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소개할 영화는 〈아폴로 13〉다. 달 착륙을 앞두고 우주선이 폭발 사고를 겪으면서 임무는 순식간에 생존 작전으로 바뀐다. 지상의 엔지니어들은 준비해 둔 매뉴얼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우주선 안에 실제로 있는 부품만 책상 위에 펼쳐 놓고, 그 제한된 조건 안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야 했다.
그들이 살린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상황에 맞게 계획을 계속 수정하는 능력이었다.
조직의 계획도 이제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연말이 되면 대부분의 기업은 다음 해 사업계획을 세운다. 목표를 정하고 예산을 배분하고, 조직별 KPI를 확정한다. 환경이 안정적이던 시절에는 이런 연간 계획이 조직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주는 나침반이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상황이 다르다.
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고객도 변한다. 기술은 더 빠르게 바뀐다. 지난해 말에 세운 계획이 몇 달 지나지 않아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문제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가트너는 자율형 AI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중도에 종료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부분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 세운 큰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거대한 계획보다 작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는 조직이 더 강하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토스는 새로운 기능이나 서비스 아이디어를 작은 실험으로 검증하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쿠팡 역시 대부분의 서비스 개선을 데이터 기반 실험으로 검증하며, 수많은 가설을 동시에 운영한다.
계획은 연초에 확정하는 문서가 아니라 매일 수정되는 운영 체계가 되었다.
해외에서는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아마존은 수많은 실험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의사결정을 두 가지로 나눈다.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은 빠르게 실행하고,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만 신중하게 검토한다.
실패를 줄이는 조직보다 학습 속도를 높이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
스웨덴의 한델스방켄도 같은 철학을 보여준다.
이 은행은 연간 예산 중심의 경영을 과감히 줄이고 현장에 더 많은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했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얼마나 정확하게 세우느냐가 아니라,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eople팀에도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계획은 더 이상 1년에 한 번 완성하는 문서가 아니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고, 배우고, 다시 수정하는 리듬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과관리도 마찬가지다. 연말에 한 번 평가하기 위해 일 년 내내 숫자를 쌓아두는 방식보다, 작은 목표를 자주 확인하고 빠르게 피드백하는 체계가 AI 시대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AI는 목표를 세우는 일을 대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고 있는지, 어디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계획의 경쟁력은 정확함이 아니라 갱신하는 속도에서 나온다.
Patrick's Insight
최근 HR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성과관리 제도를 손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일은 성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연말 평가를 위해 측정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지표와 숫자를 만드는 일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대화는 사라진다.
매출과 이익처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지표는 분명 존재한다. 사람의 성장과 역량 개발도 단기간에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목표는 굳이 연말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AI는 업무의 진행 상황과 성과를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평가 역시 연말에 한 번 모아서 하는 방식보다, 필요한 순간마다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People팀이 다시 설계해야 하는 것은 평가표가 아니라 성과를 점검하는 리듬이다.
이번 주 회의에서는 이런 질문 하나를 던져보면 어떨까.
"우리 조직은 계획을 관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계획을 계속 학습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