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은 떳떳하게, 벌은 억울함 없이
인사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면 사무실 공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쪽에서는 축하 인사가 오가고, 다른 쪽에서는 "그 사람이 왜?" 하는 말이 낮게 들립니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보상과 처분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기준이 있다는 것과 기준이 통한다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별개의 일일지 모릅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생기는지, 상과 벌을 어떻게 다루면 받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상을 받은 사람은 기쁩니다. 다만 그 기쁨이 오래가려면 옆자리 동료가 "그럴 만했다"고 느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축하받는 자리에서 오히려 설명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벌은 조금 더 어렵습니다. 잘못이 분명해도 처분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서운합니다. 그 서운함이 억울함으로 바뀌는 때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나만 걸렸다고 느낄 때, 비슷한 일을 하고도 넘어간 사람이 떠오를 때, 무엇이 기준이었는지 몰랐을 때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보상은 얼마나 달라야 할까요. 벌을 줄 때는 무엇을 지켜야 받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요. 이 두 가지를 함께 놓고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공정성은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온 주제입니다. 1960년대에 아담스가 정리한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들인 노력과 받은 보상의 비율을 주변 사람과 견주어 본다고 합니다. 그 비율이 어긋난다고 느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 불편함을 줄이려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조직을 떠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얼마를 받았느냐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납득이 되느냐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이후 연구에서는 공정성을 둘로 나누어 봅니다. 하나는 결과가 공정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한가입니다. 앞의 것을 분배 공정성, 뒤의 것을 절차 공정성이라고 부릅니다. 절차 공정성에서는 기준이 미리 알려져 있었는지, 누구에게나 같게 적용되었는지, 당사자가 자기 입장을 말할 기회가 있었는지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면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해도 비교적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결과가 같아도 과정이 불투명하면 불만이 오래 남는다고 합니다.
보상을 설계할 때는 고정급과 변동급을 어떻게 나눌지, 조직 성과와 개인 성과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오래된 숙제입니다. 개인 성과만 보상하면 서로 돕기보다 각자 자기 몫을 챙기기 쉽습니다. 조직 성과만 보상하면 열심히 한 사람이 허탈해지기 쉽고요. 그래서 두 가지를 따로 보고, 각각 얼마나 반영할지 미리 정해 두는 방식이 널리 쓰입니다.
벌에 대해서는 '뜨거운 난로 법칙'이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더글러스 맥그리거가 징계를 설명하면서 든 것으로, 뜨거운 난로는 만지기 전에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만지면 곧바로 데고, 누가 만져도 똑같이 데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 빗댄 이야기입니다. 미리 알려 주고, 바로 다루고, 같은 일에는 같게 하고, 사람이 아니라 행동을 대상으로 하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세부 해석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벌이 억울함으로 남지 않으려면 처분의 크기보다 이런 조건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저는 이렇게 적용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상, 곧 보상입니다. 기본 역량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본 연봉의 차이를 가능한 한 좁혔습니다. 기본급은 한번 벌어지면 해마다 쌓이고 되돌리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그 차이가 일을 해서 생긴 것인지, 입사 시점이나 협상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출발선에서 크게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차이는 총 보상에서 냈습니다. 조직 성과와 개인 성과를 분리해서, 조직 성과는 같은 조직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몫으로, 개인 성과는 그 사람이 만든 기여에 따른 몫으로 보았습니다. 두 가지를 반영한 총 보상에서 차이가 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해냈느냐에 따라 도착선이 달라진다는 점을 구성원에게 설명하기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상을 받은 사람이 떳떳하려면 그 이유를 동료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기준으로 이 결과가 나왔는지를 받은 사람만 아는 이야기로 두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유가 공유되어 있으면 축하하는 쪽도 마음이 편하고, 받는 쪽도 해명할 일이 줄어듭니다.
벌에서는 세 가지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첫째,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미리 알려 두었습니다. 사람은 모르고 한 일로 벌을 받으면 벌의 크기와 상관없이 억울해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같은 일에는 같은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직급이 높거나 성과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기준이 달라지면, 그 순간부터 기준 자체를 믿지 않게 됩니다. 셋째, 결정하기 전에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듣고 나서도 결론이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들은 과정이 있었는지는 받아들이는 태도에 분명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했다고 매번 매끄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기준이 있어도 서운해하는 사람은 있었고, 기준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다만 기준이 없을 때와는 대화의 내용이 달랐습니다. "왜 저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이 "이 기준에서 저는 어디가 부족했나요?"라는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의 질문에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마땅치 않지만, 뒤의 질문에는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있었습니다.
마무리
조직이 냉소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걸 받지?"와 "내가 왜 이걸 당하지?"가 하나둘 쌓이고, 그 사이에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을 때 시작되는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잘 만든 제도도 힘을 잃습니다.
기준은 사람을 줄 세우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을 받은 사람이 떳떳하고, 벌을 받은 사람이 억울하지 않게 하려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려면 기준이 미리 알려져 있어야 하고, 모두에게 같게 적용되어야 하고, 당사자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제도를 들이는 일보다 이 세 가지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