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관리의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

팀장이 성과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성과관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의 방식이 곧 진리라고 착각하고, 내 조직과 환경에 맞게 제도를 적용하지 못한다.
성과관리의 역사 속에는 조직이 무엇을 성과로 여겨왔는지 담겨 있다. 중세 도제 시스템에서는 장인이 도제의 숙련도를 눈으로 확인했고, 산업혁명기의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은 생산성을 지표화했다. 그리고 이후로 등장한 MBO,, KPI, BSC, OKR 같은 도구들도 당시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의 성과관리 방식들을 맥락없이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말 평가는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던 산업시대의 유산이다. 1년에 한 번 생산량을 점검하듯 직원의 성과를 측정하는 이 방식은 업무가 단순하고 변화가 느렸던 시대에는 합리적이었지만, 프로젝트가 3개월 단위로 바뀌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 동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360도 피드백은 역량 중심 인사관리가 부상한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는데, 평가 도구의 타당도와 평가자의 신뢰도, 그리고 그 피드백이 인기투표가 아닌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들이 각기 다른 목적에서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조직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말 평가를 통해 1개년의 성과를 통합 측정하면서도 분기별 OKR로 민첩성을 추구하고, 상대평가로 경쟁을 부추기면서 360도 피드백으로 협업을 강조하는 모순이 있다.
역사적 맥락을 모른 채 성과관리 제도를 바라보니, 성과관리제도는 선택 가능한 도구가 아니라 억지로 따라야 하는 규범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역사를 알고 나면, 성과관리제도는 하나의 옵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 때 비로소 어떤 도구를 선택할지, 어디까지 적용할지,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팀장이 이러한 안목을 갖추지 못하면, 낡은 제도를 비판없이 수용하거나 새로운 리더십 모델이나 트렌드가 나타날 때마다 유행에 휩쓸리게 된다.
성과관리의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1. 중세의 도제 시스템 (500년 ~ 1500년)
2. 산업혁명과 성과관리의 변화 (1760년 ~ 1900년)
3. 테일러리즘(Taylorism), 과학적 관리의 탄생 (1900년 ~ 1920년)
4. 포디즘(Fordism), 대량생산과 표준화의 시대 (1913년 ~ 1930년)
5. 목표관리의 시대 (1950년 ~ 1980년)
6. 균형성과표(BSC, Balanced Score Card)의 등장 (1990년 ~ 2000년)
7. 평가 등급 할당의 시대 (1980년 ~ 2010년)
8. OKR과 애자일 성과관리 (2010년 ~ 현재)
9. 생성형 AI 시대의 성과관리 (2023년 ~ 현재)
10. 성과평가를 하지 않는 시대 (?)
이제 시대에 따른 성과관리방법을 하나씩 살펴보자.
중세의 도제 시스템 (500년 ~ 1500년)

중세 유럽은 토지와 신분이 곧 권력이었다. 봉건제 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주에 귀속되어 농업에 종사했다. 이러한 시대에 유일하게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스템이 길드(Guild)였다.
십자군 전쟁과 원거리 교역 확대로 유럽 곳곳에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할 때, 도시에는 직물, 금속, 가죽, 건축 등 수공업이 발달했고, 다양한 직업의 장인들은 길드를 조직해서 품질 기준을 설정하고 가격을 관리했다. 길드는 해당 직업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을 관리하고, 표준화된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생산품의 품질을 보증했다. 오늘날의 자격증 제도, 직업훈련 과정, 품질인증 시스템이 이미 중세에 존재했던 셈이다.
이 당시의 성장 경로는 3단계였다. 도제(Apprentice) 단계에서는 보통 12세 전후의 소년이 장인의 작업장에 들어가 7년 이상 거주하며 기초 기술과 직업 윤리를 배웠다.
숙련공(Journeyman) 단계에서는 임금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했다. 특히 숙련공들은 다른 도시를 다니면서 여러 장인의 기법을 배우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는 오늘날 HR에서 핵심인재육성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직무순환(Job Rotation)이나 해외 파견과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장인(Master)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걸작(Masterpiece)을 제작하여 길드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심사위원단 앞에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이 과정은 현대의 포트폴리오 평가나 프로젝트 기반 평가의 시초이다.
