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을 하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년, 나는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하면서 무엇을 남겼나?”
그 질문은 이상하게도 ‘가장 최근의 화려한 성과’로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성과는 보통 분기 보고서에 적히고, 숫자로 비교되며, 박수로 끝나지만,
제가 떠올린 장면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돌아보면 저는 회사에서 ‘처음’ 하는 일들을 많이 맡아 왔습니다.
고객사의 요청으로 긴급하게 윤리규정을 제정했고, 윤리경영지침을 대표이사 명의로 전사에 정착시키기 위해 가이드와 세부 실천지침까지 만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지금 회사에서 운영되는 윤리경영은 그때의 규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직만족도 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항을 연구하면서 새로 개발하고 결과보고서 템플릿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흘러 현재 담당자가 그 템플릿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는 걸 볼 때 묘하게 뿌듯했습니다. 취업규칙 제·개정, 아웃소싱 업체 관리의 기준과 표준 정립, 그리고 20년 전 시작했던 사내 문화활동인 음악교실, 아이훈련, 마법노트, 봉사활동까지. 당시에는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것들은 모두 조직의 습관이 되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건요.
그 순간순간만 떼어놓고 보면, 저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떠올린 성과는 화려한 숫자로 남지 않고, 규정·프로세스·템플릿·운영의 구조로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누군가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장면을 마주할 때 깨닫습니다.
“아, 그때 내가 뿌린 건 씨앗이었구나.”
책임이나 특히 수석이 되면, 일을 ‘잘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이전에는 “내가 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이 성과를 내도록 조력하는 사람”이 되어 “조직이 계속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시니어의 업적은 종종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문제를 미리 막아 사고가 나지 않게 만들고
기준을 정리해 혼선을 줄이고
템플릿을 잡아 보고서 품질을 올리고
원칙을 세워 조직의 습관을 바꾸고
다음 세대가 덜 헤매도록 길을 깔아 줍니다
이건 박수받기 어려운 일입니다.
결과가 눈앞에 번쩍 뜨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조직은 그런 일 덕분에 “덜 다치고, 덜 새고, 덜 흔들리며” 오래 갑니다.
그리고 이 도움을 받는 후배 사원들이 빛나게 됩니다.
한발자국 뒤에서 후배들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조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시 요즘 이런 생각이 드나요?
“나는 왜 예전처럼 ‘큰 성과’가 없는 것 같지?”
“열심히 일했는데, 남는 게 있나?”
시니어에게는 이 질문이 아주 흔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질문이 나쁜 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열매의 사람’에서 ‘씨앗의 사람’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몰입과 만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은 흔하지만,
정작 시니어들이 자주 느끼는 감정은 이겁니다.
“나는 아직도 필요한 사람인가?”
수석급이 특히 ‘인정’에서 결핍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15년, 20년을 한 조직에서 버틴 사람은 일의 기술뿐 아니라 자기 인생의 시간을 그곳에 묶어 두었으니까요.
그리고 조직은, 솔직히 말해, 어느 순간부터 시니어를 ‘비용’의 언어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새 피가 필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지만, 그 말이 시니어를 ‘뒷방’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사용될 때 우리는 마음이 철렁합니다.
젊은 구성원들이 “일은 비슷해 보이는데 왜 연봉이 높냐”고 말할 때, 속이 상하죠.
그들은 아직 모릅니다.
숙련이 줄여주는 시행착오의 비용, 결정의 속도, 리스크를 미리 막는 감각을요.
하지만 이해받지 못하면, 숙련은 어느새 쓸쓸해집니다.
그래서 시니어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인정을 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여기서 여전히 의미 있게 쓰이고 싶은 마음”의 다른 이름입니다.
시니어에게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하곤 합니다.
“젖은 낙엽처럼 조직에 딱 붙어 있어라.”
저는 그 말이 현실을 담고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시니어의 이직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경력이 무거워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디서든 환영받진 않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저도 Younger(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웃다가 마음이 싸해졌습니다.
40대로는 계속 고배를 마시고, 26세로는 단번에 합격하는 장면이 코미디인데, 통쾌함과 속상함이 동시에 올라오더라고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붙어 있느냐, 떠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붙어 있느냐입니다.
조직에 붙어 있되, 씨앗을 심는 사람으로 붙어 있기
조직에 붙어 있되, “나 없으면 안 돼”가 아니라 “내가 만든 구조가 굴러가게” 붙어 있기
조직에 붙어 있되, 어느 날 울타리가 사라져도 흔들리지 않게 조직 밖의 무기를 준비하며 붙어 있기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젖은 낙엽’이 아니라 단단한 나무가 됩니다.
시니어 직원의 두려움은 대개 이런 모양을 하고 옵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으로 성장하지?”
“여기서 더 올라갈 수 있을까?”
“임원으로 갈까, 밖으로 나갈까?”
“지금까지 쌓아온 성이 무너지진 않을까?”
“내가 조직 밖에서도 쓸모가 있을까?”
이 두려움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한 울타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니어에게 ‘용기 내라’는 말보다,
두려움을 다루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둘 다 하고 싶겠지만, 중심을 정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답이 생기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버릴 일”이 보입니다.
전문가는 깊이를 남기고
리더는 사람과 구조를 남깁니다
당신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나요?
당신의 업적은 숫자일 수도 있지만,
시니어의 업적은 대개 형태를 가진 구조로 남습니다.
내가 만든 기준이 지금도 쓰이나요?
내가 만든 템플릿이 누군가의 시간을 줄여주나요?
내가 세운 원칙이 조직의 습관이 되었나요?
내가 키운 사람이 다음 세대의 버팀목이 되었나요?
이 질문은 당신을 다시 단단하게 붙잡아 줍니다.
“내가 헛살지 않았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시니어는 피드백이 줄어듭니다.
평가는 받아도 성장 대화는 사라지죠.
그래서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나보다 한 단계 위의 사람과 정기적으로 대화하기
외부 멘토·코치·동료 네트워크와 성장 질문을 주고받기
“잘하고 있다”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묻기
시니어에게 성장 대화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 장치입니다.
시니어의 이동은 종종 이력서가 아니라 평판과 추천으로 열립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능력’만큼 ‘관계’가 중요합니다.
강의, 글, 멘토링, 자문, 프로젝트 협업 등을 통해 작게라도 밖으로 나의 이름을 보내기
한 가지 기술이 아니라 2~3개의 조합 만들기(예: HR + 데이터 + 코칭 / HR + AI + 퍼실리테이션)
배움의 제도를 활용해 “나이”를 핑계로 두지 않기(내일배움카드 같은 것 포함 - 저도 만 45세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어떤 기술을 새롭게 배울까…?? 설레이네요^^)
조직은 내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 말이 차갑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이 문장이 오히려 시니어에게 자유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준비하면 된다.”
당신이 남긴 업적은 “대단한 이벤트”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은, 그런 사람이 남긴 규정 하나, 템플릿 하나, 원칙 하나로 10년을 굴러갑니다.
당신은 아마도
눈에 띄는 열매를 따기보다,
아무도 크게 칭찬하지 않는 씨앗을 심어 온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시니어의 품격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그 마음이 사실은 “희망”이 아니라 “책임”에서 나오는 마음이라는 걸,
같은 시니어는 압니다.
그러니 오늘, 이 질문 하나만은 꼭 스스로에게 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