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에 공지가 내려왔다. "올해부터 AI 활용을 전 조직 필수 KPI로 반영합니다."
팀장은 그 한 줄을 다시 읽는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쓰라는 건지는 없다. 그냥 쓰라고 한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다. 새로운 걸 도입할 때마다 참고할 선진 사례가 있었고, 먼저 해본 회사가 있었고,
비교할 기준이 있었다. 막히면 벤치마킹할 대상을 찾으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 채로 다 같이 처음 가는 길이다.
위에서는 하라고 하고, 팀원들은 "그래서 뭘 하면 되냐"고 묻는다. 그 사이에 팀장이 끼어 있다.
팀장은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도 AI가 처음이다." 하지만 그 말을 삼킨다.
팀장이니까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모른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이건 팀장 개인의 엄살이 아니다. 한 조사에서 직장인의 92.1%가 AI를 써봤다고 답했지만,
회사 차원의 전사 도입은 5.3%에 그쳤다. 개인은 뛰는데 조직은 걷는다.
그 간극을 몸으로 메우는 자리에, 팀장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사실이 하나 있다. AI 앞에서는 팀장도 다시 신입이다.
어제까지 그 분야의 베테랑이었던 사람이, AI라는 낯선 도구 앞에서는 어제 입사한 사람과 같은 출발선에
선다. 다만 아무도 그를 신입으로 대해주지 않을 뿐이다.

경력직이 새 회사에서 “5분이면 될 일이 한 시간 걸린다”고 말할 때, 그건 능력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맥락이 없어서였다. AI 앞의 팀장도 똑같다. 역량은 그대로인데, 기준이 없다.
첫째, 뭘 써야 할지 모른다. 도구는 매일 쏟아진다. 그런데 "우리 팀 일에 뭘 어디에 쓰라는 건지"는 아무도 정리해주지 않았다. 신입의 "뭐부터 하면 되나요?"와 정확히 같은 질문 앞에, 팀장이 선다.
둘째,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모른다. 고객 데이터를 넣어도 되나? AI가 만든 결과물을 보고서에 그대로 써도 되나? 선을 넘으면 사고인데, 그 선을 아무도 안 그어줬다. 신입이 "이거 물어봐도 되나" 눈치 보듯, 팀장은 "이거 써도 되나" 눈치를 본다.
셋째, 쓴 걸 어떻게 평가받는지 모른다. 회사는 “AI 성과를 평가하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안 준다. AI를 잘 썼다는 게 뭔가? 많이 쓰면 잘한 건가? 빨리 끝내면 잘한 건가? 측정 기준 없이 평가하라는 건, 자 없이 길이를 재라는 말이다. 팀장은 자기 성과도 어떻게 인정받을지 모르는데, 팀원의 AI 성과까지 매겨야 한다.
넷째, 아낀 것을 어떻게 나눌지 모른다. 이게 가장 어렵다. AI로 두 시간짜리 일을 삼십 분에 끝냈다고 하자. 그 아낀 한 시간 반을, 팀원은 '워라밸'로 돌려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회사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길 기대한다. AI가 만든 과실을 누가 가져가느냐. 실제로 생성형 AI를 업무에 도입한 근로자들은 주당 평균 1.5시간을 단축했지만, 절약된 시간이 생산성 향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예외다.
한국은행 분석에서 유의미한 생산성 향상이 관찰된 건 성과가 보상과 직결되고 업무 자율성이 높은
자영업자와 전문직뿐이었다.
아낀 시간이 자기 몫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사람은 AI로 더 멀리 간다는 뜻이다.
반대로 과실이 체감되지 않는 다수에게 AI는 '빨리 쓸수록 손해'인 도구로 남는다.
빨리 끝내면 일이 더 얹힐 뿐이니까. 그래서 조용히 천천히 쓴다.
네 가지를 관통하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팀장은 자기도 신입이면서, 팀원의 AI 활용까지 판단하고
승인하고 평가해야 한다. 신입이 신입을 온보딩시켜야 하는 자리. 그게 지금 팀장이 선 위치다.
위에서 내려온 “AI 쓰라”는 압력과, 아래에서 올라온 "그래서 뭘, 왜, 뭐가 좋은데"라는 질문.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팀장이 끼어 있다. 팀장은 AI 전환의 수혜자도 아니고 설계자도 아니다.
