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 사이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한번 떠올려보시고
그중에서 유독 아쉬웠던 이름 몇 개를 골라보면
그 사람들은 저성과자였나요?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몇번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대답은 매번 같았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퇴사는
대부분 일을 잘하던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평가 때마다 상위 등급에 이름이 있었고
급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사람.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면담을 요청하고
조금 쉬고 싶다고 말하고는
한 달 뒤에 자리를 비웠습니다.
인사 일을 하면서 저성과자에
관한 고민은 참 많이 했습니다.
면담 스크립트를 만들고 개선 계획을 세우고
기한을 정해 다시 점검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줬는지 돌아보면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칭찬했고 좋은 등급을 줬고 다음 일을 맡겼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조직에서 일을 잘하면 무엇을 받는지
솔직하게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더 중요한 일, 더 급한 일, 그리고 더 많은 일입니다.
누군가 놓친 일을 메워줄 사람,
신규 입사자를 맡길 사람,
갑자기 비는 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을때
리더의 시선은 늘 같은 곳으로 향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건
리더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문제는 그 합리적인 선택이 한 사람에게
계속 쌓인다는 데 있습니다.
한 번 한 번은 작은 부탁이었는데
1년이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의 To do list는
일이 두 배로 올라가 있습니다.
저성과자에게는 기대를 낮추고 기다려줍니다.
고성과자에게는 기대를 올리고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조직이
누구의 체력을 더 빨리 쓰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오래 지켜보면
비슷한 습관이 보입니다.
먼저 거절을 잘 하지 못합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이 정도는 제가 할게요."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습니다.
다음은 기준이 높습니다.
남들이 80점에서 손을 놓을 때
그들은 95점이 되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같은 일을 맡아도 쓰는 에너지가 다릅니다.
마지막은 힘들다는 말을 약하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버텨서 인정받아왔기 때문에
버티기 어렵다는 말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지는듯 합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습니다.
말할 때는 이미 결정을 끝낸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성과를 만든 습관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닳게 하는 습관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
하나만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저성과는 숫자로 먼저 드러납니다.
목표 달성률이 떨어지고
실수가 늘고 평가 점수가 내려갑니다.
HR은 그 숫자를 보고 움직입니다.
고성과자의 소진은 다르게 진행됩니다.
지쳐가는 동안에도 성과는 한동안 그대로입니다.
남은 힘을 끌어다 쓰고 개인 시간을 끌어다 써서
결과물의 수준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성과표에는 여전히 좋은 숫자가 찍히고
그 숫자를 보는 사람은 아무일 없다고 판단합니다.
한 매장의 매니저를 떠올려보겠습니다.
오픈 준비를 누구보다 먼저 끝내고
결원이 생기면 자기 휴무를 반납하고
들어오던 사람입니다. 평가는 늘 최상위였습니다.
어느 달부터 메신저 답장이 짧아지고
회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는 요즘 많이 차분해졌다며
오히려 좋게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사직서가 올라왔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제는 잘할 자신이 없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과는 소진을 가장 늦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숫자가 꺾이는 시점은 대개 되돌릴 수 있는
시점을 이미 지난 뒤입니다.
그래서 고성과자를 볼 때는 성과 말고
다른 것을 봐야 합니다.
쓰지 않고 쌓여가는 연차, 반납한 휴무의 횟수,
퇴근 뒤에 오가는 메시지,
회의에서 줄어든 말수 같은 것들입니다.
고성과자 관리라고 하면 보통 보상과 승진,
핵심인재 프로그램을 떠올립니다.
모두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그것들은 더 달리게 만드는 장치이지
멈출 수 있게 해주는 장치는 아닙니다.
멈추는 쪽의 장치는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업무량을 기록으로 봅니다.
누가 얼마나 일을 받고 있는지,
결원이 생겼을 때 누가 메웠는지,
휴무 반납이나 연차 미사용이 특정인에게
몰려 있는지는 감이 아니라
근태와 배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름이 반복해서 나온다면
그건 그 사람의 성실함이 아니라 배분의 문제입니다.
2. 쉬라고 말하지 말고 쉬게 만듭니다.
"좀 쉬어요."라는 말은 고성과자에게 잘 들리지 않습니다.
쉬면 일이 밀리고 밀린 일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휴가를 권하기 전에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먼저 정해두고 큰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을 바로 붙이지 않는 식으로
쉼을 구조 안에 넣어야 합니다.
3. 대신 거절해줄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누군가 조정해줘야 합니다.
리더나 HR이 "이번 건은 다른 분이 맡습니다."라고
한마디 해주는 것만으로도 짐은 꽤 가벼워집니다.
4. 면담의 질문을 하나 바꿉니다.
고성과자와의 면담은 대개 다음 목표와 성장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거기에 질문 하나만 더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는 일 중에 내려놓고 싶은 게 있나요?"
이 질문에 답이 바로 나온다면
그 사람은 이미 오래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저성과자에게 쓰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크기의 관심이 반대편에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직은 저성과자를 끝까지 붙잡고 기다려주면서
고성과자는 끝까지 믿고 내버려둡니다.
돌아보면 믿는다는 말로 방치를
덮어둔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을 잘하던 사람이 떠나면
조직은 성과만 잃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조용히 메우던 빈자리들이
한꺼번에 드러나고
남은 사람들은 저렇게 잘하던
사람도 결국 떠나는구나 하는 결론을 얻습니다.
그 결론은 다음 고성과자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이 아티클을 보고 계신
리더분들과 HR분들께 두가지 질문을 던지며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
지금 우리 조직에서 가장 믿고 맡기는
사람의 이름을 하나 떠올려보시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온전히 쉰 날이 언제였는지 알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