요약하면, 중세의 성과관리는 숫자나 등급으로 상대평가를 하지 않았다. 만든 물건이 곧 그 사람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발자의 깃허브(GitHub) 프로필,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컨설턴트의 프로젝트 레퍼런스가 결국 현대판 걸작인 셈이다.
장황한 설명 대신, 조용히 결과물을 제시하는 사람이 장인이다.
산업혁명과 성과관리의 변화 (1760년 ~ 1900년)

18세기 중반 시작된 산업혁명은 성과관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증기기관의 도입과 대규모 공장 시스템의 등장은 개인의 장인정신보다 표준화되고 측정 가능한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평가 체계를 낳았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에서 제시한 분업의 원리는 작업자를 전체 생산 과정이 아닌 단일 작업에 특화시켰고, 이는 성과 측정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노동의 질적 측면을 축소시켰다.
이 시기의 방직공장에서는 시간당 생산량을 엄격히 기록했으며, 목표치에 미달할 경우 임금 삭감은 물론 체벌까지 가해졌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계 고장이나 원자재 부족 같은 노동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까지도 개인의 성과 부진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관리 가능한 요인과 불가능한 요인을 구분하는 공정한 성과평가 원칙과 정반대되는 접근이었다.
결과적으로 산업혁명 초기의 성과관리는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켰으며, 장기적 역량 개발보다는 단기적 생산량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춘 비인간적 시스템이었다.
테일러리즘(Taylorism), 과학적 관리의 탄생 (1900년 ~ 1920년)

20세기 초,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대규모 이민으로 공장의 규모는 커졌지만 관리 방식은 여전히 관행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때 성과관리를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다.
1911년,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을 통해 작업의 효율성을 분석하고 이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베들레헴 제철소의 철 운반 작업이었다. 스톱워치로 작업자의 동작 하나하나를 측정하고, 최적의 작업 순서와 휴식 패턴을 설계했다. 그 결과 노동자 한 명의 하루 운반량이 12.5톤에서 47톤으로 약 3.8배가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일당은 1.15달러에서 1.85달러로 60% 인상에 그쳤다. 생산성 향상의 효과는 결국 자본가에게 돌아간 셈이다.
테일러리즘의 핵심은 네 가지이다. 경험과 직관 대신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기, 작업자를 과학적으로 선발하고 훈련하기, 노사가 과학적 원칙에 따라 협력하기, 그리고 기획과 실행을 분리하기이다. 특히 기획과 실행의 분리는 육체노동자를 단순 반복 작업만 하는 부품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획과 실행의 분리는 현대 조직의 틀이 되었다. 기획팀은 전략을 수립하고 운영팀은 이를 실행한다. 기획자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운영자는 그 프로세스 내에서 실행한다. 성과지표를 정하는 사람과 그 지표를 달성하는 사람이 다르다. IT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획자가 요구사항을 정의하면 개발자가 구현하고, PM이 일정과 범위를 통제하면 엔지니어가 그 안에서 코드를 작성한다.
성과관리도 다르지 않다. KPI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률을 추적하고, 생산성을 수치로 환산하는 일은 테일러가 스톱워치를 들고 작업량을 측정하던 것과 같다. 테일러에게 노동자는 최적화의 대상이었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1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기획과 실행을 나누고, 지표를 추적하고, 효율을 측정하는 테일러의 도구를 충실히 물려받았다.
그런데 테일러의 성과관리 방정식에는 빠져 있는 변수가 있다. 인간의 동기, 감정, 자율성이다. 이 변수들이 포함되지 않은 성과관리는 120년 전과 다르지 않다.
포디즘(Fordism), 대량생산과 표준화의 시대 (1913년 ~ 1930년)

헨리 포드(Henry Ford)는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생산 시스템 전체로 확장해 20세기 산업 문명의 토대를 구축했다. 1913년 미시간주 하이랜드파크 공장에 도입한 이동식 조립 라인(Moving Assembly Line)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노동과 소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혁명이었다.
