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는 혼자였습니다 _ Leadership Pathfinder

오디세우스는 혼자였습니다 _ Leadership Pathfinder

리더십은 자신의 스토리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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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ODISTAug 18, 2026
2827

책상 위에 탁상달력이 하나 있습니다. 몇 달째 무심히 넘기던 페이지였습니다.

리더십은 자신의 스토리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구현하려 하는가?

우리는 어떤 장애와 난관을 마주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가?

 

그런데 지난주 172분짜리 영화를 보고 사무실에 돌아와 앉았더니, 이 페이지가 갑자기 다르게 읽혔습니다.

감독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리더십 강의에 가장 자주 소환되는 이름입니다. 트로이 목마를 설계한 지략가, 천 가지 꾀를 가진 사나이, 10년의 표류를 견디고 끝내 이타카로 돌아온 불굴의 인물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계속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배 열두척을 이끌고 트로이를 떠났습니다.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배는 없었고 부하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떤 팀장이 3년짜리 프로젝트를 끝내고 이렇게 보고한다면 어떨까요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다만 팀원은 전원 퇴사했습니다."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3천 년째 영웅입니다. 왜일까 아마 우리가 리더의 스토리만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이렌 장면에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습니다.

그리고 자기 몸은 돛대에 묶게 합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도 듣고 살아남지 못한 노래를 듣습니다. 부하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노를 젓습니다. 나도 이 장면을 자기통제와 사전설계의 사례로 써먹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은 다른 게 보였습니다. 그 배에서 의미를 경험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는 것!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임원 워크숍에서 이틀 동안 전략을 논의합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가 오가고 마지막 날 오후에는 다들 눈빛이 달라져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음 주 월요일에 12장짜리 요약본으로 실무자에게 내려갑니다. 임원은 노래를 들었고 구성원은 귀에 밀랍을 채운 채 노를 젓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실행력이 안 나오죠? 라고 묻는다.

놀란이 스크린에 옮긴 장면들, 화가들은 수백년 전부터 그리고 있었습니다 🎨 폴리페모스의 동굴부터 키르케, 세이렌, 페넬로페까지 《 오디세이》는 서양 미술의 거대한 이미지 원전이었는데요. 고대 로마의 프레스코부터 르네상스, 터너와 워터하우스까지 같은 이야기는 ...

 

더 아픈 장면은 아이올로스의 바람 자루입니다.

바람의 신은 오디세우스에게 자루 하나를 줍니다. 그 안에는 역풍이 전부 봉인되어 있습니다. 순풍만 남겨두고요. 배는 아흐레를 순조롭게 달립니다. 열흘째 되는 날, 마침내 이타카의 해변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피워 놓은 불빛까지 보일 만큼 가까웠습니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잠이 듭니다. 그리고 부하들이 자루를 엽니다. 저 안에 왕이 혼자 챙긴 보물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봉인이 풀리고 배는 열흘을 되돌아가 다시 망망대해로 밀려납니다. 여기서 부하들을 탓하기는 쉽습니다. 탐욕, 불복종, 낮은 조직몰입도, 하지만 저는 이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열흘 동안 그는 왜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을까요? 그 자루가 무엇인지, 왜 열면 안 되는지, 지금 우리가 왜 이 항로로 가고 있는지. 한마디만 했으면 됐습니다. 부하들이 자루를 연 건 보물이 탐나서가 아니라, 열흘 동안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명이 없는 자리는 의심이 채웁니다.

몇 해 전 조직개편 프로젝트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보안을 이유로 발표 사흘 전까지 논의를 완전히 닫아두었던 곳입니다. 설계는 정교했습니다. 발표 당일 아침 공지가 나갔고, 그날 오후부터 회사 전체가 술렁였습니다. 석 달 뒤 핵심 인력 몇 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퇴사 면담에서 나온 말은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신 겁니까"였습니다. 이타카가 보이는 지점에서 배는 그렇게 되돌아갑니다.

 

달력의 네 문장을 다시 봅니다. 이번에는 주어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구현하려 하는가, 우리는 어떤 난관을 마주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가, 네 문장 모두 주어가 '우리'입니다.

오디세우스에게도 답은 다 있었습니다. 다만 그의 주어는 전부 '나'였습니다. 나는 이타카의 왕이다. 나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마주하고 있다. 나는 꾀로 이를 돌파한다. 빈틈없는 서사입니다. 그리고 그 서사 어디에도 부하들의 자리는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이타카는 그들의 집이 아니었으니까요.

리더가 가장 자주 하는 착각이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목적지가 곧 모두의 목적지라고 믿는 것 우리는 이걸 목표 정렬이라고 부르지만 현장에서는 훨씬 단순한 말로 들립니다. "팀장님 목표는 있는데, 제 목표는 없어요."

 

문장을 다시 읽어봅니다. "스토리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는 것이다."

전달이 아니라 '심는다'입니다. 심는다는 건 내 손을 떠나보내는 일입니다. 씨앗은 다른 땅에서 다른 속도로 종종 내가 상상하지 않은 모양으로 자랍니다. 통제할 수도 없지요. 리더가 스토리를 잘 못 심는 이유는 말솜씨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은 손에서 놓지 못해서입니다.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 안에서 조금 다르게 자라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 다시 설명하고, 다시 정렬하고, 결국 자기 손에 쥔 채로 끝납니다.

 

조직개발이 할 일도 여기서 갈립니다. 리더의 스토리를 대신 예쁘게 써주는 게 아닙니다. 저 네 개의 질문을 리더 혼자 답하지 않아도 되는 판을 만드는 일입니다. 구성원이 '우리는 누구인가'에 자기 문장을 한 줄 보탤 수 있는 자리가 있는가? 그게 있으면 스토리는 심어지고 없으면 매년 하달됩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오디세우스가 아니었습니다.

텔레마코스였습니다.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이 스무 해를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배를 띄웁니다. 그동안 페넬로페는 매일 밤 짜던 천을 다시 풀며 그 이야기를 지켰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진짜 성공은 이타카에 도착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없는 20년 동안 자기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 안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 성공입니다.

리더가 그 자리에 없을 때 남아 있는 것 그게 심어진 이야기입니다.

회의실 문을 닫고 나온 뒤에도 팀원들 사이에서 그 이야기가 자기들 말로 다시 이야기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리더가 있는 자리에서만 존재합니까?

 

저는 아직 달력을 못 넘기고 있습니다.

 


ST
김민조 ODIST
개인개발은 결국 조직개발로 나아가야 한다는 조직설계자
개인개발은 결국 조직개발로 나아가야 한다는 자율을 위한 기준 설계, 성장을 위한 나침반 구조를 조직시스템을 설계하여 작동하는 조직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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