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노무법인이 기업에 월 7만 원의 정기 노무자문료를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수십 년 전의 자문료보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노무법인 간 출혈경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되는 지금의 상황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단순히 자문료가 낮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전문가들이 제공해 온 서비스의 가치 자체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노동관계법령이나 판례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 잘 모르는 영역이기에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가령 기업의 입장에서 월 30만 원의 노무자문 서비스와 월 3만 원 수준의 GPT 구독 서비스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에게 질의하고 답변을 기다려야 하지만 후자는 언제 어디서나 질문하고 즉각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다. 더욱이 AI는 법률정보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업무까지 수행한다.
물론 GPT가 노무사의 전문성과 법률적 판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특히 개별 기업의 복잡한 사실관계나 법률적 분쟁에서는 전문가의 경험과 책임 있는 판단이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질문하면 관련 법령을 찾아 설명하고 서면으로 답변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월 30만 원의 노무자문이 월 3만 원의 GPT와 비슷한 가치를 제공한다면 기업이 10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자문료가 얼마까지 낮아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앞으로 어떤 전문서비스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진 시대에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전문가의 경쟁력은 결국 가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새해가 되면 사주와 타로, 신점을 통해 한 해의 운세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정기적으로 사주 상담을 받는 사업가들도 있다. 제대로 된 상담을 받기 위해 한 번에 10만 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월 7만 원의 노무자문료를 다시 생각해 보자. 한 달 동안 기업의 법률적 위험을 자문하는 비용보다 미래를 이야기해 주는 사주 상담 한 번의 가격이 더 높은 셈이다. 물론 두 서비스의 제공 방식과 내용이 다르므로 가격만으로 가치를 비교할 수는 없다. 또한 사주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현상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왜 사주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까. 단순히 미래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궁금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얻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 자체보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깝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경영자는 현재 인건비가 얼마인지보다 향후 인건비 부담이 얼마나 증가할지 궁금해한다. 지금의 이직률보다 핵심인재가 언제, 왜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노무이슈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더욱 클 것이다.
월 7만 원의 노무자문과 10만 원의 사주 상담이라는 역설적인 비교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다. 사람들은 과거를 설명하는 정보만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판단의 근거를 원한다. 전문서비스 역시 그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기존의 노무자문 서비스는 상당 부분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이루어져 왔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 절차와 법적 의무를 설명하고 부당해고 분쟁이 발생하면 관련 법령과 판례를 검토하며 노동청 진정이 제기되면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업무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이러한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앞으로 충분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생각해 보자. 신고가 접수된 이후 조사 절차와 유의사항을 설명하는 것은 전문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특정 부서의 이직률과 결근율이 높아지고 조직문화 진단 결과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현상을 사전에 포착했다면 어떨까. 이러한 징후를 분석해 조직 내 갈등 위험을 진단하고 관리자 리더십 개선이나 조직운영 방식의 변화를 제안할 수 있다면 기업이 체감하는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표만으로 괴롭힘 발생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예방적 조치가 필요한 영역을 발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수단 중 하나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다. 기업에는 재무, 인사, 생산, 영업 등 다양한 데이터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보를 연결하면 단순히 과거에 무엇이 발생했는지를 설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선택이 기업의 경영성과에 유리할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과 예측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판단하고 실제 현장에 적용해 그 성과를 확인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인건비 증가의 원인이 과도한 연장근로에 있다면 단순히 비용 증가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로시간 관리체계와 업무 프로세스의 개선을 제안해야 한다. 그리고 개선 이후 실제로 연장근로와 인건비 부담이 감소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정보를 정리하는 일은 AI가 더욱 빠르고 저렴하게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보가 기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고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며 실행 가능한 처방으로 연결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가치다. 진단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예측을 통해 미래의 위험을 파악하며 처방과 실행을 통해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앞으로 전문서비스가 제공해야 할 새로운 가치라고 생각한다.
최근 인사관리 영역에서 HRBP(HR Business Partner)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사담당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인사제도를 운영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업을 이해하고 경영목표에 부합하는 해법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이는 외부 노무전문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노동관계법령을 잘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사의 사업구조와 경영환경을 이해하고 인사노무의 관점에서 경영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문서비스 시장의 위기를 모두 생성형 AI의 등장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고객사가 질문하기를 기다리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대응하는 수동적인 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전문성을 지금까지도 동일한 방식으로 판매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월 30만 원의 노무자문료와 월 3만 원의 GPT 구독료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이제 전문가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정보에서 기업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와 기회를 읽어내는 통찰력 그리고 이를 구체적인 대안과 조직의 변화로 연결하는 실행력에 달려 있다.
결국 월 7만 원의 노무자문료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가격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답변의 가격은 낮아지고 있지만 미래를 읽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통찰력과 실행력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전문서비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더 많은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일 것이다.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