포드는 극단적인 분업과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동차 조립 공정을 84개의 단순 작업으로 쪼개고, 각 작업자는 몇 분마다 동일한 동작만 반복했다. 컨베이어 벨트가 작업 속도를 기계적으로 통제하면서 인간이 기계의 리듬에 종속되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그 결과 모델 T 한 대의 조립 시간은 12시간 30분에서 93분으로 8분의 1로 단축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생산성의 이면에는 인간의 비용이 있었다. 단조로운 반복 작업에 지친 노동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포드 공장의 연간 이직률은 370%에 달했다. 14,000명의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52,000명 이상을 새로 고용해야 해야 했다. 사람이 공장을 떠나는 속도가 자동차가 공장에서 나오는 속도만큼 빨랐던 셈이다.
포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14년 1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일당 2.34달러였던 급여를 5달러로 두 배 이상 인상하고, 하루 근무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였다. 그 결과 이직률이 1년 만에 370%에서 16%로 급감했고, 생산성은 40% 이상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포드의 영업이익은 2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이러한 포드의 정책은 단순히 처우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아닌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었다. 포드는 노동자를 자사 제품의 소비자로 만들어 임금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설계했다.
T모델의 고객은 바로 포드의 노동자들이었다.
목표관리(MBO)의 시대 (1950년 ~ 198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재건과 경제 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승전국의 경제적 우위를 누리며 대기업 중심의 관료적 조직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무직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화이트칼라의 성과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다. 1954년 출간된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그는 GE와 GM에서의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목표관리(MBO, Management by Objectives)의 개념을 제시했다. MBO의 핵심은 상명하달식 목표 부여가 아닌, 상사와 부하직원이 함께 목표를 설정하고 평가하는 양방향 프로세스였다. 테일러가 기획과 실행을 분리했다면, 드러커는 그 둘을 다시 연결한 셈이다.
1981년 조지 T. 도란(George T. Doran)은 한 경영학 저널에서 목표 설정의 방법인 SMART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SMART는 구체성(Specific), 측정가능성(Measurable), 달성가능성(Achievable), 관련성(Relevant), 시한(Time-bound)의 의미이며, 오늘날까지 목표 설정의 기본으로 여겨진다.
HP의 HP Way는 MBO를 실리콘밸리 문화와 결합시킨 선구적 사례였다.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브 팩커드(Dave Packard)는 목표에 의한 관리를 실천하며, 경영자가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소통하는 MBWA(Management By Walking Around)를 추구했다. 목표는 위에서 내려오지만, 신뢰와 소통은 아래에서 쌓인다는 철학이었다. MBO가 이끌어 낸 가장 큰 진보라면, 목표와 성과관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명령이 아닌 상하가 함께 만드는 약속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기업은 연초에 목표를 합의하고, 중간에 점검하고, 연말에 결과를 평가하는 사이클을 운영한다.
팀장들이 고민하는 성과관리 문제의 해답이 피터 드러커의 책에 이미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균형성과표(BSC, Balanced Score Card)의 등장 (1990년 ~ 2000년)

1990년대 미소냉전이 종식되고 글로벌 시장이 열렸다. 인터넷과 IT기술을 바탕으로 기업의 가치는 공장과 설비 같은 유형자산에서 기술, 브랜드, 인재와 같은 무형자산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업들이 성과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재무 지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199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캐플란(Robert S. Kaplan) 교수와 컨설턴트 데이비드 노턴(David P. Norton)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균형성과표: 성과를 이끄는 측정(The Balanced Scorecard: Measures that Drive Performance)’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사업의 후행지표인 재무 성과만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마치 백미러를 보며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하며, 미래의 성과를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SC(Balanced Scorecard)는 성과를 ‘재무’, ‘고객’, ‘내부 프로세스’, ‘학습과 성장’이라는 네 가지 관점으로 기업의 성과를 다면적으로 바라본다. 각 요소들은 인과관계로 연결된다. 직원의 학습과 성장으로 내부 프로세스가 개선되고, 이를 통해 고객 만족도가 상승하여, 재무 성과가 향상된다는 흐름이다. 현시대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무 지표만으로 팀을 평가하지 않고, 고객 만족도, 이직률, 프로세스 효율성, 학습 시간 같은 비재무적 지표를 함께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BSC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네 가지 관점에 대해 각각 성과지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수립하고 관리하는 것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지표 간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BSC가 전략 도구인지, 성과 관리 도구인지, 의사소통 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결국, BSC의 원형을 그대도 성과지표로 사용하는 기업을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SK가 기업의 성과를 EV(Economic Value)와 SV(Social Value)로 설명하는 것은 비재무적 지표를 중시하면서도 BSC와 같은 지표의 복잡도를 완화할 수 있는 효율적 관리법이다. SV를 ESG로 해석하면 다각적인 실행 과제로 분할할 수 있다.
