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함께 사내벤처 프로젝트를 했던 스타트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개발자를 다섯 명 더 뽑아 스무 명이 넘었다고 했다. 좋은 소식인데 표정이 마냥 밝지는 않았다. 사람이 늘면서 경영지원 쪽 일이 함께 불어났는데, 도무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일이 밤 10시에 끝나요. 경영지원까지 챙기면 새벽에나 집에 갈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경영지원 부서장을 뽑았다. 대기업 출신 경험 많은 시니어였다.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지금, 그의 밤은 여전히 길다.
경영지원에 처음 사람을 들일 때, 대표들은 대개 이 갈림길 앞에 선다. 경험 있는 시니어를 데려올 것인가, 아니면 주니어를 뽑아 키울 것인가.
현재, 그 대표의 아쉬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타일이었다. 실무를 기대하고 뽑았는데 지시형에 가깝더라는 것. 다른 하나는 소통이었다. 초반이라 그런지 직원들과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고 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하나로 이어져 있다.
큰 조직에서 부서장의 일은 방향을 정하고, 나누어 주고, 점검하는 것이다.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방식이 몸에 배어 있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스무 명 회사에는 나누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시는 있는데, 그 지시를 받아 손을 움직일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여기에 자리의 무게가 겹친다. 부서장이라는 직급은 그 자체로 직원들이 편히 말 걸기 어려운 위치다. 큰 회사에서는 그 사이를 실무자들이 메워준다. 부서원이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올려주고, 부서장은 그걸 받아 판단한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그 중간이 없다. 그래서 현장의 작은 불편들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채 고인다.
결국 대표는 실무를 기대하고 뽑았는데, 손에 쥔 것은 직급이었던 셈이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시니어를 뽑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부서장을 해 본 사람이다. 그리고 시니어가 진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을 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을 때다. 갑작스러운 분쟁, 처음 겪는 규제,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곤란한 상황. 이런 자리에서 경험은 대체할 수 없다. 어디부터 손대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막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책으로 익힐 수 없는 자산이다.
그러니 문제는 시니어냐 주니어냐가 아니었다. 같은 시니어라도 스무 명 회사에서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직접 손을 움직여야 하고, 직원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큰 조직의 습관을 그대로 가져오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과 어긋난다.
그렇다면 주니어는 어떤가.
주니어의 가장 큰 약점은 분명하다. 경험이다. 처음 겪는 일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주니어를 뽑았을 때도 대표의 밤은 짧아지지 않을 수 있다.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없으면 주니어는 헤매고, 결국 대표가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된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를 대표가 매번 알려줘야 한다면, 일이 넘어간 게 아니라 일에 사람이 하나 더 붙은 것이다. 시니어를 잘못 뽑았을 때와 결과는 똑같다. 방식만 다를 뿐이다.
대신 주니어에게는 시니어에게 없는 것이 있다. 직원들과의 거리다. 부서장 자리에서는 좀처럼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 주니어에게는 들린다. 나도 그 덕분에 경영지원에서 고쳐야 할 것을 발견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무엇이 불편한지를 아는 사람은 대개 그 불편을 겪는 사람 곁에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주니어는 이 회사의 방식대로 자란다. 회사가 겪는 우여곡절을 함께 지나며, 그 시간이 그대로 그 사람의 경험이 된다. 시니어가 다른 조직에서 만들어진 습관을 가지고 오는 것과 반대다. 시간이 걸리는 대신, 이 회사에 맞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무엇으로 정하는가
양쪽 다 잘못 뽑으면 결과는 같다. 그러니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회사에 무엇이 급한가의 문제다. 내가 보는 기준은 이렇다.
시니어가 맞는 경우
기업 초기의 기본 틀을 세워야 할 때, 그리고 성장 단계에서 터질 수 있는 리스크와 예상 못 한 이벤트에 대처해야 할 때다. 이런 일은 겪어 본 사람이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처음 마주하는 분쟁, 규제, 사고 앞에서 경험은 그대로 시간이 된다. 시니어는 회사의 시간을 벌어준다.
주니어가 맞는 경우
아직 큰 리스크가 눈앞에 없고, 사람을 키울 시간이 있을 때다. 주니어는 회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다. 잘되는 날과 안 되는 날, 우여곡절을 같이 통과하며 회사와 함께 자란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주니어는 회사의 시간을 함께 쌓는다.
시간을 벌 것인가, 시간을 쌓을 것인가. 지금 대표님의 회사에 급한 쪽이 어디인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그래서, 무엇이 급한가.
그 스타트업 대표에게 부족했던 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이 회사에 무엇이 급한지를 먼저 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경험을 사서 당장의 위험을 넘길 것인가, 시간을 들여 함께 갈 사람을 만들 것인가. 이 판단이 서고 나면 시니어냐 주니어냐는 오히려 쉬운 문제가 된다. 반대로 이 판단 없이 사람부터 찾으면, 누구를 뽑아도 어긋난다. 그리고 그 어긋남의 대가는 대개 대표의 밤으로 돌아온다.
대표님의 회사는 지금 시간을 벌어야 할 때인가요, 아니면 시간을 쌓아야 할 때인가요?
두 답은 전혀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