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이나 그룹코칭을 할 때 "최근에 우리 조직에서 사라진 것과 새로 생긴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종종 놀랄만한 답변이 돌아오곤 합니다.
"저희는 아침 인사를 없앴어요. 유연근무제로 출근 시간이 제각각인데, 늦게 오는 사람들이 인사하는 게 눈치 보인다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라는 소통의 행위 자체를 삭제해버린 것입니다. 조직 내 갈등이나 불편함이 발생했을 때 가장 편리한 해결책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조직을 유기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솔루션의 편의성'만을 우선시한 접근입니다.
삭제 버튼이 명쾌해 보이는 이유는 즉각적이고 가시적이며,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삭제 버튼이 조직이 진정 원했던 근본적 해결책이었을까요?
조직 내 모든 관습이나 행동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긍정적 기능도 수행합니다.
아침 인사가 누군가에게는 지각의 눈치를 주는 도구였을지 모르지만, 다른 이에게는 동료의 컨디션을 살피는 연결의 시작점이었을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팀 코칭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작은 아침 인사가 업무적 소통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스몰토크의 시작이었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시스템은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합니다. 무언가를 제거하면 그 빈자리는 반드시 다른 것으로 채워집니다. 인사를 없앤 자리에 '눈치'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 자리를 '무관심'이나 '끼리끼리 문화'가 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풍선 효과입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툭 튀어나오듯, 근본적인 대화가 부재한 상태에서 행위만 제거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음습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형시킬 뿐입니다.
문제 중심의 접근은 선명하고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없애는 데 집중할수록 조직원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부정적 프레임이 선명해집니다.
요즘 팀장님이나 임원분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진행할 때 자주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 이슈가 불거지자, 시니어들은 주니어에게 말 거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립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지뢰를 밟느니, 차라리 최소한의 관계로만 지내겠다”는 것이죠.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며 직급을 없앤 것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저의 고객 중 한 분은 모두가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개인주의가 정당화되면서, 선배로서 후배에게 기여하고 싶었던 의무감이나 동료로서 느끼던 연대감이 희미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기여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던 연결 고리가 끊어진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 중심 사고(Problem-centered Thinking)가 만들어낸 '조직의 빙하기'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다 소통의 혈관까지 막아버린 것이죠. 시스템 사고에서는 이를 임시방편의 덫(Shifting the Burden)이라고 부릅니다. 당장의 수치는 개선할 수 있지만, 조직의 자기 회복력(Resilience)은 약화됩니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퇴화하듯, 갈등을 마주하고 해결해나가는 작은 성공(Small Success)의 경험이 사라진 조직은 아주 작은 풍파에도 쉽게 무너지는 허약한 체질이 됩니다.
거베이즈 부시(Gervase Bushe)와 로버트 마샥(Robert Marshak)은 담론적 조직개발(Dialogic OD)을 통해 조직을 '끊임없이 대화가 일어나는 의미 생성의 장'으로 정의했습니다. 조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매일 똑같은 이야기만을 나누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갖게 하고 이전에 없던 대화를 시작하게 만드는 생성성(Generativity)에서 옵니다. 마샥과 부시는 리더가 변화를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대신 새로운 담론이 일어날 장을 마련해주면, 변화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스스로 출현(Emergence)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거베이즈 부시가 만난 병원 급식팀은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이직률은 치솟았고, 직원들은 무표정하게 환자들에게 식판을 던지듯 내려놓았으며 환자들의 불만은 폭주했습니다. 부시는 여기서 세 가지 핵심 도구를 사용하여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의도적 파괴 – 낡은 각본에 균열을 내다 직원들은 스스로를 "최저임금을 받고 쟁반이나 나르는 투명인간"으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Main Narrative). 부시 교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루만 파업한다면, 환자들의 치료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직원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일이 단순 노동이 아닌 '임상 치료의 일부'임을 직면했습니다.
생성적 이미지 – 새로운 이름표를 달아주다 부시는 '친절하라'고 지시하는 대신, "회복의 조력자(Nutritional Partner)"라는 생성적 이미지를 선물했습니다. 쟁반을 나르는 행위는 이제 '영양 치료'로 재정의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직원들이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국의 온도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의미가 만든 자발적 변화의 출현(Emergence)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