백미러만을 봐서는 안 되지만, 계기판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평가 등급 할당의 시대 (1980년 ~ 2010년)

1980년대 미국 경제는 주주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주주 가치 극대화였고, 미국 기업들은 성과주의 문화를 도입했다.
1981년 잭 웰치(Jack Welch)가 GE의 CEO로 취임하면서 '활력 곡선(Vitality Curve)'이라 불리는 평가 등급 할당 제도를 도입했다. 상위 20%에게는 파격적 보상을 주고, 중간 70%에게는 코칭과 개발 기회를 부여했으며, 하위 10%는 퇴출시켰다. 잭웰치의 재임 20년간 GE의 시가총액은 약 120억 달러에서 4,100억 달러로 성장했고, 잭 웰치는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불렸다.
마이크로소프트, 포드, 3M 등의 기업들도 평가 등급 할당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 전체가 탁월한 성과를 내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최하위 등급을 받아야 했다. 동료의 성공이 곧 나의 실패가 되는 구조에서는 진정한 협력이 불가능했다.
2013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내 평가 등급 할당 제도를 폐지했고, 연이어 활력곡선을 만들었던 GE마저 자사의 평가 등급 할당 제도를 포기했다. 하지만, 평가 등급을 강제 할당하는 방식은 대부분의 한국기업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S, A, B, C 등급별 비율을 고정하고 팀원을 상대 평가하여 등급에 할당한다. 이러한 방식은 팀 전체가 탁월한 성과를 내도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하고, 그 등급은 보상과 승진에 연동된다.
연말 마다 팀장의 고민은 누가 잘했는지가 아니다.
낮은 등급을 수용할 사람을 정하는 일이다.
OKR과 애자일 성과관리 (2010년 ~ 현재)

2008년의 금융위기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대규모 실업, 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졌다. 기업들은 계획보다 적응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연말 평가는 너무 느리고 경직되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구글은 인텔로부터 전파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을 자사 문화에 맞게 발전시켰다. 분기별로 목표(Objectives)와 핵심 결과(Key Results)를 설정하고 이를 전사에 공개했다. OKR의 특징은 평가가 아닌 방향 설정이라는 점이다. 팀원들은 자신의 OKR을 스스로 정하고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업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목표 달성률이 낮더라도 실패가 아닌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OKR은 "나는 [Objective]을 달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Key Results]로 측정할 것이다(I will achieve [Objective] as measured by [Key Results])."와 같이 작성한다. 이 한 문장 안에 가슴 뛰는 목표(Objective)와 그 결과를 증명할 숫자(Key Results)를 담는 방식이다.
목표(Objective)는 정성적인 문장으로 기술한다. '매출 200억 달성'은 경영진의 가슴은 뛰게 할 수 있어도, 구성원에게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반면 '20대 여성 네 명 중 한 명의 화장대에 우리 제품이 놓이는 것'이나 '앱스토어 라이프스타일 부문 1위'같은 목표는 달성했을 때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목표가 되고, 읽는 순간 해보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다.
