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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변역리더십 (연재 4화, 바람처럼 사라진혼란)

세종의 변역리더십 (연재 4화, 바람처럼 사라진혼란)

변역에는 “내가 먼저 바뀌고 남이 변하기를 기다린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종은 변역하는 리더십의 최강자였다.
조직문화리더임원CEO
경묵
김경묵Dec 17, 2025
27518

혼란한 상황에서도 덕과 예를 갖추어 주변과 세상을 바꿔낸, 세종의 변역리더십을 연재합니다

변역은 상대에게 덕과 예를 갖추어 설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설득되게 하는 과정이다. 세종 이도가 책에서 배우고 국가경영에 사용한 방식이었다. 그의 변역리더십이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1432년부너 1438년까지 7년여 동안 여진족과의 혼란했던 상황을 마무리 지은 과정이 그러하다. 세종실록에는 이때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연재는 그 하나하나의 기록을 연결해서 쓴 <이도 다이어리>에서 발췌 했다. 필자는 이 책의 저자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적 개념이 등장하고, 우리를 혼란한 상황으로 빠뜨리고 변화를 강요하는 지금,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전략을 짜고 실행하고 결과를 만든 세종 이도의 변역하는 지혜를, 한 가지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이때 그의 나이가 36살이었다.

연재 1화 혼란한 긴급상황, “모두의 생각을 모아야 한다”

연재 2화 균형이 깨진상황, “적과의 동침도 해야 한다”

연재 3화 고비를 넘는시기, “전쟁의 끝이 보인다”

연재 4화 바람처럼 사라진혼란, “비로소 보여진 새벽의 평온”

그리고 연재 총 정리

1438년(42살), 비로소 보여진 새벽 하늘

 

길게 늘어선 귀순 행렬

1438년 1월 6일, 여진족 오도리 부족장 동범찰과 동창이 소수의 부족 만을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요동으로 넘어갔다. 수십년을 조선땅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았던 오도리 부족의 부족장이 결국, 그렇게 조선을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 중국 황제에게 찾아가서 이만주와 같은 곳에 살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황제가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이 조선을 떠난 이유를 확인해 보니, 함경도 회령을 다스리는 관리가 오도리들이 작은 실수를 헤도 감정을 섞어서 판결하는 것이 누적된 상태에서 매질까지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이만주가 끼어들어서 조선과 오도리 부족 사이를 이간질해서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도리들은 조선을 두려워하기에, 대다수의 오도리들이 부족장을 따라가지 않고 조선에 남아 있다. 그렇지만, 중국으로 떠난 자들이 이만주와 가까이 붙어 살고 정착하게 되면, 조선에 남아있는 오도리까지 조선을 떠나는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 조선에 사는 여진족인 오도리 부족과 이만주를 따르는 올량합, 두 세력이 합치는 것은 조선에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남은 오도리들이 조선을 떠나지 못하게 무조건 막아야 한다.

작년 12월, 말을 탄 여진족 3,000여명이 평안도 벽동에 들이닥쳐서 나무로 둘러친 울타리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이때, 신진보 장군이 압록강 건너까지 쫓아가서 싸우다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패했었다. 신진보 장군의 무리한 선택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가 부임할 때 내가 가까이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더니 신진보는 “이만주에게 독약을 먹여서 라도 잡아오겠다”라고 거침없이 말했었다. 그가 적을 가볍게 여기고 혈기가 왕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국경을 지킬 장수가 절대 부족한 것이 조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전투에는 패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돌로 성을 쌓고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아야 안전해 진다는 공감대가 커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도 평안도 압록강의 강 폭이 좁은 강가에는 여진족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우리 농민에게 피해를 입힌다. 농민이 집과 땅을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농민이 줄지 않는 이유이고, 이곳에 사는 사람이 줄어 드니 국경 방어가 허술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군대를 강변 고을에 추가로 배치하고 정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선에 귀화한 여러 여진족들이 농사가 잘되는 강변을 따라서 삼삼오오 모여 살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등 정착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것에서 희망이 보인다. 농민이 줄어든 국경지역에서 이들이 조선과 여진족 사이에 군사적 완충역할을 해주어서 안정을 찾아가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덤이다. 또한 이러한 결과로, 이만주의 영향력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기에, 우리에게는 여러가지로 호재다.

작년 가을에 여진족 거여첩합을 붙잡아서 잠시 강화도에 두었다. 거여첩합은 함경도 국경지역을 수차례 침범하여 우리 백성을 죽이고 납치해간 악랄한 자이지만,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 이 자를 따르는 무리가 중국 황제에게 찾아가 조선을 해코지하면, 오히려 우리가 난감한 상황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분하지만, 거여첩합에게 집과 노비를 주고 가족과 함께 서울에 살게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여진족에게 감정이 있는 우리 백성이 보기에는 왕을 욕할 수도 있지만, 이 모습을 본 누구라도 여진족이 사는 지역으로 돌아가서, 조선은 귀순하면 여진족 누구라도 죽이지 않고 후하게 대접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내가 바라는 전략이다. 예상대로 거여첩합이 풍요롭게 사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돌아가는 여진족이 있다. 내 마음이 통한 것인지, 홀라온 부족장 한명이 경복궁까지 천리 길을 찾아와서 귀순 신청을 했다. 그리고 2월 5일에는 중국 땅으로 도망친 오도리 부족장 동범찰의 아들이 귀순했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그래서 2월부터는 귀순하려는 여진족은 반드시 신상명세를 작성하게 하고, 알고 있는 여진족 동향 정보를 말하게 했다. 그리고 또다른 방편으로, 사형수 중에 몇 명을 선별해서 여진족 동향을 정탐하기 위해 보냈다.

하루는 이만주 무리가 황제에게 가는 우리나라 사신 일행을 평안도 건너 중국 땅에서 공격하고, 이때 평안도를 지키는 우리 군대가 사신 일행을 보호하려고 국경을 넘어가면, 그 빈틈을 이용해서 이만주와 연합한 다른 여진족 무리가 평안도를 기습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만주가 연합하려는 여진족이 조선에 찾아와서 이만주의 계략을 낱낱이 털어 놓았기에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7월 6일에는 여진족 홀라온 몇몇 부족장이 부하를 보내서 귀순의사를 표시했다. 다음날에는 중국으로 도망쳤던 오도리 부족장 중의 한명인 동창이 이만주의 딸과 결혼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조선에 찾아와서 20여일 동안 머물며 불평불만을 늘어 놓고 돌아갔다.

떠나는 날에 “지금 오도리 30여 가족이 두만강 너머의 중국 훈춘 지역


경묵
김경묵
창의성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20년 근무했고,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논문을 게재한 유일한 한국 디자이너이다. 지금은 서사를 기능으로 바꿔내는 소프트한 창의성과 세종실록 그리고 The AX Wave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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