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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변역리더십 (연재 3화, 고비를 넘는시기)

세종의 변역리더십 (연재 3화, 고비를 넘는시기)

변역에는 “내가 먼저 바뀌고 남이 변하기를 기다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종은 변역하는 리더십의 최강자였다.
조직문화리더임원CEO
경묵
김경묵Dec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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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과 예를 갖추어 주변과 세상을 바꿔낸, 세종의 변역리더십을 연재합니다

변역은 상대에게 덕과 예를 갖추어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설득되게 하는 과정이다. 세종 이도가 책에서 배우고 국가경영에 사용한 방식이었다. 그의 변역리더십이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1432년부너 1438년까지 7년여 동안 여진족과의 혼란했던 상황을 마무리 지은 과정이 그러하다. 세종실록에는 이때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연재는 그 하나하나의 기록을 연결해서 쓴 <이도 다이어리>에서 발췌 했다. 필자는 이 책의 저자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적 개념이 등장하고, 우리를 혼란한 상황으로 빠뜨리고 변화를 강요하는 지금,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결과를 만든 세종 이도의 변역하는 지혜를, 한 가지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이때 그의 나이가 36살이었다.

연재 1화 혼란한 긴급상황, “모두의 생각을 모아야 한다”

연재 2화 균형이 깨진상황, “적과의 동침도 해야 한다”

연재 3화 고비를 넘는시기, “전쟁의 끝이 보인다”

연재 4화 바람처럼 사라진혼란, “비로소 보여진 새벽의 평온”

그리고 연재 총 정리

1436년(40살), 하나씩 드러나는 얽히고 설킨 잠복된 문제들

 

국경 방어 아이디어 공개 모집

평안도 여연은 압록강 강변을 따라서 길게 민가와 농지가 빽빽하게 몰려있다. 이곳에 나무를 뾰쪽하게 깎아서 대각선으로 세운 바리케이드를 길게 설치해서 말을 탄 여진족이 쉽게 뛰어 넘지 못하게 했지만, 아직 허술한 곳이 곳곳에 있다. 여진족은 말을 탄 채로 기습공격하기 때문이다. 바리케이드 주변에도 요새를 구축하고 군인들이 24시간 경계를 늦추지 않고있다. 그럼에도 5월 23일, 말을 탄 여진족 올량합 부족 500여명이 침입해서 농민 14명을 납치하고 말 51마리와 소 34마리를 약탈해 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번에도 이만주의 짓이다.

여진족은 압록강 건너편의 풀이 우거지고 높은 곳에 숨어있다가 허술한 틈이 보이면, 기습적으로 강을 건너와서 공격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여진족의 이러한 공격 방식을 알면서도 우리 백성의 피해 없이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가축을 몰고 나가서 강변에 흩어져서 일하는 우리 농민의 농지가 강을 따라 길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여진족의 기습 공격을 받았을 때, 바리케이드 안으로 재빨리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6월 20일, 국경을 방어할 아이디어를 공개모집 했는데 총 97명이 참여했다. 3년 전에 여진족 토벌 작전을 세울 때는 고위급 신하의 생각을 빠짐없이 듣고 반영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이번에는 중간관리자급까지 확대해서 모두의 생각을 글로 적은 제안서로 모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정말 많았고, 몇몇 아이디어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어서 미소 짓기도 했다. 눈에 들어온 몇 개를 골라 보면,

①압록강을 따라서 일정 간격으로 높은 탑을 쌓아서 감시하다가 적이 쳐들어 오면 화력을 집중 하는 것 ②고된 일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어 모범으로 삼는 것 ③적이 숨어서 옅 보는 곳의 나무와 풀을 베고 농지로 바꾸는 것 ④우리도 수시로 여진족을 공격해서 여진족을 지치게 하는 것 ⑤적이 타고 온 배를 빼앗아서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게 하는 것 ⑥적정 수량의 화포를 추가로 배치하고 사용법을 익힐 것 ⑦농민의 안전지대인 뾰쪽한 나무 바리케이드를 가능한 빨리 돌로 쌓은 성으로 교체하는 것 ⑧근무지로 이동하는 장수가 이동 중에 먹을 식량 이외에 필요한 군복과 장비 운송을 나라에서 책임질 것 ⑨국경을 오가는 사람에게 군사적 임무를 줄 것 ⑩수심이 낮은 강가에 철조망을 치고 못과 같이 뾰쪽한 마름쇠를 흩뿌려 놓아 강을 건너는 적의 침입을 지연시킬 것 ⑪모든 농민에게 활 쏘기 등 군사훈련을 시킬 것 ⑫압록강 건너 여진족이 사는 땅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군대를 배치해서 적을 두렵게 할 것 등이다. 모든 아이디어를 평안도군사령관(절제사) 이천에게 보내서 현장의 검토의견을 듣도록 했다.