핵심 결과(Key Results)는 정량적이어야 한다. 목표의 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목표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면, Key Results는 '30~40대 신규 고객 2만 명 확보', '신규 서비스 매출 20억 달성', '교육 만족도 4.8점'과 같이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해야 한다. 하나의 Objective에 3~5개의 Key Results를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OKR을 기술할 때, 많은 팀장들이 하는 실수가 있다. Key Results와 할 일을 혼동하는 것이다. '디자인 시안 3개 제작', '개발자 2명 채용'은 Key Results가 아니라 일의 과정이다. Key Results는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결과다. 디자인 시안을 3개 만드는 이유는 방문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개발자 2명을 채용하는 이유는 서비스 응답 속도를 0.5초 이내로 줄이기 위해서다. 결과와 과정을 구분하지 못하면, OKR은 형식적인 업무 리스트가 되어 버린다.
OKR의 또 다른 특징은 달성률에 대한 관점이다. 구글은 OKR의 적정 달성률을 70%정도로 본다. 100% 달성했다면 목표가 너무 낮았다는 뜻이고, 40% 미만이라면 목표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기준은 과제가 너무 쉬우면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불안을 야기한다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의 몰입 이론과도 맥락이 유사하다. 현재 역량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목표가 몰입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이유다.
그런데 70%만 달성해도 된다면, 평가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여기서 OKR의 가장 큰 특징이 드러난다. 바로 평가와 보상의 분리다. 기존에는 목표 달성률이 곧 평가 점수였고, 평가 점수가 곧 보상이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달성 가능한 수준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OKR은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되, 성과를 목표 달성률로 판단하지 않는다. 도전적 목표의 70%를 달성한 사람이 안전한 목표의 100%를 달성한 사람보다 조직에 더 큰 가치를 창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내 기업들도 OKR을 시범 도입하거나 기존 KPI 체계와 병행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분기마다 목표를 설정하고 조정하는 데 과도한 시간이 소요되고, 팀장과 팀원 간 상시 피드백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실현하기 힘든 수준의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한 후 70%만 달성하고, 달성률과 평가를 분리하는 제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과에 대한 관점을 바꾸지 못하는 대부분의 한국의 대기업들은 OKR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생성형 AI 시대의 성과관리 (2023년 ~ 현재)

지난 100년간 성과관리는 테일러의 측정, 드러커의 목표, BSC의 다면 평가, OKR의 방향 설정 등 시대의 특징을 반영해 왔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이 오랜 유산들을 조직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합하고 실행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SK AX는 채용 시 서류와 면접심사를 모두 AI가 수행할 수 있다. AI면접은 다양한 외국어로 면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24년 부터 이미 공채 지원자는 AICT(AI Competency Test)라는 AI 활용 능력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AICT는 실무형 문제를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해결하고 결과물을 제출하면, AI가 문제해결의 과정과 결과를 분석해서 채점한다. 생성형 AI라는 파트너와 협업하는 능력이 입사의 기본요건이 된 지 오래다.
입사를 한 후에도 성과관리 전체 프로세스를 AI가 수행한다. 기획서 작성부터 코딩, 데이터 분석, 교육 안내까지 일상 업무도 AI와 함께 수행한다. 그리고, HR, 법무, 회계팀에 AI 구성원이 발령되어 짜증 한번 내지 않고 24시간 문의에 대응하고 있다.
성과관리도 채용부터 퇴직까지 AI Agent로 연결하고 있다. 목표 설정은 MBO처럼 구성원과 상사가 합의하는 과정은 없다. 빠른 시장과 사업의 변화에 발맞추어 조직이 정한 목표를 팀원들은 그대로 수임한다. 예를 들어, 교육사업 조직의 올해 목표가 100억이면, 그중 나의 기여분을 숫자로 기재하면 된다. 목표설정에 과도한 시간이 소요되는 OKR의 단점을 완화한 구조다. 목표달성을 위해 내가 어떠한 작은 목표를 세울지,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일할지는 자유가 부여된다.
동료평가도 시행하는데, 평가 대상자를 직접 고르는 과거의 방식과 달리, AI가 조직, 역할, 직무 등의 데이터를 근거로 평가자를 매치한다. 이를 통해 평가자 선정을 위한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고, 동료평가에 감정이나 친분이 개입할 여지를 없앤다.
평가 작성 시에도 길게 문장을 기술할 필요가 없다. 사전에 정의된 키워드를 선택하는 방식이라 평가자의 부담이 적고, 축적된 키워드 데이터는 패턴 분석에도 활용할 수 있다. 작성자는 편해지고, HR은 분석이 쉬워지는 방식이다.
