.
누가 예산을 결정하는지, 누가 평가를 하는지, 누구에게 고객을 넘길 수 있는지, 두 부서가 충돌했을 때 누가 최종 결정을 하는지가 달라져야 한다.
칭기즈 칸은 사람의 관계를 조직의 단위로 바꾸기 시작했다. 물론 그 변화가 씨족사회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혈연과 가문은 끝까지 중요했다. 다만 그 위에 또 다른 조직의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십진 편제는 칭기즈 칸이 처음 발명한 제도가 아니다. 중앙유라시아의 여러 유목사회에서 이미 비슷한 단위가 사용되었다. 칭기즈 칸의 특징은 이를 대규모로 재편하고 서로 다른 집단을 새 지휘체계 안에 묶는 데 활용했다는 점이다.
십호, 백호, 천호, 만호처럼 규모에 따라 단위를 나누고 책임자를 두면 ‘누구의 친척인가’ 외에 또 다른 소속이 생긴다. 이전에는 같은 씨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움직이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단위에 배치될 수 있고, 다른 씨족 출신이 같은 지휘관 아래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이것은 조직의 정체성을 바꾸는 작업이다.
회사에서도 창업 초기에는 “대표와 함께 시작한 사람”, “A사 출신”, “개발팀 원년멤버” 같은 관계가 실제 조직도보다 강하다. 물론 그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식적인 역할보다 비공식적인 관계가 더 강해질 때다. 팀장은 A인데 직원은 대표와 친한 B의 말을 더 듣는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C인데 핵심정보는 오래된 직원들끼리만 공유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조직도가 있어도 실제 조직은 따로 존재한다. 새로운 조직단위는 과거의 관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업무를 위해 어떤 관계가 우선하는지를 다시 정하는 것이다.
칭기즈 칸의 십진 편제는 군사적 효율뿐 아니라 사람을 새 질서에 편입시키는 방식이기도 했다. 담배는 친한 사람들하고 피되 일은 파티션이 놓인 자리에서 하라는 칸의 엄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직도를 만든 뒤 더 중요한 문제는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힐 것인가다.
칭기즈 칸 주변의 천호장과 주요 지휘관에는 혈족과 귀족도 있었지만 비혈연 인물도 포함되었다. 오래된 동료, 다른 씨족 출신, 과거 적대세력에서 들어온 사람 가운데 공과 신뢰를 쌓은 인물들이 역할을 맡았다.
이를 현대적인 의미의 완전한 능력주의라고 부르면 곤란하다. 칭기즈 칸의 형제와 아들, 가까운 가문은 큰 특권을 가졌고 최고권력은 혈통에 집중됐다. 그럼에도 ‘중요한 자리는 모두 테무진의 가문인 황금씨만 맡는다’는 구조도 아니었다.
무칼리처럼 비혈연 인물이 거대한 전선을 맡았고 보오르추처럼 오래된 노코르가 중심부의 역할을 맡았다. 사람의 출신과 실제 역할 사이에 이전보다 더 다양한 경로가 생겼다.

현대 회사에서도 조직개편의 진짜 메시지는 조직도보다 인사발령에서 나온다.
대표가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말해놓고 모든 본부장 자리에 오래된 지인만 앉힌다면 직원은 발표자료보다 인사를 믿는다. “우리는 실력을 봅니다”라고 말하면서 승진자는 늘 대표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직원이 배우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관계다.
누구를 어디에 두었는지가 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조직개편은 구조와 인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상자만 바꾸면 과거의 권력관계가 새 조직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칭기즈 칸은 케식이라 불리는 친위조직도 강화했다. 케식은 칸을 지키는 경호의 기능을 가졌지만 단순한 경호대만으로 보기 어렵다. 칸 가까이에서 명령과 행정, 궁정업무를 접하는 핵심집단의 성격도 있었다.
이 조직에 들어가는 것은 최고권력의 운영방식을 가까이에서 배우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후 더 큰 역할을 맡을 인재를 관찰하고 경험시키는 통로로도 기능했다.

