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자" 가 “쉬 마렵다”로 들릴 때

"쉬어가자" 가 “쉬 마렵다”로 들릴 때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조직문화글로벌 HR전체
소영
장소영Oct 10, 2026
25410

예전에 회의 중 외국인 동료가 잠시 쉬어가자며 "Let’s take a pit stop"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그것을 소변을 의미하는 pee "쉬 마려워"로 들었다. 일단 10분 휴식 시간을 가졌다.

며칠 뒤 또 그 동료랑 미팅을 하는데, 또 I need a pit stop이라고 했다. 그 순간, 회의실에 있던 동료 직원들과 나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서로 황당하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 동료가 나간 뒤, 우리는 소곤거렸다. “우리 맞게 들은 거 맞아? 쉬하고 싶다고 말한 거 맞아? 아기도 아니고 어른이 저렇게 말해?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한다고?”

회의가 끝나고 나는 나름대로 친절한 마음을 담아 그 동료에게 가벼운 피드백을 건넸다.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Pee stop’처럼 너무 원초적인 표현보다는 ‘Bio break’라고 부르는 게 훨씬 격식 있고 적합할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그 동료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알려주었다. 그가 말한 건 'Pee stop'이 아니라, 모터스포츠 F1에서 타이어를 교체하고 점검하듯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의 Pit stop이었다. 나중에 영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F1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F1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영어 공부를 할 때 많은 이들이 "Play it by ear(그때그때 봐서 하자)"나 "Pet peeve(불쾌하게 만드는 것)" 같은 관용구를 외우는 데 공을 들인다. 뭐든 공부하면 좋겠지만 이런 원어민식 표현은 사실 쓸 일이 별로 없었다. 회의 참석자가 미국인, 영국인, 호주인으로만 구성되면 사용해도 된다. 그러나 만약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다른 참석자가 섞이면 이런 표현은 소통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유럽에 와서 생활하기 전에는 내가 글로벌 = 미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우리가 생각하는 글로벌은 많은 경우 미국을 문화, 언어 중심인 경우가 많다. 유럽에 있다 보면 영국뿐만 아니라 헝가리, 프랑스, 독일 등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워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이들과 일하게 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원어민 표현법은 그들도 잘 모른다.

외국인들과 일하기 시작한 경력 초반에는 글로벌 hr call에 들어가면 나를 제일 긴장하게 했던 것은 영국, 미국, 인도였다. 말이 빨라서 어떤 때에는 엄청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들어도 뭘 들었는지 모르겠고, 악센트가 멋지군 같은 딴생각이 끼어들면 그새 얘기를 놓쳤다. 그래서 녹음기를 가지고 들어간 적도 있었다.

글로벌 헤드쿼터나 다국적 팀에서 일하다 보면, 오히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어로 말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내 영어 실력이 퇴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고급 어휘나 화려한 이디엄 대신 늘 명확하고 단순한 표현만 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6년 BBC에 실린 한 기사를 읽고 마음이 놓였다. 제목이 “Native English speakers are the world’s worst communicators”다.

글로벌 비즈니스 상황에서 영어 원어민이 제일 커뮤니케이션을 못한다는, 제목은 좀 자극적인데, 원어민이 상대에 맞춰 말을 조정하지 않는 점을 짚는다. BBC 기사에 따르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현지인들만 아는 은어, 축약어, 스포츠 유래 이디엄, 혹은 너무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가 비원어민 간의 소통을 방해하곤 한다.

반면,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 덕분에 글로벌 미팅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소통한다. 화려한 표현보다 핵심 위주의 명확한 단어를 선택한다.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며 말의 속도와 어휘를 사용한다. 복잡한 관용구 대신, 다국적 비즈니스 환경에서 통용되는 가볍고 직관적인 어휘를 사용한다.

기사에는 사례가 나오는데, 원어민이 보낸 영어 이메일 속 단어 하나를 비원어민 동료가 사전에서 찾아봤는데, 서로 반대되는 뜻이 두 개 나왔다. 그 동료는 잘못된 쪽으로 이해하고 일을 진행했고, 몇 달 뒤 프로젝트는 실패해서 수십만 달러의 손실이 났다. 원인을 추적하니 단어 하나였다.

소통 전문가 Chia Suan Chong은 이런 오해가 생기면 대개 원어민 쪽 책임이라고 말한다. 영어를 제2, 제3언어로 쓰는 사람들은 제한된 어휘와 단순한 표현으로 목적에 맞게 신중하게 말한다. 화려한 표현이나 슬랭도 쓰지 않는다. 반면 원어민은 상대에 맞춰 말을 조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회의에서는 원어민이 발언의 약 90%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원어민들은 다국적 동료들과 일할 때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이고 쉬운 단어를 고르는 글로벌 소통 모드를 작동시킨다. 실제로 한 영국인 동료는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집에 왔으면 외국인한테 말하듯이 하지 말고, 이제 노멀 말하기 모드로 좀 돌아와!”

실제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 중 원어민보다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 비원어민의 수가 훨씬 많다. 글로벌 무대에서의 '좋은 영어'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인 것이다.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영어 공부를 하면서 원어민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려 하고, 미국 사람처럼 말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소통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의사전달과 교환이다. 멋지게 빠르게 미국인 네이티브처럼 말하면 자기만족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제대로 글로벌 소통이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쉬운 영어도 괜찮다.


소영
장소영
조직과 개인의 변화-성장-성과를 지원하는 HR파트너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인사팀장을 거쳐, 글로벌 기업 독일 본사에서 EMEA(유럽, 중동, 아프리카) 인사총괄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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