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사진 작가 앙드레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면, 후회가 남을 가능성도 두 가지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인간의 선택이 가진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 많은 대안을 비교하고, 더 오랫동안 고민하면 더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은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설명합니다. 기업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때 더 많은 지원자를 인터뷰하면 분명 더 뛰어난 인재를 만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채용된 사람이 기업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 역시 함께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사람은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비교의 기준도 늘어납니다. 그리고 선택 이후에는 선택하지 않은 대안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선택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오히려 후회의 가능성을 함께 높이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이 현상은 인간관계에서도 발견됩니다.
만약 최고의 직업을 가진 한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남성은 뛰어난 외모를 가졌지만 경제적 기반이 부족합니다. 다른 남성은 외모는 다소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지위와 높은 수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고민은 끝나지 않습니다.
외모를 선택하면 경제적 안정에 대한 아쉬움이 남고, 경제력을 선택하면 설렘과 매력에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후회의 크기와 강도는 생각보다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선택 과정에서 심사숙고를 오래 할수록 사람은 선택지 자체보다 선택에 투입한 시간과 감정에 더 집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택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까지 함께 소유하려고 합니다.
결국 후회는 잘못된 선택 때문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놓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선택의 패러독스는 지금 한국의 기업과 구직자들이 마주한 현실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반기 채용 시즌이 시작되면 기업들은 고민합니다.
높은 스펙을 가진 지원자를 선택할 것인가.
좋은 태도를 가진 지원자를 선택할 것인가.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많은 기업이 최고의 인재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지원자를 만나고 더 정교한 평가 도구를 도입합니다.
그러나 지원자가 많아질수록 결정은 오히려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기업이 채용하는 것은 이력서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누구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우수 기업들은 스펙보다 적합성(Fit)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가?"보다
"이 사람이 우리 조직 안에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
를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직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조직문화,
높은 연봉,
유연한 근무환경,
성장 기회.
누구나 원합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취업 환경에서는 모든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회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회사가 나의 가치와 연결되는가?"
기술,연봉, 직무에 관련된 자신의 가치와 나다움을 미리 정리해 봄직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연결되지 않는 조직에서의 성장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고의 선택은 가장 많은 조건을 충족하는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가장 깊이 연결되는 선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선택의 패러독스는 하반기 평가 시즌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리더들은 매년 고민합니다.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가.
누구에게 높은 평가를 줄 것인가.
누가 다음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캘리브레이션 회의가 시작되면 수많은 데이터와 사례가 테이블 위에 올라옵니다.
하지만 이때 리더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현재의 성과만 보는 것입니다.
높은 성과자는 눈에 잘 띕니다.
그러나 미래의 리더는 반드시 현재의 최고 성과자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까요?
평가의 핵심은 결과보다 성장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관찰된 관계 안에서만 보입니다.
만약 리더가 평소 꾸준한 1on1을 진행해 왔다면 평가의 질문은 달라집니다.
이 구성원은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성장했는가?
어떤 역량이 새롭게 개발되었는가?
어떤 환경에서 가장 높은 몰입을 보이는가?
현재 직무가 이 사람의 강점과 맞는가?
더 적합한 역할은 없는가?
결국 평가는 과거의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좋은 리더는 평가를 하기 전에 점수를 보기보다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이 구성원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나는 이 사람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도록 도왔는가?"
"나는 이 사람에게 적절한 기회와 피드백을 제공했는가?"
평가는 리더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리더 자신의 리더십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앙드레 브레송의 말처럼 선택에는 언제나 후회가 남습니다.
리처드 세일러가 말한 것처럼 더 많은 선택지는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선택의 패러독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짜 교훈은 후회를 피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선택의 기준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채용에서도,
이직에서도,
평가에서도,
승진에서도,
완벽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원칙에 충실한 선택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결국 좋은 선택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