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채인이라는 말
얼마 전 유럽에 있는 한 한국 기업 법인에서 일하는 한국인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며칠 뒤에 회식으로 좋은 식당에 가는데, 저는 빠진대요. 회사에서 회식비가 주재원에게만 인당 지원된대요. 5명 팀원 중에 주재원 4명만 가요. 꼭 가고 싶었던 건 아니고 굳이 저녁을 같이 먹고 싶은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별거 아닌데 먹는 걸로 그러니까 좀 서운하더라고요."
HR 하는 사람으로서 듣고 보니 조금 묘했다. 회식에서 제외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시 중요하면서도 애매한 포지션이 현지 채용된 한국인인 것 같다. 업무를 할 때는 누구보다 한국인으로 여겨진다. 한국 본사와 소통해야 하고, 한국어 문서를 검토해야 하고, 한국 시간에 맞춰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기대된다. 그런데 복지나 지원, 소속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현채인이 된다. 물론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건, 이런 현지 채용된 한국인들 중 일부는 해외에서 대학 졸업하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중반의 어린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에게는 이런 이중 기준이 너무 아프게 다가오는것 같아서. 이들에게는 그 회사가 첫 직장인데, 첫 회사에서의 경험이 "나는 항상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으로 남게 되는 부분이 참 아쉽다.
원래는 중립적인 용어였다
Local Hire라는 표현 자체는 특별한 차별적 의미가 있는 용어가 아니다. 글로벌 모빌리티 영역에서는 지금도 흔히 사용하는 이론적 구분이다.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Expatriate, 주재원)과 현지 법인에서 채용된 직원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다. 급여 체계, 주거지원, 학비 등 모빌리티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된 '현지채용인', 그리고 줄여서 부르는 '현채인'이라는 표현은 때때로 채용 경로, 계약방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구분된다
사회심리학의 사회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은 사람들이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헨리 타지펠(Henri Tajfel)의 유명한 실험도 있다. 참가자들을 클레와 칸딘스키 중 어느 화가의 그림을 더 좋아하는지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림 취향 말고는 아무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같은 그룹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배분했다. 그림 취향처럼 별 의미 없는 기준만으로도 사람들은 집단을 만들고 구분하기 시작한다. 본사와 현지, 주재원과 현지채용처럼 실제 조직 안에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구분이라면 그 영향은 훨씬 클 수 있다.
같은 사람을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게 될 때
유럽에서 일하면서 만난 한국 국적의 현지채용자들은 종종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한국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대받고, 한국식 업무 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현지 직원들에게 하지 않는 기대치가 한국 국적 직원들에게만 적용되기도 한다. 업무 방식이나 근무시간, 때로는 외모와 복장에 대한 기준까지 포함해서.
인터넷에서 글로벌 교육 업체 광고에서 현채인 육성이라는 표현을 보면 가끔 생각하게 된다. 10년 전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표현인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보면 대개 직급, 역할, 리더십 단계, 전문가 트랙 등을 기준으로 운영한다. 반면 현채인 육성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역할보다 채용 경로를 먼저 기준으로 삼는다.
이제는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나는 과도한 Political Correctness를 선호하지 않는다. 인어공주를 아프리카계 배우가 연기하거나 영국 드라마 브리저튼에 아시아 배우가 등장하는 것까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든 단어를 바꾸는 것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업들은 ESG와 DEI를 중요한 경영 어젠다로 이야기해 왔다.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고,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정작 조직 안에서 사람을 부르는 언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언어는 생각보다 힘이 크다. 어떤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원래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관리 용어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종업원이나 사원, 직원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구성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서 언어도 함께 변했다.
주재원과 현지채용의 계약 상 구분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를 주재원과 현채인으로 설명하거나 칭하는 것이 지금도 가장 적절한 방식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로벌 조직이 성숙할수록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도 조금씩 바뀐다. 국적보다 역할을, 채용 경로보다 역량을 먼저 보는 방향으로, 좀 더 포용적이고 중립적인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