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슬픈 엔딩이라는 디지몬어드벤처 마지막 에피소드를 아십니까?
저는 디지몬 세대는 아닙니다만 (저는 그랑죠 세대죠), 마지막 장면만 보고도 뜬눈에 눈물이 나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들이 어른이 되어가며 자신의 길(직업)을 결정하는 순간, 그토록 소중했던 파트너 디지몬들은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디지몬 세계에서 디지몬은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 예술가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순간 모험가의 가능성이 흐릿해집니다. 커리어라는 여정에서 우리는 전문성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하나의 정답 안에 가두며 성장해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증명해 줄 수많은 나비효과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입니다. 사회인이 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정의하죠.
그 확신이 깊어질수록, 우리 곁을 지키던 무한한 가능성과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저는 13년의 커리어 동안 이 감각을 수차례 느꼈습니다. POSCO International에서 글로벌 HR 정책을 설계하고, TikTok에서 APAC 세일즈 교육을 총괄하면서, 그리고 Penn State에서 HR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도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넓은 세상을 보지 않았을까?
이 질문은 후회가 아닙니다. 선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입니다.
잠깐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포기한 가능성들은 정말로 사라진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는 집요함에는 호기심이라는 디지몬이, 실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에는 용기라는 디지몬이, 동료와 함께 성과를 만들어내는 협업에는 우정이라는 디지몬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그 길 안으로 스며든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TikTok에서 세일즈 교육 프로그램 The TikTok Way of Selling을 개발할 때, 그 안에는 단순한 HR 전문성만이 아니라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꿈, 작가가 되고 싶었던 열망, 스포츠 선수처럼 팀을 이끌고 싶었던 에너지가 모두 녹아 있었습니다. 선택은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통합이었습니다.
HR 교육자로서 저는 수많은 분들이 커리어의 교차로에서 두려움에 멈추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 길을 택하면 저 길은 영영 사라지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디지몬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선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이전까지 쌓아온 모든 경험과 가능성 위에 세워집니다. 커리어는 직선이 아닙니다. 나선형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 더 높은 층위에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겁니다.
첫째, 자신이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들을 목록으로 써보세요. 그리고 지금 하는 일 속에서 그 가능성들이 어떤 형태로 살아있는지 찾아보세요.
둘째, 커리어의 선택을 무엇을 잃었나가 아닌 무엇을 통합했나의 관점으로 재해석해보세요. 이것이 진정한 전문성의 깊이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셋째, 새로운 선택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떤 길을 택하든,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자체가 그 길을 특별하게 만들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은, 수만 가지의 나를 포기하면서까지 지켜낸 가장 소중한 단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던 가능성은 사라졌을지라도, 당신의 커리어 마디마디에는 그때의 그 무한한 에너지가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자신의 가능성을 좁혀가며 치열하게 전문성을 쌓아가는 모든 직장인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된 선택받은 아이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