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에 물건 하나를 결제했습니다.
필요해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잠들기 전에 화면을 넘기다가 봤고 며칠을 미루다가 결국 눌렀습니다.
이틀 뒤에 상자가 왔습니다 물건은 사진과 똑같았습니다 문제는 물건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상자를 열었을 때 저는 이틀 전만큼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순서는 반대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기억합니다 필요했고 그래서 찾았고 마침 좋은 것이 있었다고요
저도 그렇게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순서를 되짚어보면 반대입니다.
봤고 그다음에 이유를 만들었습니다 결핍이 시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시선이 결핍을 만들었습니다.
보기 전까지 없어도 됐던 것이 보고 난 뒤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을 뿐입니다.
기독교 성경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 직역하면 눈의 욕망 혹은 눈의 욕심 일 것 같습니다.
눈이 판단보다 먼저 도착한다는 관찰을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표현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이유는 우리말의 안목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목이 높다는 말을 칭찬으로 씁니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능력이라는 뜻으로요..
그런데 이 문장에서는 안목에 정욕이 붙어 있습니다 같은 봄인데 하나는 분별이고 하나는 탐욕입니다.
그 사이의 어디쯤에서 갈라지는 것인지가 저는 궁금했습니다
과거 모시던 대표님께서 어느날 조찬 모임을 다녀오신
그 주에 조직개편 안을 말씀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회사가 무슨 제도를 도입해서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신 겁니다.
그 자리에 계셨던 다른 분들도 아마 각자의 회사로 같은 이야기를 들고 돌아가셨을 겁니다.
인사 일을 몇 년 하신 분이라면 비슷한 장면을 하나쯤 가지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그 개편안을 실제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우리라는 것도 아실 겁니다..
개인이 밤에 화면을 넘기는 것과 조직이 조찬 자리에서
남의 사례를 듣는 것은 규모만 다를 뿐 구조가 같습니다.
다만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결과도 다릅니다
개인의 안목의 정욕은 카드값으로 끝나지만 조직의 안목의 정욕은 사람들의 자리로 끝이 납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우리는 능력의 문제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분수라는 말은 나눌 분에 셈 수입니다
자기 몫의 크기를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반대로 안목의 정욕은 계산 이전에 이미 결정이 끝나 있는 상태입니다
복사되지 않는 것.. 남의 성공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하나입니다
눈은 결과만 가져옵니다 조건은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 회사에서 그 제도가 작동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전에 쌓인 신뢰가 있고 그것을 감당할 관리자 층이 있었을 것이고
몇 번의 실패를 거쳐 다듬어진 시간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조찬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결과뿐입니다
삼십 분짜리 발표에 실패한 몇 년은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가져온 것은 잘된 제도이고 가져오지 못한 것은 그 제도를 지탱한 조건 전부입니다.
채용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눈에 띄는 이력서가 있습니다.
화려한 경력이 있고 아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경력이 만들어진 조건이 우리 조직에도 있는지는 그다음 문제로 밀립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뽑고도 실패하는 채용이 생깁니다
그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만든 조건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까지 보았는가?
그러니 분별과 정욕의 차이는 무엇을 보느냐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까지 보느냐에 있지 않을까요?
결과까지만 보면 정욕이고 조건까지 보면 안목입니다
잘된 제도만 보면 정욕이고 그 제도가 버텨낸 시간까지 보면 안목입니다.
화려한 이력서만 보면 정욕이고 그 이력이 자란 토양까지 보면 안목일 겁니다.
보지말고 눈을 감으라는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 볼 것이고 계속 부러워할 것입니다 부러움은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결정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물으면 됩니다.
저것은 어떤 조건 위에 서 있는가?
그 조건 중에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이고 갖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그 한 가지를 더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개 며칠입니다
며칠을 더 본 뒤에도 여전히 하고 싶다면 그때는 해도 됩니다.
며칠 사이에 사라지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필요가 아니라 시선이었을 뿐일 겁니다
제가 그 날 그 택배 상자를 열면서 배운 것은 이 것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