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번의 1on1 을 하며 „이런 질문을 왜 나한테 할까“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건 그 질문을 하는 구성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내가 아직 설명하지 않은 기준이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묻고, 언제 질문하며,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확인한 뒤 가져와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조직의 역할과 관계, 상황의 긴급성, 상대가 가진 정보와 권한을 함께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능력을 막연히 ‘센스’라고 생각했다. 경력이 있는 실무자라면 이런 판단을 이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전 조직에서 배운 질문의 경로와 타이밍이 현 조직에서도 그대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구성원에게 조직적 감각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이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경력 있는 구성원이어도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잘해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정보의 홍수 등으로 중압감이 커지면 평소에 자연스럽게 하던 판단조차 신중해진다. 실수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스스로 결정을 안하고 리더에게 확인을 구하게 되는데, 리더는 이러한 행동을 역량 부족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정보를 가진 사람과 결정할 사람은 다르다
조직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두 종류의 사람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가진 사람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두 역할이 한 사람에게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시스템 사용법은 실무 담당자가 가장 잘 알 수 있다. 특정 프로세스의 배경은 오랫동안 그 업무를 맡은 동료가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을 추가로 사용할지, 업무의 우선순위를 바꿀지, 다른 조직에 협조를 요청할지는 조직장의 결정일 수 있다. 이 구분을 못할 경우, 모든 질문이 리더에게 향한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리더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잘못된 사람에게 질문했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리더가 모든 정보의 출처이자 모든 결정의 창구가 되면 업무 속도는 느려진다.
질문을 리더에게 가져오기 전에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안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거나 결정할 사람은 누구인가?
먼저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정리된 내용을 결정권자에게 가져오는 것이 일을 훨씬 빠르게 만든다.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방식이었지만, 모든 구성원에게 당연한 방식은 아니었다.
너무 빨리 묻는 것과 너무 늦게 묻는 것
어떤 구성원은 언제 질문할 지 타이밍 판단을 어려워했다. 너무 빨리 질문하면 먼저 찾아보거나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늦게 질문하면 해결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거나 이미 커진 문제를 뒤늦게 알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업무 프로세스나 시스템 사용법에 관한 질문이라면, 먼저 관련 자료나 담당자를 확인해볼 수 있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도 업무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법적 리스크나 노무 이슈, 중요한 이해관계자와의 갈등, 예산 초과 가능성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가 줄어드는 문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있더라도 조기에 알리는 편이 낫다.
“아직 모든 사실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이 있어 먼저 공유드립니다. 오늘까지 확인한 내용은 이렇고, 나머지는 추가로 확인하겠습니다.”
이런 공유는 준비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읽고 적절한 시점에 리더를 참여시키는 판단이다.
반대로 아직 사실관계도 정리되지 않은 문제를 너무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공유하면 불필요한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작은 오해가 공식적인 이슈로 확대되거나, 관련자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질문의 타이밍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의식적으로 이 질문을 지금 하지 않았을 때의 리스크와, 지금 했을 때 발생할 영향을 생각해봐야 감이 생긴다.
질문을 꺼내는 자리도 중요하다
누구에게 언제 물을 것인지뿐 아니라, 어디에서 질문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공개된 회의에서 질문해도 되는 사안이 있다. 여러 사람이 동일한 정보를 알아야 하거나, 함께 의견을 모아야 하는 문제라면 공개된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편이 효과적이다.특정인의 판단이나 책임, 민감한 이해관계가 연결된 문제는 다를 수 있다. 공개된 회의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하면 상대는 질문을 정보 확인이 아니라 비판이나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럴 때는 먼저 1대1로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다음 회의에서 이 주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배경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제가 파악한 내용은 이렇고, 혹시 놓친 맥락이 있을까요?”
사전 대화를 통해 사실관계와 상대의 입장을 확인한 뒤 공식 회의에서는 해결책과 선택지를 논의할 수 있다.
같은 질문이라도 처음 꺼내는 자리가 달라지면 상대의 반응과 문제 해결의 속도가 달라진다.
나는 이런 판단을 너무 오래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여러 조직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것이었다.
제일 높은 사람부터 찾아가는 것이 안전할까
새로운 업무의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보라고 했을 때, 어떤 구성원은 가장 높은 직급의 사람에게 먼저 연락해서 해당 팀원들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허락을 받으려고 했다. 그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왜 일을 이렇게 어렵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실무 정보를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부터 만나면 되는것 같은데.
해당 구성원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상위 리더를 건너뛰고 실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조직에서는 어디까지 직접 움직여도 되는지 구체적인 범위를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업무와 프로세스를 이해하기 위한 미팅은 제 허락이나 상대 조직장 허락 없이 관련 담당자에게 그냥 직접 요청해도 됩니다. 전사 정책 변경, 조직 내 역할 분담 변경을 제안하거나 다른 조직의 자원을 요청해야 한다면 먼저 저와 방향을 맞춰주세요.”
정보 수집과 관계 형성, 의견 조율과 의사결정은 서로 다른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먼저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어떤 조직에서는 (어떤 업무는) 실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른 조직에서는 (다른 업무는) 해당 리더에게 먼저 알리는 편이 관계상 안전할 수 있다. 조직 내 상황에 따라서 각 업무 사안에 따라서 현 조직의 맥락에서 어느 경로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것이다.
정치적 감각이라는 말의 의미
나는 이런 능력을 조직적 감각이자 정치적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적 감각은 줄서기나 눈치보기가 아니라 조직 안에서 누가 어떤 정보와 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어느 시점에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해야 일이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읽는 능력이다. 조직도에는 공식적인 보고 관계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내용은 조직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사안의 배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공식적인 결정권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와 먼저 의견을 맞춰야 논의가 빨라지는가
누구에게는 사전에 설명하고 누구에게는 결과를 공유하면 되는가
어떤 주제는 공개적으로 논의해도 되고 어떤 주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가
지금 알려야 하는가, 조금 더 확인한 뒤 알려야 하는가
어떤 질문이 지원 요청으로 들리고 어떤 질문이 책임을 넘기는 것으로 들리는가
이런 지형은 회사마다 다르고, 같은 회사 안에서도 조직과 리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경력이 있다는 것은 이전 조직의 지형을 읽어본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조직의 지형까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경력직이어도 그 감각이 작동하려면 먼저 이 조직의 맥락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
“센스 있게 하세요”로는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조직적 감각은 매뉴얼로 생기지 않는다. 누구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지, 지금 말해야 하는지 기다려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직접 결정해도 되는지는 실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며 배운다. 그 과정에서 실수와 시행착오는 필수적이지만, 그래도 구성원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려면 리더는 자신의 판단 과정을 설명해주면 좋다. 특히 리더의 결정 뿐만 아니라 리더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
일을 알려주는 것과 일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
나는 구성원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자산은 업무 자체보다 일을 해나가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리더로서 가장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부분은 구성원들이 업무 근육을 키우도록 돕는일이다. 사실 정보 전달 방식으로 일을 알려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시스템을 가르치고, 업무를 배정하면 된다. 얼굴 붉힐 일도 없고 구성원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반면, 어디를 가든 통하든, 일하는 근육을 만들수 있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우는 사람에게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구성원이 한발짝씩 편안함과 익숙함(comfort zone) 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꾸준히 돕는 것이 결국 구성원을 더 오래, 더 멀리 성장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런 관점에서 1on1은 업무 근육을 빠르게 키우는 PT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