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대의 문은 못 열었지만, 구시대의 문은 닫겠습니다
K교수님의 다양성 수업, 이번 주제는 ‘Generation Diversity’였습니다.
교수님은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X세대(1965~1980년), 2000년대 주역이 될 세대라는 의미의 Y세대(1981~1996년), X와 Y를 잇는다는 의미의 Z세대(1997~2010년) 등 ‘세대의 구분’을 먼저 소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MZ세대를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높고, Tech Friendly하며, 기성세대와는 다른 신선한 관점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세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소속감이 낮고,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보상과 인정에 민감하며, 워라밸을 중시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K교수님의 연구 결과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작 MZ세대라는 집단의 공통점보다 그 안의 개인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세대’라는 구분이 오히려 사람을 쉽게 규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대 간 갈등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 설명도 이어졌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현실적 집단갈등’, 타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차이’, 세대 간 ‘원활하지 못한 소통’ 등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세대 간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MZ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표현되는 것을 보면, 세대간 갈등에는 경제적 상황의 변화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수업 중 재미있는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고어텍스를 만든 W. L. Gore & Associates는 Job Title이 CEO와 Associate뿐인데, 전 세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Flat 조직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나이가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와 수평적 조직문화로 잘 알려진 스웨덴에서는 같은 일을 한다면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구조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를 ‘우리의 Resource를 빼앗아 가는 사람’으로 인식할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설명도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례는 따로 있었습니다. 18시가 넘어 팀원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낸 팀장에게 팀원이 “근무시간 이후에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현직 팀장인 저에게는 솔직히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조직에서 크게 성장할 사람이다.” 같은 상황을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세대 다양성 수업에서 제가 얻은 첫 번째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번 주제에 대해 함께 수업을 듣는 원우들이 제출한 Experience Log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낀 세대의 불편함’, 그리고 ‘결국은 소통의 문제’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제가 직접 겪고 경험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어 제출했습니다. 저의 자전적인 Experience Log입니다.
격동의 70년대 끝자락에서
격동의 70년대 끝자락에 태어난 저는 학부를 90년대 말에 입학했고, 나이는 X세대의 끝에 걸쳐 있습니다.
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중심에 있었지만, 변화하기 전 세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남학생들이 학교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웠고, 여성 흡연자들은 구석에 숨어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밀레니엄이 지나 복학을 하니 건물 안에서의 흡연은 금지되었고, 여성들도 당당하게 흡연하는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기말에 입대한 군대에서도 이등병 때 각종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했는데, 전역할 무렵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악습이 없어졌습니다. 물론 제가 당했다고 후임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겠다는 보상심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예전의 당연함’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꽤 많이 경험한 세대였습니다.
Junior 시절의 기억
2004년 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당시 팀장님은 저와 위로 띠동갑이었습니다. 늘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다니셨고, 굉장히 어른처럼 보였습니다. 팀장들은 별도의 집무실은 없었지만 창가 쪽에 파티션이 쳐진 자리에 앉았고, 팀원들을 자리로 호출해서 업무를 지시했습니다. 팀장들은 실무보다는 지시와 피드백을 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막내 생활을 오래 한 저는 늘 입구 쪽 끝자리에 앉았습니다. 외부에서 방문하신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제 몫이었습니다. 팀장님과 선배들이 퇴근하기 전에는 먼저 퇴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늘 반복되던 야근 속에서 어쩌다가 팀장님이 “오늘은 초과근무 등록해라”라고 말씀하시면 오히려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회식을 하면 꼭 노래방에 갔습니다. 만취한 선배들이 도우미를 불러서 “막내야! 블루스 좀 춰봐”라고 했을 때, 크라잉넛의 ‘말달리자’를 부르며 선배들에게 “닥쳐! 닥쳐!”라고 외치며 소심한 복수를 했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Senior가 되어보니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제가 팀장이 되었습니다. 시나브로 노타이에서 비즈니스 캐주얼로, 또 청바지에 운동화가 자연스러운 근무복이 되었습니다. 자율좌석제를 시행하면서 매일 아침 키오스크에서 자리를 맡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팀장의 자리였던 창가 쪽 좋은 자리를 일찍 출근한 구성원들이 이미 선점합니다. 팀원들은 팀장을 피하는 건지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어디에 앉아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합니다. 18시 정각이 되면 팀원들이 퇴근 인사를 하러 옵니다. 그래도 인사를 해주는 게 고맙기도 합니다. 어쩌다 야근을 하게 되더라도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초과근무 수당을 챙겨줍니다.
회식을 자주 하지도 않지만, 하더라도 1차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9시 전에 끝납니다. 만약 지금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르고 후배에게 블루스를 강요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팀장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릅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이 이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슨 말만 하면 ‘라떼’,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팀원들에게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가끔은 조심스럽습니다.
새시대의 문은 못 열었지만
대학원에 와보니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제 동기들은 1971년생부터 1998년생까지 무려 27년 차이가 납니다. 최근 10살 이상 어린 동생에게 제 나름대로 진정성을 담아 장문의 카톡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 돌아온 답장은 짧았습니다. “예ㅎㅎ” 제가 당부했던 내용들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시당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대가 다르고,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식도 다르니까요. 그 친구가 보기에 저는 ‘재미없고 진지한 꼰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가 후배였을 때 선배들을 바라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수업을 들으며 ‘세대 다양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대의 경험을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경험도 존중하는 것. 그리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강요하지 않는 것. 그게 세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새시대의 문을 여는 사람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지나온 구시대의 문 만큼은 다음 세대가 다시 열지 않도록 확실하게 닫겠습니다.
K교수님의 다양성 수업에서 세대 다양성에 이어진 다음 주제는 ‘Social Class and Diversity’였습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