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TI 뭐예요?"
요즘 이 질문, 안 받아본 사람이 드뭅니다. 회식 자리는 물론이고 신입 환영회, 심지어 거래처 미팅에서도 "INFP세요? 아 ENTJ시구나~" 하는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혈액형이 뭐예요?" 였던 자리에 MBTI가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과거 구성원의 소통을 활성화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성격유형 도구를 활용한 워크샵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저는 MBTI, DiSC, 버크만, 에니어그램, Big5 등 성격유형검사 관련 W/S들을 다양하게 경험해보았고, 모두 다 각자의 특색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 처럼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성격유형검사의 여러 종류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접근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유형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제가 선택 후보는 2가지였습니다. MBTI냐, DiSC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DiSC를 골랐습니다.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구성원 대상으로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글은 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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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마세요. 저도 MBTI를 좋아합니다. 그것도 매우. 유투브에서 MBTI 관련 영상도 자주 시청하고 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의 MBTI를 유추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죠. MBTI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일상 대화에서 "아, 저는 ENFP라서요" 한마디면 상대방이 저를 이해하는 속도가 확 빨라지는 경험, 누구나 해봤을 겁니다.
그런데…
"워크샵을 MBTI로 한다"는 결정을 앞에 놓고 보니, 갑자기 세 가지 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① 16개는, 사실 너무 많습니다
MBTI를 처음 접했을 때, INFJ, ENTP, ISTJ, ESFP... 한 번에 외워지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세요. MBTI에 익숙한 2030 구성원들에게는 익숙한 알파벳일지 몰라도, 50대 구성원에게는 거의 외계어에 가깝습니다.
"제가 ENTJ인데요" 하고 자기소개를 시작하면, 듣는 쪽은 "E가 외향이고 N이... 직관이었나? J는 판단이고..." 하며 다음 단어가 나오기 전에 길을 잃습니다. 그렇게 본인 유형 4글자 외우는 데에만 워크샵 한나절이 갑니다.
반면 DiSC는 단 4개입니다. D, i, S, C. 색깔이 입혀지면 직관적으로 "아, D는 추진형, C는 분석형" 하고 머리에 박힙니다. 50대 시니어도, 20대 주니어도 같은 속도로 따라옵니다.
② 본인의 MBTI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MBTI에는 묘한 함정이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6개월 간격으로 검사를 다시 하면 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흔합니다. "전에는 INFP였는데 이번엔 ENFP가 나왔어요" 같은 이야기를 흔하게 듣습니다. 저 역시도 MBTI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ISTJ -> ISFJ -> ISFP -> ENFP 루요(제가 생각해도 저는 제 자신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MBTI는 본질적으로
'내적 선호'를 측정합니다. 즉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 답을 본인이 정확히 알기가 의외로 어렵습니다. 회사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인지 본인도 헷갈리는 거죠. MBTI는 '나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묻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본인조차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정말 나의 진짜 MBTI를 알려면 전문가의 손을 빌려 제대로된 진단과 디브리핑을 받아야 합니다.
③ MBTI는 '회사에서의 나'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사실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제가 알고 싶었던 건 "우리 김 과장님이 가정에서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김 과장님이 회의실에서, 보고 자리에서, 협업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였습니다.
MBTI는 "기질"을 봅니다.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비교적 안정적인 개인의 내적 선호를 측정합니다. 좋은 도구이지만, 조직 상황에서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워크샵의 목적은 "우리가 회사에서 서로 어떻게 다른지, 그래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였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라는 환경에서의 행동 패턴을 보는 도구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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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는 1928년 하버드 심리학자 William Marston이 제시한
『정상인의 정서(Emotions of Normal People)』에 뿌리를 둔 행동유형 모델입니다. Marston은 사람의 행동을 두 개의 단순한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DiSC 4분면 (Marston 원래 축)]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두 가지 질문이 전부입니다.
첫째, 환경을 우호적으로 보는가, 아니면 적대적으로 보는가?
둘째, 그 환경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가?
이 두 축의 조합으로 네 가지 유형(행동 패턴)이 나옵니다.
D · 주도형 | 도전적, 결과 지향적, 빠른 의사결정. 추진력으로 일을 끌고 가는 사람들 |
i · 사교형 | 낙천적, 표현력 풍부, 영향력. 사람을 모으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사람들 |
S · 안정형 | 인내심, 협력적, 안정 추구. 팀의 균형을 잡고 신뢰를 만드는 사람들 |
C · 신중형 | 정확성, 분석적, 기준 준수. 데이터와 논리로 일의 품질을 책임지는 사람들 |
더 쉽게 이해하기 — 속도와 초점
Marston의 원래 축인 "우호-적대 / 능동-수동"은 학문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워크샵 현장에서는 좀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DiSC 강의에서는 더 실용적인 두 축으로 바꿔 설명합니다.

