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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격(格)에 대하여

사라지고 있는 격(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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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훈
허태훈Mar 4, 2026
2213

얼마전 출장지에서 복귀하던 중 서울역 플랫폼을 걷다가 바로 앞에서 전자담배를 피는 젊은 청년을 봤다. 달려가서 꺼달라고 말한 뒤 역무원에게 인계를 했던 기억이 난다. 결론은 흡연에 대한 처분권한은 코레일에 없어 용산 보건소에 신고하라는 답변을 듣고 끝났다. 격(格)은 원래 기준이나 틀을 뜻한다. 인격은 사람으로서의 기준, 품격은 품위의 틀, 격식은 상황에 맞는 형식을 말한다. 격이 없는 사람이란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는 타인을 향한 배려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향한 태도다.

서울역 승강장에서 전자담배를 피는 사람,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버스에서 발을 앞 좌석에 걸치고 앉은 사람 등 요즘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이는 단순한 불쾌감 뿐만 아니라 저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격은 거창한 게 아니다. 내가 혼자가 아닌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인식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그게 전부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 단순한 감각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아마도 격은 규칙이 아니라 감각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통화를 조용히 해달라는 지하철 안내 방송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다.

조직 안에서도 이 감각의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1) 회사를 대하는 격

어떤 사람은 조직을 자신의 성장 무대로 여긴다. 어떤 사람은 월급을 받는 거래처로 여긴다. 거래처로 여기는 사람은 조직이 먼저 무언가를 주어야 움직인다. 무대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 차이는 보고서보다 일상적인 행동에서 먼저 나타난다. 회의에서 말하는 방식,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일하는 방식, 조직의 이름을 외부에서 언급하는 방식. 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기준을 유지한다.

2) 일을 대하는 격

시킨 것을 정확히 하는 사람과 일 자체를 존중하는 사람은 다르다. 전자는 완수를 목표로 삼고, 후자는 완성을 목표로 삼는다. 완수는 끝냈다는 것이고 완성은 괜찮다는 것이다. 외형상 같아 보일 때도 많다. 둘 다 마감을 지키고 둘 다 결과물을 낸다. 하지만 그 결과물 안에 담긴 밀도가 다르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을 때 스스로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그 순간 일에 대한 격이 생긴다.

3) 동료를 대하는 격

격이 있는 사람은 위아래 없이 일관되다. 윗사람에게 친절하고 아랫사람에게 무례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다. 그 친절이 친절이 아니라 계산이라는 것을. 반대로 직급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무게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에게서는 신뢰가 생긴다. 그것은 제도가 만드는 신뢰가 아니다.

요즘 경영진들을 만나면 비슷한 고민을 자주 듣는다. 노동시장에 새롭게 들어오는 세대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노동력 중심의 산업구조 아래서 성장했다. 성실하게 일하면 보상받는 구조였고 그 모델은 실제로 작동했다. 근면과 헌신은 미덕이었고 조직에 대한 충성은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그런데 산업구조가 바뀌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지식과 창의성이 핵심 자원이 되는 시대. 과거의 성실한 근로 모델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 환경이 됐다. 문제는 그 전환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점이다. 일에 대한 태도, 조직에 대한 태도, 동료에 대한 태도는 산업구조와 무관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성실의 모델이 흔들리면서 태도의 기준 자체가 함께 흔들린 것처럼 보인다.

격은 가르침보다 스스로 갖추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결국 격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을 때, 자기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회사를 어떻게 여기는가. 내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 옆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요즘 시대에 격을 갖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격이 있는 사람이 귀하게 느껴지는 시대다.

E.O.D


태훈
허태훈
전략적 사고와 실무 경험을 가진 '일' 잘하는 전문가
전략적 사고와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일'잘하는 HR/ER 전문가 & 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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