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변화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가?

우리는 왜 변화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가?

행동은 습관을 바꾸지만, 정체성은 삶을 바꾼다
조직문화HRBP코칭리더십리더임원CEO
혜담
코치혜담Sep 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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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변화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가?

― 행동은 습관을 바꾸지만, 정체성은 삶을 바꾼다

3분기가 저물어 갈 무렵이면, 사람들은 지나온 아홉 달을 돌아보며 저마다 다짐을 고쳐 씁니다. 흐트러진 습관을 다잡고, 미뤄둔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소홀했던 관계를 챙기고, 남은 한 분기만큼은 더 나은 리더가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조직도 다르지 않습니다. 4분기 목표를 새로 세우고, AI 도입을 가속하고, 조직문화를 혁신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연말이 가까워지면 대부분은 다시 처음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 있습니다. 다잡았던 습관은 흐지부지되고, 회의는 예전의 방식을 되찾고, 조직문화는 다시 이전의 관성 속으로 스며듭니다.

왜일까요.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행동을 바꾸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은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클리어는 『Atomic Habits』에서 행동은 목표가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을 따라간다고 말합니다. "살을 빼야지"라는 목표보다 "나는 건강을 돌보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이 행동을 더 오래 지탱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목표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라고 믿는지를 반복할 뿐입니다. 이 원리는 조직에도 그대로 겹쳐집니다. "우리는 혁신하는 조직이다"라는 슬로건보다,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는 조직이다"라는 정체성이 문화를 더 오래, 더 깊이 빚어냅니다.

그러나 정체성의 언어만으로는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정체성이 바뀌려면, 그 정체성을 담아내는 그릇 자체가 먼저 넓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밥 앤더슨(Bob Anderson)은 『Mastering Leadership』과 Leadership Circle Profile을 통해 이 지점을 수평적 성장(Horizontal Development)수직적 성장(Vertical Development)으로 구분합니다. 수평적 성장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쌓는 일이라면, 수직적 성장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체가 다시 짜이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성과를 위해 사람을 관리했다면, 수직적 성장을 통과한 리더는 사람의 성장이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갈등을 피해야 할 문제로 여겼다면, 이제는 갈등이야말로 새로운 학습이 시작되는 자리임을 알아차립니다. 리더십써클(LCP)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도구는 리더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식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비추어 줍니다. 변화는 결국 행동보다 먼저, 관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점은 어디에서 넓어지는가. 게슈탈트 치료는 이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건넵니다. 사람은 미래를 계획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지금, 그리고 여기(Here and Now)'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현재의 몸으로 경험하고, 미래를 걱정하지만 결국 지금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게슈탈트는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먼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왜 나는 또 이렇게 반응했을까"보다 "지금 내 안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그만큼 넓은 선택의 여지가 열립니다.

바로 이 알아차림의 문턱에서, 비온(Wilfred Bion)의 사유는 한층 더 깊은 자리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비온은 인간이 불확실성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의미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그 견디기 힘든 공백 앞에서, 사람은 서둘러 익숙한 해석과 즉각적인 반응 속으로 도망칩니다. 확신을 가장한 성급한 결론이야말로 불확실성에 대한 가장 흔한 도피처입니다. 그러나 비온은 바로 그 견딜 수 없는 공백,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어둠 속에서만 진짜 새로운 의미가 자라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역설적인 순간을 '흑암에 비추는 빛줄기(a ray of darkness)'라는 이미지로 그려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빛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선명하게 비출 뿐이지만, 흑암의 빛줄기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 개념과 언어가 아직 가닿지 못한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빛입니다. 지식으로 채워진 빛이 아니라, 무지를 무릅쓰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의 시선입니다.

리더에게 이것은 단순한 은유 이상의 요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확실성 앞에서 견디지 못하고 낯익은 반응으로 후퇴하지만, 리더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리더는 즉각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의미가 되지 못한 것이 스스로 태어날 시간을 허락하는 사람입니다. 질문을 던져놓고 그 질문이 자리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침묵을 성급히 메우지 않는 것, 모른다는 상태를 무능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것이 비온이 말한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에 가까운 태도이며, 흑암의 빛줄기를 따라가는 리더의 자세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두려움과 평가에 떠밀려 움직이는 반응성의 원(Reactive Circle)에서, 목적과 의미로부터 움직이는 창의성의 원(Creative Circle)으로 서서히 건너가기 시작합니다. 리더십써클이 그려내는 성장의 궤적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외부의 시선과 두려움에 반응하던 리더에서, 스스로 발견한 의미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창조적 리더로의 이행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각성은, 그것이 아무리 깊다 해도, 조직 전체를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직은 개인들의 총합이 아니라 맥락(Context)이 빚어낸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자신이 속한 구조를 서서히 닮아갑니다. 회의가 진행되는 방식, 피드백이 오가는 문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안전감—이 모든 맥락이 사람의 행동을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반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짜 변화는 사람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맥락을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리더 혼자 성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팀이 함께 멈추어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실수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며, AI를 활용하더라도 사람이 먼저 사유할 수 있는 시간만큼은 지켜져야 합니다. 정체성은 개인의 것이지만, 문화는 반복되는 맥락이 남긴 흔적입니다.

결국 변화는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행동에서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존재(Being)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팀인가. 우리는 어떤 조직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이 달라질 때 비로소 행동이 달라지고, 그 행동이 반복될 때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달라질 수 있는 맥락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을 리더십의 본질입니다.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관계 속에서 배우고, 맥락 속에서 성장하며, 정체성 속에서 변화합니다. 우리가 진짜 바꾸어야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낳는 존재와 맥락입니다.

"변화는 더 많은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더 깊은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살아낼 수 있는 맥락을 함께 설계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됩니다."


혜담
코치혜담
Conerstone Coaching Lab
삼성전자, GE, SKT, 피에스앤마케팅과 같은 회사에서 리더십, 조직개발,코치육성,마케팅영업교육과 같은 업무를 해오고 있으며 한국형리더십코칭을말라하다(2023)외 ESG2050(2023등의 공저자이자 경영, HR컬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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