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독서클럽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한 대표님께서, 회사의 50대 리더가 "우리 조직에는 심리적 안전감이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꺼내셨지요.
그 말에 자리에 있던 분들이 가볍게 웃었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MZ세대의 언어라고만 생각했는데, 50대 리더에게서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그 웃음은 이내 진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과연 심리적 안전감이란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 조직에서 "심리적 안전감이 없다"는 말은 대개 '안전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불편했던 순간, 불쾌했던 순간, 마음이 상했던 순간이 모두 '안전감이 없는' 장면으로 기억되곤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심리적 안전감이 어느새 '내가 편안한 상태'와 비슷한 말이 되었습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마음이지만, 이 개념을 처음 연구한학자가 말한 의미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는 25년 넘게 심리적 안전감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는 1999년 논문에서 심리적 안전감을 '이 팀에서는 대인관계의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는, 팀원들의 공유된 믿음'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직을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이라고 불렀지요.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에드먼슨이 말하는 '위험 감수'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것처럼 팀이 배우고 과업을 잘 해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말합니다. 즉 심리적 안전감은 처음부터 '조직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 개념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목표를 위해 필요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꺼낼 수 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기분의 문제라기보다, 성과를 위한 소통이 원활하게 흐르게 하는 토대인 셈입니다.

이 개념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병원 의료팀 연구였습니다. 에드먼슨은 1990년대 초 두 병원의 간호팀들을 대상으로, 팀워크가 좋을수록 의료 과실, 그중에서도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는 과정의 오류가 줄어드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습니다. 리더십과 동료 관계가 좋다고 평가된 팀일수록 오히려 오류가 더 많이 기록된 것이지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 결과를 다시 들여다보니, 답은 '보고'에 있었습니다. 좋은 팀이 실수를 더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실수를 더 많이드러냈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팀은 실수를 편하게 이야기했고, 덕분에 빨리 발견하고 바로잡으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두려움이 큰 팀에서는 실수가 감춰졌습니다. 실수가 적어 보였던 것은 실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심리적 안전감은 분위기가 좋고 관계가 원만한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과업을 잘 해내기 위해 서로 피드백과 문제 제기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에드먼슨이 말한 심리적 안전감입니다.
하나는 조직의 문제점이나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의견을 이야기해도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그때그때의 기분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과업을 위한 문제 제기와 피드백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의 실수와 실패를 드러내도 괜찮은가입니다.
두 질문 어디에도 '나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가'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의 기준은 나의 편안함보다는, 목표를 위해 말할 수있는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개념이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이 노동 이슈,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안전감이 없다"는 말이 "누군가 나를 힘들게 했다"로 들리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의 관점을 중요하게 보아 온 판단 기준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옮겨 오며 생긴 인식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는 분명 소중합니다. 다만 현장에서는 이것이 '내가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꼈다면 상대가 잘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 법이 정한 기준은 그보다 섬세합니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입니다. 업무에 필요한 적정한 피드백이라면, 듣는 사람이 불편했더라도 그것만으로 괴롭힘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업무상 피드백이 마음의 상처로, 상처가 괴롭힘으로, 괴롭힘이 신고로 이어지는 일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고소와 맞고소가 오가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HR 담당자들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HR 담당자분들이 양측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며 감정적으로 많이지친다고 털어놓으십니다. 어느 한쪽의 마음도 가볍게 여길 수 없기에 더 어렵고,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씀도 자주 듣습니다. 조직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안전하지 않은 자리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이 흐름을 차분히 따라가 보면 이렇습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나의 편안함, 즐거움, 만족감으로 이해하면, 그 밖의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안전하지 않음'이 됩니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다면 누군가 나를 힘들게 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여기서 한 번쯤 멈춰 볼 지점이 있습니다.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이, 곧 그 원인을 상대가 제공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상하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서 이유를 찾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감정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감정의 책임은 자기자신에게 있다고 하지요. 저도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상대를 바라보기 전에 먼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 이 감정은 누구의 어떤 기대에서 시작된 것일까?
• 그 기대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의 방향은 우리의 과업(목표)을 위한 것인가?
• 궁극의 방향을 위해 좀더 효과적인 방안(태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저는 이런 질문을 더 하면 좋겠습니다. 나의 불편함이 누군가에 대한 기대라면, 상대는 그 기대를 충족 시켜줄 어떤 의무(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거친 뒤에 문제를 다루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야 정말 보호받아야 할 괴롭힘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편함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HR 담당자들이 양쪽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기준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조직은 불편함이 전혀 없는 조직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불편한 이야기도 꺼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조직입니다. 그 50대 리더가 말한 "안전감이 없다"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없다'는 뜻이었는지, '문제를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었는지 먼저 따뜻하게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어떨까요.
심리적 안전감을 지키는 일은 감정을 보호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감정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일을 위한 대화를 멈추지 않는 데서비로소 시작됩니다. 이것이 심리적 안전감에 대해 제가 나누고 싶은 첫 번째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