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은 늘 긴장으로 가득하다. 휘슬이 울리기 전, 선수들의 심장은 이미 미친 듯이 뛰고 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짧게 호흡을 가다듬고, 누군가는 바닥의 잔디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마음을 붙잡는다. 손끝이 차갑게 굳고, 입 안은 바짝 마른다. 몸은 준비됐지만, 머릿속에서는 '오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잘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맴돈다.
경기력은 기술과 체력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경기장의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불안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면 감당하기 어렵지만, 잘게 쪼개면 그 양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하나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불안이 된다'라고 했다.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실수나 패배일까? 아니면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경기에서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까? 막연한 불안은 몸을 굳게 만들고, 발은 무겁게, 호흡은 가빠지게, 손발이 제멋대로 굳게 만든다.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하던 플레이조차 나오지 않는다.
신인 선수들이 데뷔전에서 제 기량을 못 보여주는 이유도 대부분 여기에 있다.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라, 불안을 덩어리 째 안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장에 서 있는 순간, 머릿속은 이미 수많은 ‘만약’을 떠올리고, 그 생각은 몸을 무겁게 만든다.
방법은 단순하다. 불안을 잘게 쪼개는 것이다. 불안을 작은 단위로 나누면, 거대한 괴물 같던 감정이 내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과제로 바뀐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생기는 통제감은 긴장을 풀어주고, 다시 자신감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경기 전 루틴을 강조하는 이유도 같다. 마이클 조던은 늘 자신의 대학 시절 훈련복 바지를 유니폼 안에 입었다.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은 경기 전 물병 위치와 수건을 정해진 방식으로 두는 루틴이 있다. 루틴은 미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을 잘게 쪼개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루틴이 있을 때 선수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익숙한 행동에 몰입할 수 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상사와의 평가 면담 직전에 불안은 몰려온다. '이걸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실수하면 팀에 피해가 가는 건 아닐까?', '사람들 앞에서 망신 당하면 어쩌지' 이런 덩어리 불안은 머리를 하얗게 만들고, 목소리를 떨리게 한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손에 땀이 차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경기장에 서는 선수와 다를 바 없다.
해법은 같다. 불안을 조각으로 나누는 것이다. '발표 첫 문장만 또박또박 말하자', '오늘은 보고서 목차까지만 완성하자', '면담에서 꼭 확인해야 할 두 가지 질문만 준비하자' 등으로 쪼개면, 덩어리 불안은 구체적 행동으로 바뀐다.
실제로 프레젠테이션 공포증을 가진 직장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훈련도 ‘작게 쪼개기’다. 20분 발표를 떠올리면 압도되지만, '첫 30초는 웃으면서 아이컨택하기', '다음 2분은 사례 하나 전달하기'로 쪼개면 충분히 해낼 만하다.
불안은 발표에서만이 아니다. 신입사원은 첫 출근 전날 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으로 잠을 설치고, 팀장은 승진 후 첫 회의에서 '내가 진짜 이 자리에 어울릴까?'라는 불안을 느낀다. 심지어 이직을 앞둔 사람도 '새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에 흔들린다.
이때도 방법은 같다. 덩어리를 잘게 쪼개는 것. '출근 첫날엔 동료 이름 세 명만 외우자', '회의에선 내가 아는 사실 한 가지만 공유하자', '새 회사에선 첫 달 동안 시스템 매뉴얼만 완벽히 익히자' 등 작은 목표로 불안을 잘게 자르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꼭 나쁜 것 만도 아니다. 새로운 도전이 있을수록, 불안은 더 자주, 더 크게 우리를 찾아온다. 중요한 건, 불안을 없애려 애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작은 크기로 바꾸는 것이다.
올림픽 결승을 앞둔 선수도, 면접장에 들어서는 취준생도, CEO 앞에서 발표하는 직장인도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불안을 잘게 나누어 작은 행동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은 불안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만든다.
스포츠든 직장이든, 성과를 만드는 힘은 결국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경기력은 경기장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경기장 밖에서, 불안을 다루는 순간부터 이미 결정된다.
The Other Game은 스포츠 씬 속 리더십과 마인드셋을 연구합니다.
본게임 너머, 경기장 밖의 ‘또 다른 게임’을 다루는 방식이 개인과 팀의 성장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