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사무실을 열었다. 임대료는 없고 직원은 여덟 명이다. 밤 10시 반, 사무실 화면을 연다. 맨 위에 "대표님 차례 0건"이라고 떠 있다. 지금 내가 눌러야 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 아래로 여덟 명의 직원이 각자 자리에 앉아 있다. 총괄 PM 라온, 설계를 맡은 아틀라스, 분석의 벡터, 직무 체계의 오르빗, 화면의 픽셀, 데이터 담당, 검수의 체크, 인프라의 센트리. 오늘 끝낸 업무는 두 건이다. 이 직원들은 사람이 아니다. 생성형 AI로 만든 팀원들이다. 그리고 이 사무실은 내가 2년 동안 실패하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한 끝에 도착한 지점이다.
인사노무 현장에서 일하며 경영진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늘 비슷했다. 지금 인원이 적정한가. 올해 임금은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 인건비가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가. "경험상 이렇습니다"라는 답은 통하지 않았다. 경영진을 움직이는 언어는 숫자였다. 그래서 이 질문에 자동으로 답하는 도구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코드는 한 줄도 몰랐다. 노코드 툴인 버블과 생성형 AI를 붙잡고 HR Stats라는 진단 도구를 만들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사용자들은 재무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계에서 대부분 떠났다. 노동생산성 같은 지표는 낯설어했고 기술이 없으니 결과는 엉성했다.
작년 12월, AI 코딩 도구를 만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역할을 분명히 나눴다. 기획과 판단은 내가 하고 구현은 AI가 하고 검증은 다시 내가 했고 완성엔 6개월이 걸렸다. 업종별 벤치마크 데이터 1,500행을 직접 모았고 그렇게 SATURN LAB의 첫 번째 진단 모듈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올여름에는 15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2주 동안 자기 회사 데이터로 직접 진단을 돌려 봤다. 업종 평균은 실제 경쟁사 체감과 다르다는 지적, 용어가 어렵다는 지적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래도 "새로운 시각에서 전략을 다시 보게 됐다"는 말이 가장 오래 남았다.
체험단이 끝나고 엔진을 하나씩 뜯어봤다. 그리고 불편한 사실을 마주했다. 화면에는 Random Forest라고 적혀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규칙을 머신러닝처럼 보이게 만든 코드였다. 실제로 모델을 호출하는 곳도 있었지만 업종 평균 몇 줄로 학습한 모델이라 의미 있는 예측이라 보기 어려웠다. AI에게 머신러닝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AI는 그럴듯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것을 걸러내지 못한 건 내 책임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지난 컨설팅에서 내가 내렸던 판단, 즉 이 회사는 인력을 늘려야 하는지 유지해야 하는지 줄여야 하는지를 정답값으로 붙여 모델이 내 판단을 학습하게 했다. 인력 모델은 47건 검증에서 72.3%, 보상 모델은 61.7%의 정확도가 나왔다. 아직 높은 숫자는 아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진짜 학습이 일어났다. 지금은 화면에서도 규칙 기반 판단과 학습 모델을 구분해서 표시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를 배웠다. AI는 시키는 대로 만든다.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이번 달, 개발 방식을 한 번 더 바꿨다. 내가 AI 도구 하나에 지시를 내리는 대신 역할이 나뉜 AI 팀을 꾸렸다. 일하는 순서는 실제 회사와 비슷하다. 내가 [요청하기]에 일을 올리면 관련 직원 두세 명이 먼저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낸다. PM 라온이 담당자를 정하면 담당 직원이 결과물을 만든다. 체크가 독립적으로 검수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확인한다. 홈페이지에 반영하는 일은 내가 [배포 승인]을 누른 뒤에만 일어난다.