이처럼 목표 설정, 평가 대상 선정, 평가 작성에 대해 생성형 AI가 부담을 완화해 주기 때문에, OKR 본래의 강점인 분기 1회 피드백을 실제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의 고성과는 혼자 탁월함을 추구해서는 달성할 수 없으며, 생성형 AI와 얼마나 잘 협업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성과 관리의 기준이 바뀌면서 팀장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과거의 성과관리가 성장과 성과를 직접 이끌어내는 일이었다면, AI 시대에는 구성원이 스스로 성장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일일이 간섭할 시간에, 차라리 AI 구독 예산을 늘리는 것이 낫다.
성과평가를 하지 않는 시대 (?)

2012년 어도비(Adobe)의 인사 담당 수석 부사장 도나 모리스(Donna Morris)는 인도 출장 중 한 기자에게 조만간 연간 성과평가를 폐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차에 지친 상태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지만, 이 발언은 이튿날 경제지 1면을 장식했고 결국 어도비는 실제로 성과평가를 폐지했다.
당시 어도비의 관리자들은 매년 성과평가에 총 80,000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정규직 40명이 1년 내내 성과평가만 하는 셈이었다. 그토록 막대한 시간을 투입했지만, 팀원들은 평가 후 의욕을 잃는 경우가 많았고, 매년 평가 결과가 나온 직후 실망한 팀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오히려 팀의 성과를 위협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어도비는 연간 평가를 폐지하고 상시 비공식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체크인(Check-In)'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체크인에는 HR에 제출할 내용이나 등급이 없었다. 이 제도는 F1 경주의 피트스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레이싱카가 트랙을 계속 달리면서 필요할 때마다 빠르게 연료를 채우고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처럼, 팀원들도 업무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순간에 피드백을 받고 방향을 조정하자는 의미였다. 1년에 한 번 정비소에 입고시켜서 차량 전체를 점검하는 방식과는 달랐다.
어도비가 체크인을 도입한 후 자발적 이직률은 30% 감소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비자발적 이직, 즉 저성과자의 퇴사가 오히려 50% 증가했다는 점이다. 팀장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떠났으면 하는 팀원'은 떠나고, '남았으면 하는 팀원'은 남는 결과였다.
어도비의 실험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켰다. 딜로이트(Deloitte)는 연간 200만 시간이 소요되던 평가 프로세스를 주간 체크인과 분기별 스냅샷으로 전환했고, 33만 명의 액센츄어(Accenture)도 평가등급제를 폐지했다. 넷플릭스(Netflix)는 전통적인 등급제 성과평가를 운영하지 않는다.
이 흐름은 실리콘밸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토스다. 토스는 설립 초기부터 전통적인 개인 인사고과를 운영하지 않았다. 대신 전사 목표 달성도에 따라 전 직원이 동일한 비율로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를 택했고, 개인에게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라는 최종 의사결정자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했다. 2021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료 간 단기 평가 제도마저 폐지하며 신뢰 기반의 자율 문화를 강화했다. 토스에 근무하는 후배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시보드에 나타나는 숫자가 일의 결과를 말해주니까, 가짜 일은 하지 않고 진짜 일만 하면 돼요."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평가를 없앤 것으로 이해하면 본질을 놓친다. 이 기업들이 실제로 한 일은 평가의 제거가 아니라 평가의 재설계였다. 연 1회 과거에 했던 일을 심판하는 방식에서, 공동의 목표를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본인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팀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가와 등급이 사라진 후 팀장에게 남는 것은 성과 창출의 환경밖에 없다. 중세의 장인은 걸작으로 역량을 증명했고, 테일러는 스톱워치로 생산성을 측정했고, 드러커는 합의된 목표로 방향을 잡았고, 잭웰치는 등급으로 사람을 줄 세웠다.
이 모든 방식이 사라져 가는 지금, 팀장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팀의 역량 수준에 맞지 않거나 목표에 정렬되지 않는 팀원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냉철함,
그리고 목표에 정렬된 팀원은 스스로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