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십 교육을 받아본 팀장이라면 누구나 "상황대응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1970년대 폴 허시와 켄 블랜차드가 만든 이 이론은, 지금도 전 세계 기업 교육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리더십 모델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리더십 이론 중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이론은 단순합니다. 팀원을 역량과 의욕에 따라 4단계(D1~D4)로 나누고, 그에 맞는 리더십 스타일을 처방합니다.
D1 (낮은 역량 + 높은 의욕, 의욕 충만한 신입) → 지시형
D2 (낮은 역량 + 낮은 의욕, 생각을 알 수 없는 사람) → 코칭형
D3 (높은 역량 + 낮은 의욕, 잘하지만 시니컬한 사람) → 지원형
D4 (높은 역량 + 높은 의욕, 에이스) → 위임형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 이론은 팀장의 시간이 무한하다는 것과 모든 사람은 좋아 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팀장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팀장 역시 사람입니다. 한 사람에게 깊은 코칭을 쏟으면, 다른 누군가는 방치됩니다. 이론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말해주지만, "누구에게 먼저 쓸 것인가"는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팀장들을 만나고, 코칭하고, 강의를 진행하면서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받았습니다. "다 이해는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합니다." 이론은 정답이지만, 현장은 정답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황대응 리더십’을 다르게 봅니다.
제가 강조하는 모델은 단순합니다.
D1에게는 지도(멘토링), D2에게는 지시(과업 세분화), D3에게는 지원(코칭), D4에게는 지지(권한위임).
기존 이론과 정확히 D1과 D2 처방이 뒤집힙니다. 왜 그런지,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기존 이론은 D1에게 지시형을 처방합니다. 의욕이 이미 높으니 관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D1은 다릅니다. 의욕이 높을 때가 바로 흡수력이 최고조인 순간입니다. 이 골든타임에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는 지시만 던지면, 신입은 일은 따라 하지만 목적은 이해하지 못한 채 D2로 떨어집니다.
대신 멘토링으로 일하는 이유와 방법을 함께 가르쳐주면, D1에서 D4로 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멘토링은 단순히 선배가 친절을 베풀고, 연착륙을 돕는 게 아닙니다. 가장 효율 높은 타이밍에 가장 깊은 투자를 하는, 철저히 계산된 전략입니다.
여기가 가장 현실적인 부분입니다.
의욕이 이미 꺾인 사람과 마주 앉아 마음을 여는 대화를 시도해 본 팀장이라면 압니다.
이게 얼마나 많은 감정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정작 조직의 미래를 책임질 에이스(D4) 인재는 방치됩니다.
저는 D2에게는 과업을 잘게 쪼개서 명확하게 지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도 결과와 성과가 담보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작은 업무를 정확히 완수하는 경험이 쌓이면, 역설적으로 그 작은 성공이 의욕을 끌어올리는 시작점이 됩니다.
직무특성이론에서도 과업의 명확성과 완결성이 내재적 동기를 높인다고 말합니다. 거창한 동기부여 대화보다, 손에 잡히는 작은 성공 하나가 더 강력할 때가 있습니다. 업무를 지시한 팀장은 반드시 한 줄이라도 지시한 업무와 결과에 대해 기록을 해둬야 추후 객관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습니다.
절약한 시간은 D4, 조직의 핵심 자산에게 씁니다. 위임할 권한을 더 넓혀주고, 더 큰 무대를 열어주는 데 집중하는 겁니다. 일못러보다 일잘러에게 집중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이 모델이 그럴듯하다고 느끼셨다면, 이번 주 안에 다음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팀원 명단을 펼치고 D1~D4로 분류해 보세요.
지난 한 달, 누구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썼는지 돌아보세요. D2에게 쏟은 시간이 D4의 성장 기회를 갉아먹고 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하세요.
D2 팀원 한 명에게, 다음 한 주는 의미 있는 대화 대신 명확하게 쪼갠 과업 하나만 줘보세요. 작은 성공 경험이 의욕에 미치는 변화를 직접 관찰해 보십시오.
여기서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모델은 만능이 아닙니다.
D3에게 대한 지원(코칭) 처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욕이 꺾인 이유가 불신 때문인지, 번아웃 때문인지, 업무 미스매치 때문인지 최소한의 원인 파악 없이 코칭만 반복하면, 그 팀원은 “그 일은 예전에도 해봤던 일이에요. 해봤자 안됩니다”라며 더 멀어집니다. 이 모델이 작동하려면, 코칭 이전에 짧고 가벼운 원인 점검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D1에 대한 멘토링도 마찬가지입니다. 멘토의 역량과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신입은 빠르게 잘못된 방식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 어떤 업무에서는 D4이고, 다른 업무에서는 D1일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은 고정된 사람 분류가 아니라, 업무 단위로 매번 다시 점검해야 하는 살아있는 틀입니다.
"모든 팀원에게 똑같이 정성을 쏟아야 공정한 리더다." 많은 팀장이 이 믿음 때문에 스스로를 갈아 넣다가 팀원보다 먼저 번아웃됩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팀장에게 진짜 필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쏟을 것인가, 아니면 가장 효과가 큰 곳에 쏟을 것인가."
상황대응리더십은 50년 가까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가르쳐 왔습니다. 이제는 거기에 하나를 더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에 먼저 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팀장이, 결국 가장 적은 시간으로 가장 강한 팀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