그 모든 혼란이 통과하는 병목이다. 그리고 병목에 선 사람은, 대개 혼자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신입이 혼자 헤맬 때, 우리는 그걸 신입 탓이라고 하지 않는다.
온보딩을 설계하지 않은 조직 탓이라고 한다. AI 앞의 팀장도 마찬가지다.
팀장이 AI를 못 다루는 게 아니라, AI를 다룰 기준을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신입에게 온보딩을 설계해 준 게 HR이라면, AI 앞에서 다시 신입이 된 팀장에게도 온보딩이 필요하다.
‘AI 온보딩'을 하나만 얻어걸리라는 무책임에서 예측 가능한 설계로 옮겨야 한다.
첫째, 팀장이 '일단 해볼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
물론 HR이 모든 직무의 AI 활용법을 대신 설계할 수는 없다.
HR이 할 일은 정답을 그려주는 게 아니라, 팀장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볼 수 있는 환경을 까는 것이다.
과하다 싶을 만큼의 교육.
"당장 성과가 안 나도 된다"는 심리적 안정감.
유료 서비스 지원.
작은 성과라도 포상
둘째, '어디까지 써도 되는가'의 선을 긋는다.
보안, 데이터, 윤리, 산출물 활용의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한다. 넣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써도 되는 것과 검증이 필요한 것. 이 선이 없으면 팀장은 사고가 두려워 아예 안 쓰거나, 모르고 선을 넘는다. 가이드라인은 팀장을 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팀장이 안심하고 쓰게 하는 보호 장치다.
셋째, ‘AI 성과를 무엇으로 보는가'를 정의한다.
“AI 성과를 평가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무엇을 성과로 볼지부터 조직이 합의해야 한다. 사용 빈도인가, 업무 질의 변화인가, 절약된 시간인가, 새로 시도한 영역인가. 기준 없이 평가를 떠넘기면, 팀장은 또 감으로 매기고 팀원은 또 불복한다. 측정의 자를 주는 게 HR의 일이다.
넷째, ‘AI가 만든 과실을 어떻게 나누는가'를 설계한다.
이건 HR이 가장 회피하고 싶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AI로 아낀 시간이 오롯이 '더 많은 일'로만 돌아오면, 구성원은 AI를 적으로 느낀다. 앞서 본 한국은행 분석이 말하듯, 과실이 자기 보상으로 직결되는 집단에서만 AI는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절약된 시간의 일부가 구성원에게 체감되는 몫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AI 전환은 조직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 과실의 분배를 설계하지 않은 AX는, 팀장 혼자 밀어붙이다 지치는 캠페인으로 끝난다.
이 넷은 팀장 혼자 할 수 없다.
AI 전환이 팀을 끌고 갈지 지치게 할지는, 팀장의 의지가 아니라 HR이 깔아둔 기준 위에서 결정된다.
HR을 위한 다섯 가지 점검
우리는 “AI를 쓰라”고 요구하면서, 팀장이 마음 놓고 시도해볼 판(교육·안정감·도구·격려)을 깔아준 적이 있는가?
팀장이 "이건 써도 되나"를 물을 때, 답해줄 허용 범위가 문서로 존재하는가?
‘AI 성과'의 측정 기준을 조직이 합의했는가, 아니면 측정을 팀장에게 떠넘겼는가?
AI로 아낀 시간이 구성원에게 어떤 몫으로 돌아가는지, 우리는 설계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팀장을 AI 전환의 병목으로 세워두고 혼자 버티게 하는가, 아니면 함께 건너는가?
AI 앞에서 팀장도 신입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입에게는 그렇게 촘촘한 온보딩을 설계하면서,
AI 앞에 선 팀장에게는 "알아서 쓰라"는 말만 건넨다.
팀장이 헤매는 건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처음 가는 길에, 아무도 지도를 쥐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AI 전환은 조직이 함께 건너는 강이다. 그 강의 가장 좁고 급한 길목에 팀장이 서 있다.
그 자리에 팀장을 혼자 세울 것인가, 기준이라는 다리를 놓아줄 것인가.
그 다리를 놓는 사람은, 결국 인사담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