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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변역리더십 (연재 2화, 균형이 깨진상황)

세종의 변역리더십 (연재 2화, 균형이 깨진상황)

변역에는 “내가 먼저 바뀌고 남이 변하기를 기다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종은 변역하는 리더십의 최강자였다.
조직문화리더임원CEO
경묵
김경묵Dec 10, 2025
42118

주변과 세상을 바꿔낸, 세종의 변역리더십을 연재합니다

세종은 변역하는 리더십의 최강자였다. 그의 변역리더십이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1432년부너 1438년까지 7년여 동안 여진족과의 혼란했던 상황을 마무리 지은 과정이 그러하다. 세종실록에는 이때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연재는 그 하나하나의 기록을 연결해서 쓴 <이도 다이어리>에서 발췌 했다. 필자는 이 책의 저자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적 개념이 등장하고, 우리를 혼란한 상황으로 빠뜨리고 변화를 강요하는 지금,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결과를 만든, 세종 이도의 변역하는 지혜를 한 가지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이때 그의 나이가 36살이었다.

연재 1화 혼란한 긴급상황, “모두의 생각을 모아야 한다”

연재 2화 균형이 깨진상황, “적과의 동침도 해야 한다”

연재 3화 고비를 넘는시기, “전쟁의 끝이 보인다”

연재 4화 바람처럼 사라진혼란, “비로소 보여진 새벽의 평온”

그리고 연재 총 정리

1434년(38살), 토벌 이후 함경도로 쏠리는 힘의 균형

 

흩어지고 모이는 여진족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서쪽은 평안도 압록강, 동쪽은 함경도 두만강을 물줄기로 길게 나뉜다. 강 건너편에 수많은 여진족 부족들이 거주한다. 오도리 부족은 우리 땅에 들어와 살고있다. 압록강 강변은 대체로 편평하고 두만강 부근은 산악지대가 많다. 여진족들 중에 조선 국경 인근에는 크게 두 부족이 거주하는데, 올량합 부족은 서쪽 압록강을 끼고 농사지으며 살고, 우디캐 부족은 동쪽 산악지대에서 사냥하며 산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 군대가 토벌한 압록강 지류인 파저강 강변에 살던 올량합 무리가 동쪽 산악지대로 옮겨가거나 중국 만주 쪽으로 멀리 흩어졌다. 그 결과, 지금 서쪽 국경은 텅 비었고, 동쪽 국경은 북적인다. 함경도 두만강을 따라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다. 2월 5일, 이 와중에 최윤덕 장군이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반려했다. 최윤덕은 작년부터 서울과 평안도를 오가며 좌의정과 여진족 토벌 총책임자 역할을 겸임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인 것은 알지만, 지금은 그가 꼭 국경에 있어야 한다.

함경도 회령에 군대를 충원하고, 임시로 나무 울타리를 쳐서 방어를 위한 진(陣)을 구축했다. 그랬더니, 함경도 회령에 터를 잡고 살고있는 오도리 부족 추장이 찾아와서, 우리를 데리고 살 것인지 쫓아낼 것인지를 물었다. 회령은 땅이 비옥해서 농사가 잘되고, 가축을 기르기에 적합해서 떠나기 싫은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확고하다. “우리 백성으로 살고자 한다면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국경에 조선 사람이 살아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 함경도 국경지역은 오도리들이 비집고 들어와 터를 잡고 있기에 우리 백성이 적고 황량하다. 함경도 가장 북쪽인 경원과 영북에 군대를 충원 하려는데 지원자가 없다. 유일한 지원자는 험한 지역에서 오래 근무하면, 노비신분을 양민신분으로 신분을 격상시켜 주는 혜택을 받는 보충군에 속한 군인 뿐이다. 우선, 함경도 경성에 사는 백성을 국경과 맞닿은 경원으로 이주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평안도 국경지역은 농사짓는 백성이 있기에 마을이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 경원은 집 화장실 등 생활 기반시설이 너무나 열악하지만, 군량미를 보급하니 굶지는 않을 것이다. 군량미를 충당하느라, 가을부터 중앙정부관리의 급여를 삭감했고, 겨울부터는 궁궐의 아침밥을 줄였다. 작년과 올해 거듭해서 농사가 흉작인데다가, 평안도와 함경도는 전쟁을 대비해야 하기에 세금을 크게 줄였다. 부족한 세금을 메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지금은 군인이 먹을 밥상을 차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루는 조선을 배신하고 조선의 적인 이만주와 어울려 다니며 조선을 협박하는 오도리 동범찰을 따르는 무리 토벌을 논의했다. 함경도지사(관찰사) 김종서는 반대하고 함경도 영북을 방어하고 있는 이징옥 장군은 당장 토벌해야 한다고 엇갈린 주장을 한다. 영의정 황희에게 물으니,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오히려 여진족들이 똘똘 뭉쳐서 공격해 오는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두 의견 모두 틀린 말이 아니기에, 충분히 의견을 나누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 5월 29일에 이르러, 최윤덕 장군이 지금은 ①성을 돌로 견고하게 쌓고, ②올량합을 토벌한 서쪽 압록강 건너 땅에 우리와 우호적인 여진족 세력이 이주하게 유도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평안도 함경도를 통틀어서 국경에 돌로 쌓은 안전한 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윤덕의 말과 같이 지금은 두만강을 따라서 신도시를 건설하며 차근히 방어체계를 갖춰야할 때다.

