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이다.”
— J. 크리슈나무르티
우리는 회사에서 ‘대화’를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판단과 처방을 빠르게 주고받는 데 더 익숙하다.
“왜 그렇게 했어요?”
“이건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요”
“저 사람은 너무 예민해”
위의 말들은 회사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들이다. 뱉는 사람은 무의식이겠지만, 상대의 마음에는 판정문처럼 떨어진다. 이 순간부터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방어전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회사에서 대화가 꼬이는 순간은 대개 상사 혹은 유관부서 사람들에게 ‘팩트 폭격’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팩트 앞뒤에 붙는 평가 때문이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는 마셜 로젠버그가 정리한 커뮤니케이션 접근으로, 핵심은 공감을 회복하도록 언어를 재구성하는 데 있다. NVC는 특히 관찰–느낌–욕구–요청(OFNR)의 4요소를 강조한다.
나는 AI를 연구하는 조직에서 조직문화와 육성 업무를 맡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직에서 리더와 구성원들의 대화를 볼 때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축적한 데이터로 만든 파인튜닝된 내부 모델로 보는 것 같다.
예전 회의에서의 반응, 메신저 톤, 일정 지연의 기억, 보고서 스타일이 누적되면 머릿속에는 그 사람의 “예측 가능한 프로필”이 생긴다. 그리고 다음 대화에서 우리는 그 모델로 빠르게 추론(inference)한다. 문제는 추론이 빨라질수록 사람은 관찰하기보다 라벨링(Labeling)을 먼저 해버린다는 점이다.
“무책임한 사람”
“회신이 느린 사람”
“일을 방어적으로 하는 팀”
“권위적인 리더”
이건 어찌보면 잘 튜닝된 자신만의 모델의 출력값이다. 그리고 라벨이 붙는 순간 관찰은 줄어들고 편향은 커진다. AI가 불완전한 입력을 그럴듯하게 채우며 환각(hallucination)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도 피곤하거나 불안할 때 상대의 의도를 “추정”해서 hallucination으로 채워 넣는다.

조직에서 폭력적 대화는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형태가 아니다. 말의 구조로 등장한다.
도덕적 판단(꼬리표): “게을러”, “저 사람은 무책임해”, “저 사람은 권위적이야”
강요(Demand):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거 언제까지 하세요”
당연시/상벌 정당화: “벌 받아 마땅해”, “리더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책임 부인: “규정이라 어쩔 수 없어”, “윗선이 시켜서”
비교: “다른 팀은…”, “다른 리더는…”
이 말들의 공통점은 관찰이 아니라 평가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평가의 기준은 ‘나’이므로, 내 기준에 닿지 않는 순간 상대는 ‘기준 미달’로 느껴지기 쉽다. 사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도 여기 있다. 내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내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사람과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렇게 평가로 대화가 시작되면 사람은 이해하기보다 반격하고 방어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되고,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비폭력 대화는 ‘착한 말’이 아니라 대화의 오류를 줄이는 구조다. NVC는 평가 대신 관찰을, 강요 대신 요청을, 방어 대신 연결을 설계한다.
회사 대화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시간이 없고, 불확실성이 크고, 평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장면도 내 상태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상황 A(여유 없음): 오늘 보고에서 직속임원에게 크게 깨지고 팀원과도 충돌했다. 저녁밥도 못 먹고 밤 9시에 집에 갔더니 집은 어수선하고 배우자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이다. 중학교 1학년 자녀는 밥도 안 먹고 게임을 2시간째 하고 있었다. 그때 배우자가 집에 들어왔다. 당신은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먼저 할까?
상황 B(여유 있음): 오늘 일도 너무 잘 풀리고직속임원에게 칭찬도 받았다. 미팅도 만족스럽고, 그동안 막힌 일도 실마리를 얻었다. 그런데 집에 오니 배우자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아이는 밥도 안 먹고 게임을 2시간째 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배우자가 집에 들어왔다. 당신은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먼저 할까?
상상하겠지만 A와 B에서 내가 뱉는 말은 달랐을 것이다. 내 마음의 여유가 다르니 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회사도 똑같다.
나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우리는 “정답”을 말한다. 그 정답이 폭력이 되기 쉽다.
나의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상황”을 묻는다. 그때 대화는 연결이 된다.
리더가 마감이 코앞인 바쁜 시즌에 “왜 아직도 안 됐어?”라고 던지는 말은, 대개 업무 팩트보다 정서적 압박을 먼저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NVC는 대화 이전에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을 출발점으로 둔다.
이 부분이 NVC의 가장 핵심이다.
NVC의 핵심은 이 순서다.
관찰(Observation): 평가 없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본다.
느낌(Feeling):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인지” 확인한다.
욕구(Needs): 그 감정 아래 어떤 필요가 있는지 살펴본다.
요청(Request): 상대가 해줄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요청한다.
예를 들어 “납기가 늦었다”는 팩트가 있을 때,
(기존) “왜 보고 자료 작성이 늦었어요? 이해가 안 되네요.”
(NVC) “납기가 2일 지연된 걸 확인했어요(관찰). 저는 일정이 흔들릴까 봐 걱정돼요(느낌). 우리 팀이 예측 가능성을 지키는 게 중요해서요(욕구). 지금 어떤 장애가 있었는지 공유해주고, 다음 업데이트 타이밍을 같이 정할 수 있을까요?(요청)”
핵심은 팩트를 버리자는 게 아니라, 팩트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정보(느낌/욕구)를 함께 싣는 것이다.
요즘 리더들 중에는 “구성원에게 솔직하게 피드백을 줬는데, 이후 팀원들이 불편해하고 나를 피하는 것 같다”거나, “피드백 후에 팀원이 화를 냈다”는 경험을 하는 분들이 있다. 리더 입장에서는 ‘정확하게 말해줘야 성장한다’는 선의를 갖고 한 말인데, 관계가 갑자기 얼어붙는 순간이 생긴다.
실리콘밸리 리더십을 다룬 책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원제 Radical Candor)에서는 Radical Candor를 한국어판에서 ‘지독한 솔직함’으로 번역해 소개한다. 여기서 말하는 요지는 ‘솔직함’ 자체가 아니라, 성장을 위해 필요한 피드백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이 메시지를 그대로 실행으로 옮길 때 많은 조직에서 문제가 생긴다. 피드백이라는 명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