어찌보면 ‘리더십 파이프라인’와 비슷한 개념이다. 과거부터 중시되었던, 중요한 일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이 다음 책임자로 성장한다는 구조는 가장 강력한 리더십 파이프라인 중 하나였다.
작은 회사는 팀장을 뽑을 때 갑자기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 어제까지 개인실무만 하던 직원에게 오늘부터 여섯 명을 관리하라고 한다. 예산도, 평가도, 갈등조정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사람을 뽑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급여를 평가하며 처음으로 고객문제의 최종책임을 진다. 잘 못하면 대표는 말한다.
“팀장 체질이 아니네.”
하지만 그 사람이 리더가 될 준비를 해본 적이 있었을까. 리더는 직책을 주는 날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미리 보고 작은 책임을 맡아본 시간이 필요하다. 대표회의에 참관시키고 작은 예산을 맡기고 후배 한 명의 성장을 책임지게 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케식처럼 중심의 업무를 가까이서 경험하게 하는 구조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직개편을 하면 경영자는 사람부터 바꾸고 싶어 한다. 새 본부장을 영입하고 팀장을 교체하면 변화가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가 그대로라면 사람만 바꿔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대표에게 모든 권한이 몰려 있고 부서 사이의 책임이 겹치며 정보가 특정 사람에게만 모인다면 유능한 팀장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조직설계는 사람의 능력과 별개의 문제다.
누가 어떤 일을 책임지는지, 어느 수준의 결정을 할 수 있는지, 정보가 어디로 흐르는지, 성과를 어떤 단위로 보는지를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업팀과 운영팀이 고객클레임을 함께 책임진다고 적혀 있으면 겉으로는 협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최종결정을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으면 둘 다 상대를 기다린다. 공동책임은 때로 무책임이 된다. 반대로 모든 일을 한 팀에 몰아주면 협업이 필요한 일도 벽이 생긴다.
조직설계는 역할을 나누는 동시에 연결하는 일이다. 칭기즈 칸의 1206년 이후 재편에서도 사람을 새 단위에 넣고 지휘자를 세우는 일이 중요했다. 사람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계한 것이다. 오늘의 HR에서는 이를 Organization Design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사람을 뽑는 일과 좋은 구조를 만드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좋은 사람을 나쁜 구조에 넣으면 결국 좋은 사람도 나쁜 방식으로 일하게 된다.

조직을 다시 설계할 때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은 책임의 크기와 직함의 크기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름은 본부장인데 예산도 사람도 결정하지 못하는 자리가 있고, 반대로 직책은 과장인데 실제로는 여러 부서의 일을 조정하는 사람이 있다. 공식조직과 실제조직의 차이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조직도보다 인간관계를 따라 움직인다. 이 간극을 줄이려면 먼저 실제 의사결정의 흐름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누가 공식적으로 결재하는지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직원들이 실제로 누구에게 전화하는지, 고객이 항의했을 때 누가 마지막 답을 내는지, 채용이 필요할 때 누가 사실상 후보자를 정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 지도를 그리면 예상 밖의 사람이 보일 수 있다. 직책은 높지 않지만 모두가 찾아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직함은 높지만 아무도 결정을 맡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조직개편은 이 현실을 무시한 채 상자부터 그리는 일이 아니라 실제 힘과 역할을 공식구조 안으로 정리하는 일이어야 한다.
또한 조직을 나누는 기준도 명확해야 한다. 고객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제품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기능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에 따라 책임의 모양이 달라진다. 기준이 섞이면 한 고객을 두 부서가 동시에 관리하거나 한 제품의 수익성을 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일이 생긴다.

칭기즈 칸의 십진 편제가 오늘의 회사 조직도를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을 새 단위로 묶고 그 단위마다 책임자를 둔다는 점에서 조직이 커질 때 왜 새로운 구조가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관계의 조직을 역할의 조직으로 바꾸려면 누가 어디에 속하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책임지는지도 함께 정해져야 한다.
조직개편 뒤에는 반드시 실제 움직임을 다시 봐야 한다. 새 조직도를 배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뒤 직원들이 여전히 예전 사람에게 보고하고 있는지, 새 팀장이 실제로 결정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구조는 문서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정착한다.
직원 여든 명인 그 회사로 돌아가보자. 대표가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제로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xla장 결재라고 적혀 있는데 대표에게 다시 올라오는 일은 무엇인가.
두 부서가 동시에 책임진다고 되어 있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은 무엇인가. 직책이 없어도 대표와 친해서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중요한 정보가 공식회의보다 단체대화방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가. 그 현실을 인정해야 새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테무진이 칭기즈 칸이 되는 순간을 한 사람의 승진으로만 보면 중요한 변화를 놓친다. 그 시기에는 여러 씨족과 부족을 새로운 지휘단위로 다시 묶고 사람에게 자리를 부여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됐다.
부족의 우두머리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직접 움직일 수 있다. 조직의 리더는 자신이 만나보지 못한 사람도 같은 기준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가 더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를 몰라도, 대표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조직이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다음 리더가 자라야 한다.
우리 회사는 아직 대표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집단일까. 아니면 역할과 책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일까.
조직도를 열어보는 것보다 대표가 자리를 비운 하루를 관찰하면 그 답이 더 정확하게 보일 수 있다.
씨족에서 제국으로, 칭기즈칸이 된 테무진의 이야기
1편. 고아로 버려진 테무진은 어떻게 자기 사람을 만들었을까
2편. 혈연이 아닌 능력을 택한 리더, 테무진
3편. 테무진과 자무카, 같은 인재를 두고 다른 조직을 만들다
6편. 사람이 많아졌을 때 조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7편. 칭기즈 칸은 왜 뛰어난 부하에게 권한을 맡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