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며 성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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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며 성장하기

편안함의 시대를 현명하게 건너는 법
교육기타전체
현지환 Sep 2, 2026
2424

편안함이 정답이 된 시대

언젠가부터 "열심히"라는 말이 촌스러워졌다. 대신 그 자리를 "적당히", "균형", "나를 위한 시간"이 채웠다. 워라밸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이자 좋은 삶의 기준처럼 여겨진다.

나는 이 변화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걸려 얻어낸 건강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번아웃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자기 삶을 돌보려는 태도는 분명한 성숙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 '일과 관련된 성장'까지 함께 내려놓기 시작했다. 퇴근 후의 시간을 회복에만 쓰는 것을 넘어, 일하는 시간 안에서조차 더 나아지려는 갈구를 멈춰버린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정체가 슬그머니 자리를 잡은 것이다.

교육과 성장을 담당하던 자리에서 사람을 오래 지켜보다 보면 이 차이가 선명하게 보인다. 쉬는 사람과 멈춘 사람은 다르다. 쉬는 사람은 다시 달릴 힘을 채우고, 멈춘 사람은 그저 제자리에 남는다. 그리고 이 둘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3년 뒤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워라밸의 그림자, 멈춰버린 학습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지켜주는 것은 '시간'이지 '성장'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둘을 은근히 혼동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얻은 대신, 저녁에 자신을 키우던 습관을 함께 잃어버린다.

한때는 퇴근 후에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커뮤니티에 나가며 자기 분야의 새로운 흐름을 쫓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온전히 소비와 휴식으로만 채우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이야기된다. "그건 회사가 시켜서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 "내 시간을 왜 일 공부에 쓰느냐"는 정서가 넓게 퍼져 있다.

여기서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역량은 유지되지 않는다. 손을 놓는 순간부터 줄어든다. 시장이 요구하는 스킬은 매년 바뀌는데, 나의 스킬은 어제에 멈춰 있다면 그 격차는 가만히 있어도 벌어진다. 정체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사실상의 후퇴다.

더 위험한 것은 이 후퇴가 조용하다는 점이다. 성장을 멈춘 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과 평가도 무난하고,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지나간다. 그래서 대부분은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문제는 언제나 나중에, 이직을 준비할 때나 조직이 변화를 요구할 때 한꺼번에 청구서로 돌아온다.

AI라는 분기점: 함께 일하기와 의존하기

지금 이 정체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도구가 AI다. AI는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 같지만,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 차이를 두 가지로 나눠서 본다.

AI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AI를 지렛대로 쓴다. 자신의 판단과 전문성이 중심에 있고, AI는 그 판단을 더 빠르고 넓게 실행하도록 돕는 도구다. 이들은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의심하고, 자신의 맥락에 맞게 다듬는다. 결과적으로 AI를 쓸수록 이들의 실력은 오히려 더 정교해진다.

AI에 의존하는 사람은 AI를 목발로 쓴다.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 붙인다. 편하고 빠르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판단력은 조금씩 마모된다. AI가 틀렸을 때 그것을 알아챌 힘도,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힘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 결과물은 남들에게 충분히 읽힌다. 어떤 사람의 보고서, 기획, 코드, 문장을 보면 그가 스스로 사고하며 AI를 부린 것인지, 아니면 사고를 AI에게 넘긴 것인지가 드러난다. 얕은 이해 위에 얹힌 그럴듯한 문장은, 그 분야를 아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티가 난다. AI는 실력의 격차를 지워주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하게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역설적이게도 AI 시대일수록 '나만의 판단'과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의 가치는 더 커진다. 누구나 평균적인 결과물을 1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결과물을 넘어서는 사람의 안목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말하는 시대의 요구

이것은 감상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다. 여러 조사에서 어렵지 않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Future of Jobs」 분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일에 필요한 스킬의 약 70%가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기업 리더 10명 중 6명이 AI와 생성형 AI가 자신의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답했다.[1] 지금 내가 잘한다고 믿는 스킬의 상당수가, 몇 년 안에 유효기간을 다한다는 뜻이다.

영국 정부가 실시한 「AI Labour Market Survey 2025」에서는 응답자의 97%가 AI 노동시장에서 최소 하나 이상의 스킬 격차를 지적했다.[2] 거의 모두가 "지금 이대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컨퍼런스보드(The Conference Board)의 분석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많은 조직이 'AI 리터러시'와 '현재 직무를 위한 업스킬링'에는 투자하지만, 정작 AI가 몰고 올 직무 전환에 대비한 재교육(reskilling)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대부분이 '오늘의 AI'는 준비하되 '내일의 일'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3]

이 데이터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판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과 조직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성장을 멈춘 사람이 다수인 시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성장하려는 소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나의 시선 :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다

교육의 본질은 '사람이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다. 그 일을 오래 하면서 얻은 확신이 하나 있다. 성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것은 재능이나 환경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이다.

성장하는 사람은 편안함을 경계한다. 지금이 너무 안정적으로 느껴질 때, 오히려 불안해한다. 배우지 않고도 하루가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성취가 아니라 신호로 읽는다. 반면 정체된 사람은 편안함을 목적지로 여긴다. 더 이상 힘들지 않은 상태에 도달한 것을 성공이라 믿고, 그곳에 눌러앉는다.

그래서 나는 성장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장은 남들이 멈춘 자리에서도 계속 질문을 던지는 태도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3년 뒤에도 이 실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는 지금 AI를 부리고 있는가, 아니면 끌려다니고 있는가?"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주변이 아무리 정체되어 있어도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워라밸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장은 나를 갈아 넣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자, 나를 돌보는 또 다른 방식이다. 진짜 균형은 '일과 쉼' 사이가 아니라, '오늘의 편안함과 내일의 나' 사이에 있다.

갈구를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외로운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두가 멈춰 있을 때 혼자 걷는 것은 때때로 불편하고, 유난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 생각해보자. 다수가 멈춰 선 시대일수록,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사람은 더 빠르게 앞서 나간다. 남들이 편안함을 좇을 때 미래를 좇는 사람에게, 이 정체의 시대는 위기가 아니라 가장 큰 기회다.

그러니 남들의 편안함을 부러워하지 말자. 그들이 내려놓은 갈구를 나는 붙잡자. 워라밸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지키되, 그 시간 안에서 나를 키우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AI를 목발이 아닌 지렛대로 쓰고, 나의 판단과 안목을 계속 벼리자.

성장은 재능 있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다.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 모두의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것, 그것이 결국 이 시대를 건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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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World Economic Forum, "Why workers must upskill as AI accelerates workplace changes" (2025) — 2030년까지 필요 스킬의 약 70% 변화, 리더 10명 중 6명이 AI/생성형 AI의 조직 변화 전망. https://www.weforum.org/stories/2025/04/linkedin-strategic-upskilling-ai-workplace-changes/

[2] UK Government, "AI Labour Market Survey 2025 report: executive summary" — 응답자 97%가 최소 하나 이상의 AI 스킬 격차 지적. https://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ai-labour-market-survey-2025-report/ai-labour-market-survey-2025-report-executive-summary

[3] The Conference Board, "Most Organizations Are Preparing Workers for Today's AI, Not Tomorrow's Jobs" (2025) — 현재 직무 업스킬링에는 투자하나 미래 직무 전환 대비 재교육은 부족. https://www.conference-board.org/press/ai-skilling


현지환
프로액티브 한 문제해결자
L&D 직무를 졸업하며, 개발자에서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 교육과 조직문화 담당자로 일하면서 얻은 모든 인사이트와 노하우를 공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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