4월부터 활 1,500개를 만들고, 군사들이 공격과 방어 체계를 쉽게 익히도록 진법을 그림으로 그리고, 하경복 장군의 아들 하한을 함경도 회령 방어 책임자로 임명했다. 하경복은 국경에서 잔뼈가 굵은 장군인데,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국경을 지킨다고 하니, 생각만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하루는 평안도 국경에 근무하는 이각(61살) 장군이 중풍에 걸려 방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서 휴가를 신청했지만 반려했다. 최윤덕 장군도 평안도로 돌려보냈다. 국경의 경계를 늦추면 여진족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10월 30일, 우디캐들이 두만강에 얼음이 얼면 쳐들어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한달 후에는 또 다른 여진족 공격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예상했던 대로 함경도에 전쟁의 기운이 현실로 바뀌고있다.

 

토벌 이후, 복잡해진 국제정치

10월 12일, 맹날가래·왕흠·왕무 세명의 중국 사신이 서울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작년에 올량합에게 빼앗아 온 포로 56명, 소·말 3백마리 그리고 금·은 등 목록을 내보이며 즉시 돌려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모두 돌려줬다. 이 사실은 지난해 조선을 침범한 주동자인 올량합 추장 이만주까지 참여해서 작성한 문서에 명확히 기록했다고 항변했지만, 사신은 우리를 믿지 않는다. 이중에 맹날가래는 작년 8월에도 조선에 와서 조선이 이만주 부족의 말 20마리를 훔치고 이에 대항하는 것을 빌미로, 조선이 이만주가 사는 곳을 공격해서 올량합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죽였다고 지껄였던 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원칙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황제가 보낸 글에 답변하는 원칙은 말이 아닌, 황제가 직접 보는 외교문서에 적어 보내는 것이다.

그랬더니 사신은, 이례적으로 문서 내용을 직접 확인하겠다고 한다. 작성되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는 조선 여진족 사신, 이렇게 3자가 같은 날에 황제 앞에서 직접 보고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또 이틀 후에는 “조선이 돌려 보내지 않은 포로와 재물을 알고 있다”라고 황당한 말을 하며 계속해서 우리를 압박했다. 이후로도 사신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의심을 받는 것이 불쾌했지만, 외교문서에 작은 비단 한 조각까지 모두 돌려줬다는 사실을 꼼꼼히 적었고, 목록에 적힌 내용은 모두 올량합이 조선과 중국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표현했다.

나는 왕이 되던 날, “백성에게 원하는 것을 먼저 묻고 나서, 그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겠다”라는 비전을 제시했었다. 이 결과로 백성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나서 나라를 경영하는 방식으로, 변역(變易)하는 정치를 지향해온 것이다. 옛날 중국 한나라 때 황제는 풍속을 변역 시켰더니 백성들과 믿음이 두터워졌다고 하고, 당나라 태종 때는 먼 곳에서 빈손으로 온 손님일지라도 편히 먹고 지내다 돌아갈 정도로 후하게 대하니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이처럼 변역하는 정치는 덕(德)과 예(禮)를 갖춰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진족은 내가 지금까지 우리 백성 이상으로 후하게 대우했는데도, 틈만 나면 조선을 비난하고 약탈을 멈추지 않는다. “여진족에게는 변역하는 방식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올해 들어서 서울에 찾아오는 여진족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전에는 얼굴도 안 비추던 자들이 섞여있다. 지난해 조선의 군사력을 확인한 후로 저마다 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찾아오는 여진족을 우호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배불리 먹이고 선물을 후하게 챙겨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선물을 받을 때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때가 되면,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입장을 분명히 선택하도록 할 것이다.

내 생각에 중국은 여진족을 껄끄러워 하지만, 조선의 군사력이 북쪽으로 확장되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과 여진족이 적당한 선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약자인 여진족 편을 들며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다. 하루는 술자리에서 사신 왕흠이 나를 황제라고 부르며, 내 의중을 떠보기도 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11월 11일 사신을 보내는 연회 날, 몸이 다시 아파서 세자가 대신 연회를 주관했다. 이제는 매년 찬바람이 부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프다. 이틀 후에 아픈 몸을 참고 작별 인사를 했다.

북쪽 국경의 여진족 만큼이나, 남쪽 항구를 드나드는 왜인들 상황이 불안하다. 경상도 진해 내이포 항구 인근에 360명이 넘는 왜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에 대부분은 대마도에 먹을 것이 없어서 무작정 배를 타고 조선에 몰려온 자들이다. 측은한 마음에 머물게 했더니, 그 수가 계속 불어났다. 이 상황을 허조는 “뜰에서 자고 가기를 애걸하는 자가 안방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옛말에 비유하며, 우유부단한 내 결정 탓이라고 콕 집어 지적한다. 왜인은 상황이 변하면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으니,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이포와 인근의 김해에 성을 쌓고, 만약에 사태가 벌어지면 우리 백성을 신속히 대피 시키도록 지시했다.

지난 1월에 구리와 철을 가득 싣고 일본에서 돌아오던 우리 사신 일행이 바다 한가운데서 왜적에게 물건을 모두 강탈 당하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는 사건이 있었고, 3월에는 대마도주 종정성이 대장경을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고, 7월에는 대마도에 납치됐던 우리 백성이 탈출해 왔다. 평상시라면, 이 정


경묵
김경묵
창의성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20년 근무했고,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을 게재한 유일한 한국 디자이너이다. 지금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소프트한 창의성과 세종실록 그리고 The AX Wave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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