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오랫동안 ‘많이 만드는 것’을 성과라고 생각해 왔다. 사무실에서는 보고서를 많이 만드는 사람이, 공장에서는 더 많은 설비를 가동하는 조직이 열심히 일한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정말 많이 만들면 생산성도 높아질까?
생산량과 생산성은 다르다. 생산량은 만들어낸 결과물의 양이고, 생산성은 투입한 시간과 자원으로 얼마나 큰 가치를 만들었는지를 뜻한다. 아무리 많은 결과물을 만들었더라도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고객의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하는 시간을 늘린다고 성과가 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펜커벨의 연구에 따르면 근무시간이 늘어나면 처음에는 산출량도 증가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추가 근무시간에 따른 산출 증가 폭이 줄어든다(Pencavel, 2015). 피로와 재작업이 늘어나면서 더 오래 일해도 실제 가치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의 설비와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생산 설비나 IT 인프라를 늘리면 회사가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요와 활용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규모부터 키우면 유지비와 감가상각비, 이자비용이 남는다. 인프라는 많아졌지만 고객 가치와 업무 방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생산성 향상보다 비용 증가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가 아니다. 그 자원이 실제로 어떤 가치로 이어지고 있는가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조직과 투자의 확대가 성장의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가 꺾이면 매출은 줄어도 고정비는 그대로 남는다. 평소에는 감당할 수 있었던 비용이 위기의 순간 회사의 체력을 빠르게 소진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모든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R&D와, 안전, 핵심 기술, 인재 육성처럼 미래 경쟁력을 만드는 투자는 오히려 지켜야 한다. 줄여야 할 것은 전략과 연결되지 않은 채 관성적으로 유지되는 비용과 절차다. 회사의 체력은 비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위기를 버틸 자금과 그 위기를 통과할 사람이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특정 리더나 소수 핵심인력에게 판단과 노하우가 몰려 있다면, 그들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조직도 흔들릴 수 있다. 개인의 경험을 조직의 지식으로 남기고 다음 책임자를 미리 키워야 하는 이유다. 결국 가벼운 회사는 무조건 작은 회사가 아니다. 불필요한 부담은 줄이되, 현금과 기술, 지식과 다음 사람은 준비해 두는 회사다. 좋은 시기에 크게 확장하는 능력보다 어려운 시기에도 선택권을 잃지 않는 능력이 회사의 진짜 체력일 수 있다.
생성형 AI는 조직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고객지원 상담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생성형 AI의 지원을 받은 근로자의 시간당 문제 해결 성과가 향상됐으며, 특히 경험이 적은 직원에게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Brynjolfsson et al., 2025). 하지만 AI를 도입했다고 생산성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호주 커먼웰스은행은 AI 음성봇 도입 이후 고객상담 인력 45명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노조가 통화량 증가와 초과근무 문제를 제기하자 은행은 감축 결정을 철회하고 사과했다(Reuters, 2025).
AI와 같은 기술이 업무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사람부터 줄이면,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 다른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AI로 비슷한 보고서를 여러 개 만들다 보면 작성 시간은 줄어도 무엇을 선택할지 검토하는 일이 새롭게 생긴다. 과거에는 사람이 불필요한 문서를 천천히 만들었다면, 이제는 AI가 그것을 훨씬 빠르게 대량 생산하는 셈이다.
프롬프트를 여러 번 입력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좋은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은 필요하다. 문제는 AI가 만든 결과물이 어떤 판단과 실행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결과물의 양과 사용량을 성과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업무에 AI를 붙이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낭비를 자동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제 생산성의 기준을 활동량에서 가치로 바꿔야 한다. 보고서 작성 건수나 시스템 접속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일이 실제로 얼마나 빨라졌는지, 오류와 재작업이 얼마나 줄었는지, 확보한 시간을 더 중요한 판단과 문제 해결에 사용했는지다. 업무 재설계의 순서도 달라져야 한다. 먼저 존재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업무를 없애야 한다. 그다음 반복적인 취합과 정리를 기술에 맡기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을 사람의 판단과 검증에 사용해야 한다. AI를 활용해 일을 더 빠르게 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일은 더 빨리 해야 하는 일인가, 아니면 애초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무조건 더 많이 만들고 더 크게 확장하는 일이 아니다. 필요 없는 비용과 업무, 절차를 덜어내 조직을 가볍게 만들고, 그렇게 확보한 여력을 회사의 체력과 사람의 성장에 다시 투자하는 일이다.
가볍게 움직이되 쉽게 무너지지 않는 회사, 조직 만들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생산성의 모습이다.
[참고문헌]
Brynjolfsson, E., Li, D., & Raymond, L. R. (2025). Generative AI at work.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40(2), 889–942. https://doi.org/10.1093/qje/qjae044
Pencavel, J. (2015). The productivity of working hours. The Economic Journal, 125(589), 2052–2076. https://doi.org/10.1111/ecoj.12166
Reuters. (2025, July 29). Australian lender CBA to cut 45 jobs in AI shift, draws union back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