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
밋업
컨퍼런스
커뮤니티
열심히 한 사람은 왜 먼저 조용해질까

열심히 한 사람은 왜 먼저 조용해질까

조직이 조용해질 때 HR이 먼저 봐야 할 신호
조직문화기타전체
승란
이승란Feb 10, 2026
11829

회사가 계속 성장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일은 많았고, 속도도 있었고, 열정이 넘쳤고,
“지금은 힘들어도 결국은 잘 가고 있다”는 공기가 조직 안에 남아 있던 때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일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다들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성과는 예전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회의는 늘어났고, 논의는 많아졌지만 결정은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았다.

조직이 무너진 건 아니었다.
다만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굴러가지 않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HR로서 이 시기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느껴진 변화는 숫자도, 지표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말투, 회의실의 공기, 지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의 말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회의는 여전히 열렸지만 질문은 줄었고,
이견은 사라졌지만 방향에 대한 확신도 함께 옅어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늘 가장 책임감 있게 일하던 사람들부터 시작됐다.

그때는 이 장면을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팀이 조금 조용해졌다”는 감각만 남아 있었다.


조용해진다는 건, 열정이 사라졌다는 뜻일까

조직이 조용해질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다들 지친 것 같아.”
“요즘은 예전만큼 적극적이지 않네.”

하지만 현장에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조용해진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성실하다.
일을 놓지도 않고,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는다.

다만 말을 아끼기 시작했을 뿐이다.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조직 안에서
가장 많은 시도를 해본 사람들이다.
아이디어를 내보고, 문제를 제기해보고,
질문도 던지고, 다른 방식을 제안해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몸으로 겪는다.

  • 이 정도 제안은 괜찮구나

  • 이 질문부터는 분위기를 흐리는구나

  • 이 타이밍에 말하면 일이 더 커지는구나

이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선을 긋는다.

“여기서는 이 정도까지만 말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조용해진다.
의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직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최강의 조직』이 붙여준 하나의 언어

얼마 전, 이사님 추천으로

벤 호로위츠의 『최강의 조직』을 읽고
이사진들과 내용을 공유할 기회가 있었다.

책에서는 조직문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조직문화란,

직원들이 매일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이게 맞다’고 느끼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판단 기준이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던 이유는,
조직문화를 ‘분위기’나 ‘가치’가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의를 곱씹다 보니
그때 느꼈던 조직 내에서의 고요함이
전혀 다른 장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사람들이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조직이 이미 어떤 선택이 안전한지를
충분히 학습시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를 말하면 일이 커졌고,
어떤 질문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돌아왔고,
어떤 제안은 결국 아무 결정도 남기지 못했다.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점점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

“이 조직에서는
말하지 않는 선택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겠구나.”

그래서 침묵은
포기나 무기력이 아니라
조직이 만든 가장 논리적인 행동이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조직문화를 다시 보게 됐다.

문화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의실 벽에 붙은 문장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조금 더 편해지는지,
조금 더 불편해지는지를 통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만들어진다.


성과가 흔들릴 때, 조직의 말투는 달라진다

성과가 잘 나올 때 조직은 비교적 여유롭다.
다른 의견도 한 번쯤은 들어볼 수 있고,
조금 느린 선택도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결과가 나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과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조직의 언어는 서서히 달라진다.
불안은 말투를 먼저 바꾼다.

  • “지금은 속도가 중요해요.”

  • “일단 정리부터 합시다.”

  • “이건 위에서 결정할게요.”

이 말들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의 조직 상황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처럼 들린다.

문제는 이 언어가 임시 처방이 아니라,

조직의 기본 말투가 될 때다.

이 말들이 반복되면

조직은 조금씩 이런 메시지를 학습하게 된다.

지금은 질문보다 실행이 우선이고,
다른 의견보다 정렬이 더 중요하며,
판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안전하다.

그 순간부터 조직은

‘말하는 조직’에서 ‘따르는 조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규정이나 제도보다 훨씬 먼저,
사람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회의는 계속 열리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줄어들고,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점점 더 짧은 대답만 돌아온다.

“괜찮아요.”
“그 방향으로 가죠.”
“이미 결정된 거라면 따르겠습니다.”

조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말하려는 에너지는 조용히 빠져나가고 있다.

이때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조직의 분위기를 정확히 읽은 결과다.

사람들은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이 조직에서는 말을 보태는 것보다

말을 아끼는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HR이 먼저 봐야 할 건 ‘조용함의 의미’다

이 지점에서 HR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HR의 일은 조직을 항상 활기차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든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HR은 조직이 지금 어떤 행동을
조용히 가르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역할에 가깝다.

  • 지금 이 조직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조용한 사람 중 누가 더 편안해 보이는가?

  • 문제를 제기한 뒤 그 사람의 일이 쉬워졌는가, 더 어려워졌는가?

  • “괜찮아요”라는 말이 진짜 괜찮음인지, 아니면 판단의 종료인지.

조직이 조용해졌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조직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조용해졌다고 끝난 건 아니다

사람은 떠나기 전에 조용해진다.
하지만 모든 침묵이 곧 퇴사는 아니다.

조용해졌다는 건,
아직 관계가 남아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직 조직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조직은 저절로 다시 말이 많아지지 않는다.

말해도 괜찮다는 신호는
말이 아니라 결정과 선택으로 보여줘야 한다.
다른 의견이 실제로 존중받는 장면이

한 번, 두 번 쌓여야 한다.

조직문화는 직원들에게 “말해도 돼”라고 설득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말한 이후의 결과를 통해 학습된다.

열심히 한 사람이 다시 말하기 시작할 때는 그 사람이 변해서가 아니다.
조직이 무엇을 중요하게 선택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을 때다.

그래서 성과가 흔들리고, 팀이 조용해진 시기라면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이렇게 묻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계속 잘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회의실의 결정으로,

리더의 선택으로, 하나씩 쌓이기 시작할 때

조직문화는 누군가에게 “말해도 된다”고 허락받아서가 아니라,
말해도 괜찮았던 경험이 반복되면서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승란
이승란
미니멀을 지향하지만, 쉽게 비워지지 않는 사람.
사람의 경험을 살피고, 조직이 더 나아질 질문을 만드는 HR

댓글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오프피스트 | 대표이사 윤용운
서울특별시 서초구 사임당로8길 13, 4층 402-엘179호(서초동, 제일빌딩)
사업자등록번호: 347-87-03493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25-서울서초-2362호
전화: 02-6339-1015 | 이메일: help@offpiste.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