[DiSC 4분면 (속도와 초점 축)]
그림과 같이, 가로축은 관심의 초점입니다. 일에 더 집중하는가(업무중심), 사람에 더 집중하는가(인간중심)?
세로축은 행동의 속도입니다. 빨리 움직이는가(빠름), 천천히 신중하게 움직이는가(느림)?
이 두 가지 질문만 있으면 누구나 자기 유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말의 속도가 빠르고 결과부터 들이미는 사람 → D (주도형)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안부부터 묻고 분위기를 풀어주는 사람 → i (사교형)
말이 적고 조용히 듣다가 "제 생각엔..." 하며 신중하게 의견을 내는 사람 → S (안정형)
"근데 그 데이터 출처가 어디예요?" 하고 곧장 검증부터 들어가는 사람 → C (신중형)
어떠세요? 본인 유형이나 팀원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이게 DiSC의 진짜 매력입니다. 복잡한 알파벳 조합 없이, 두 가지 질문으로 누구나 자기 유형과 동료 유형을 즉시 파악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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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서 좋다"는 건 직관적인 이유였습니다. 강사 자격증을 따고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저는 좀 더 학문적인 근거도 챙기고 싶었습니다. "왜 DiSC가 조직 행동을 더 잘 설명하는지"를 데이터로 답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정리하자면 두 도구는 측정 대상부터 다릅니다.
구분 | MBTI | DiSC |
측정 대상 | 내적 선호 (어떻게 사고·판단하는가) | 외적 행동 (어떻게 행동하는가) |
유형 수 | 16개 유형 | 4개 유형 (조합 시 8~12개) |
환경 영향 | 덜 받음 (기질 중심) | 많이 받음 (상황별 변화 가능) |
주된 활용 | 자기이해, 진로 탐색 | 팀빌딩, 조직 커뮤니케이션 |
핵심 차이는
"환경의 영향을 어떻게 보는가" 입니다. MBTI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본질적인 나'를 찾으려 합니다. 반면 DiSC는 '환경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는 사실을 오히려 전제로 깔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나”와 "회사의 나"를 따로 측정하기도 합니다. 환경(직무, 직급, 동료 등)이 변하면 DiSC 유형도 변합니다.
워크샵 현장에서 이 차이는 결정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었던 건 정확히 "회사라는 환경에서의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한국 연구 한 편]
최근 흥미로운 연구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2025년 7월 JMIR Human Factors 학술지에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Kim, Lee, & Hwang)이 MBTI와 DiSC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 20~30대 130명에게 두 검사를 동시에 실시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내향(I) ↔ 안정형(S): r = +0.38 — 조용하고 안정 추구 성향이 함께 나타남
• 감정(F) ↔ 안정형(S): r = +0.30 — 배려·조화 지향성이 공유됨
• 판단(J) ↔ 신중형(C): r = +0.31 — 계획성·체계성이 같은 핵심을 측정
• 사고(T) ↔ 주도형(D): r = −0.38 — 의사결정 양식에서 흥미로운 역관계
결론은
"두 도구는 동일한 것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중첩되면서 서로를 보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MBTI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DiSC는 '그래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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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MBTI냐 DiSC냐"라는 질문 앞에서, 저는 결국 다음 세 가지 이유로 DiSC를 택했습니다.
첫째, 4개 유형은 직관적입니다. 50대 시니어부터 20대 주니어까지 같은 속도로 따라옵니다.
둘째, "회사에서의 나"를 봅니다. 조직 소통이 목적이라면 가정의 나가 아니라 회의실의 내가 더 중요합니다.
셋째, 환경 적응성을 인정합니다. "본질적인 나"를 찾는 부담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의 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3개월 후, 구성원 대상 DiSC 워크샵이 끝났습니다. 흥미로운 데이터가 손에 잡혔습니다.
"우리 조직엔 어떤 유형이 가장 많을까?"
"팀마다 분포는 어떻게 다를까?"
"DiSC와 MBTI를 같이 보면 어떤 패턴이 보일까?"
다음 2편에 이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MBTI도 좋습니다. DiSC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왜 그 도구를 골랐는가"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어떤 도구가 어울리실 것 같으신가요. 댓글로 이야기 나눠주시면 기쁘게 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