 

국경에 농사짓는 농민들의 고단한 삶

농부는 가을에 추수를 마쳤다고 해서 1년 일을 끝낸 것도 아니다. 마음을 놓고 쉴 수도 없다. 정기 군사훈련, 성을 쌓는 노동 등 산더미처럼 쌓인 나라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 창고에 보관된 무기를 수리하는 일도 해야 한다. 이처럼 농부는 언제라도 나라가 부르면, 노동자가 되기도, 군인이되기도 하는 고단한 신분의 사람이다. 최근에 농민 신분을 이해하기 쉬운 사연이 하나 있다. 여진족을 토벌하니, 헤어져 살던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됐다. 그런데, 10살 때 여진족에게 납치된 김오미라는 남자는 엄마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납치된 이후에 여진족 여자와 결혼하고 천명 이상의 여진족을 거느린 천호(千戶)라는 지위에 오르고, 호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으로 돌아와서 만난 가족이 가난한 농부였고, 졸지에 조선의 농부라는 고단한 평민신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여진족의 노비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은 조선에 돌아와서 가족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8월 25일, 함경도 회령에 여진족 홀라온과 우디캐 무리가 침입해서 농민을 납치해서 달아났다. 다행히 이징옥 장군과 회령에 사는 여진족인 오도리들과 함께 추격해서 모두 되찾아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적진의 지형을 잘아는 오도리가 길을 안내했기에 가능했다. 오도리가 우리를 도운 이유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우디캐 무리가 회령에 침입해서 오도리 추장 동맹가첩목아를 죽였기 때문이다. 추장 동맹가첩목아가 죽은 이후로 오도리 부족은 동범찰과 동창이 이끌고 있다. 이자들은 자기들의 이권에 따라 아침 저녁으로 마음을 바뀌는 자들이다.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인 점은, 오도리 부족이 함경도 회령을 지키는 이징옥 장군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징옥은 용감하고 엄격한 장수다.

9월 26일, 함경도 회령에 돌로 쌓은 성이 완성되니 이제 어느정도는 안심이 된다. 회령은 함경도 두만강 국경에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하기 전까지만 해도 함경도의 최전방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회령성 둘레가 약 1,180m이고 높이가 약 4.5m이다. 올해 가을에 한달 동안에만 동원된 농민 노동자가 20,300명에 달한다. 회령에 성이 완공되던 날, 3,000여명의 여진족 우디캐 무리가 함경도 경원 신도시에 또 쳐들어왔지만, 이번에는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조선과 여진족이 수년 동안 국경을 사이에 두고 싸우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조선 농민과 여진족 농민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끈끈하고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돼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강을 넘나들며 농사를 지으며 섞여 살아 왔기 때문에, 니편 내편 구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농민들끼리는 서로의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이 흔하다. 우리 농민의 집에서 여진족이 붙잡혔다고 해서 우리 농민을 무턱대고 처벌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현장 지휘관에게 처리를 일임하고 있다. 또한 국경과 같이 특수한 지역에 토관이라는 특별 관직을 임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토관이 없었던 함경도 경성에 토관을 추가로 임명해서 현장관리를 강화했다.

 

어디를 어떻게 변역(變易)해야 하나?

5월 9일, 함경도 4개 신도시에서 2년동안 3,262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직 도시 기반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고, 위생상태가 엉망이고 좁은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뒤섞여 생활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지난해 가을에 하경복이 전염병으로 죽은 함경도 사람이 수만 명이나 되고 사람 뼈와 해골이 들판에 널려있다고 보고 했었는데, 이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경복이 무슨 이유로 과장된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랫동안 국경에서 근무한 그냥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관직을 파면하고, 늙은 모친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하경복과 나의 인연은 특별하다. 그는 나의 거듭된 명령으로 젊어서부터 줄곧 국경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왔기에, 모친이 늙도록 얼굴조차 잊고 살아왔다. 그런 그의 나이도 어느덧 60살이 됐다. 그도 따뜻한 방의 아랫목과 집 밥이 그리울 것이다. 하경복을 고향으로 보내고 오래전에 그와 주고받은 편지를 꺼내 읽었다. 하경복이 “뼈에 새겨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적은 대목에서 다시 또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정이 느껴진다. 우리가 왕과 신하 사이로 만났지만 “사내들 사이의 우정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밤이다. 다른 장수들 또한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기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일 것이다. 사기를 충전할 대책이 절실하다. 우선 검증된 방법인, 군대의 오래된 관습대로 군부대에 기생을 두어 아내가 없는 군인을 위로하게 했다.

벌써 몇 년째 평안도와 함경도 국경지역으로 백성 군인 관리 등 국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있다. 올해도 처제와 간통한 남자를 평안도 여연 군대에 편입시켰고, 평안도 남쪽에 살던 211가족을 평안도 북쪽인 여연 등지로 이주시켰고, 평안도 아래 지역에 근무하던 하급관리 15가족을 북쪽인 여연과 자성에 배치했다. 함경도는 두만강 강변을 따라서 군사 요충지에 회령·종성·경원·공성(경흥) 4개 신도시가 빠르게 건설됐고 2,000여채의 집이 새로 지어졌다. 이처럼 국경 지역에 사람이 급격히 증가하니, 식량 또한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한 예로 윤6월 23일 현재, 평안도 여연·강계·자성의 창고에 보관된 곡식이 4만여 석에 불과하다. 이 정도는 9만 명에 달하는 군인이 두 달 정도 버틸 수 있는 양 밖에 안된다. 가을이 오기 전에, 곡식이 바닥나게 되는 긴박한 상황인 것이다. 함경도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전쟁이 4년을 넘어가니, 국경을 지키는 장교와 병사, 관리와 백성 모두가 배고픔과 긴장 속에 지친 상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쪽 창고에 지정된


경묵
김경묵
창의성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20년 근무했고,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을 게재한 유일한 한국 디자이너이다. 지금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소프트한 창의성과 세종실록 그리고 The AX Wave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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