맡긴 일이 없을 때도 사무실은 멈추지 않는다. 센트리는 비용과 오류 로그를 점검하고 체크는 계산식의 단위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고, 픽셀은 모바일 화면이 깨지지 않는지 본다. 이런 상시 업무는 점검하고 보고하는 데까지만 한다. 방향을 바꾸는 결정은 하지 않는다. 화면 속 캐릭터의 움직임에도 원칙이 하나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실제로 기록된 업무가 있을 때만 움직인다. 바빠 보이게 꾸미는 연출은 넣지 않았다. 첫 시범 업무 두 건을 돌리면서 실제 오류도 하나 찾았다. 검수 담당이 내 수정 의견을 보지 못하는 구조였다. 그날 바로 고쳤다. 사람으로 구성된 팀이었어도 충분히 생길 법한 문제였다.
비용은 월 15만 원으로 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쓰는 돈이 아니라 넘지 않기로 한 선이다. 서버 비용과 AI 사용료를 합쳐 이 안에서 움직이고 한 번의 업무에도 비용 한도가 걸려 있다.
8명에게 일을 맡기면서 가장 오래 걸린 작업은 코드가 아니었다. 방법론 기준서였다. 직원들이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문서로 정해야 했다. 개인별 연봉은 저장하지 않는다. 재무제표만으로 하는 1단계 진단이 볼 수 없는 영역까지 진단하는 척하지 않는다. 논의하지 않은 개념을 임의로 만들어 넣지 않는다. 결과는 전문가가 확정한다.
이 규칙들은 인사 현장을 겪어 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문장들이다. 개인 연봉 데이터가 회사 안에서 얼마나 민감한지 경영진이 숫자 하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진단이 과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AI 팀원들은 코드를 빠르게 쓴다. 하지만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건 도메인을 아는 사람이 정해 줘야 한다.
기술은 도구이고 방향을 아는 사람이 도구를 쥐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이 만들어진다. 1년 전에 쓴 이 문장이 지금은 조금 더 구체적인 뜻이 되었다.
지금까지 인사노무 업무는 대부분 일이 터진 뒤에 시작됐다. 퇴사자가 나오면 채용 공고를 다시 올리고 분쟁이 생기면 자문을 구하고, 임금 협상 시즌이 와서야 인상률을 계산한다. 노무 자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청이 와야 개입하고 사건이 생겨야 판단한다.
나는 이 순서를 바꾸고 싶다. 발생한 뒤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분류하고 진단해서 예측하는 쪽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SATURN LAB은 이 흐름을 하나로 묶었다. 어느 회사나 가진 재무·인원 데이터로 현재를 진단하고 직무 체계를 기준으로 채용부터 퇴직까지를 운영하며 데이터가 쌓이면 이탈과 갈등을 미리 예측한다. 노무관리는 그 바닥에 깔린다.
이 구조는 시장에 없던 것이다. 노무 자문은 법적 판단에서, HR 시스템은 기록에서, 컨설팅은 보고서에서 멈춘다. 각자 한 조각씩은 잘하지만, 데이터를 설계하고 머신러닝으로 판단을 돕고, 전문가가 확정하고 그 결과가 다음 결정의 데이터로 다시 쌓이는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잇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필요했다. 반복되는 판단은 자동화하고 사람의 시간은 정말 판단이 필요한 곳에 쓴다. 컨설팅이 끝나면 보고서 한 권이 남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계속 쓸 수 있는 데이터와 기준이 남는다. 노무사의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라 노무사의 판단이 쌓이는 구조를 파는 것이다.
사건을 기다리는 노무가 아니라 미리 보고 먼저 움직이는 노무. 지금 여덟 명의 팀원과 함께 만들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지금 팀원들은 문서만 만든다. 다음 단계는 코드를 읽고, 고치고, 직접 배포하는 것이다. 첫 과제는 SATURN LAB 홈페이지 개편으로 정했다. 코드가 실행되어야 개발을 하고 이 사무실을 만든 의미가 있다. 1년 전에는 AI 도구 하나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AI 팀 하나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도구는 계속 바뀔 것이다. 다만 인사 현장의 질문에 무엇이 좋은 답인지 아는 일은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 같다.
사무실 개업 소식을 전하며 데이터 기반 HR 의사결정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