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6년 9월 28일 유럽 인사 콘퍼런스 ‘Total Rewards Reloaded & ReThink HR 2026’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Festo는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약 2만 명이 근무하는 글로벌 산업 자동화 기업이다. 회사는 5년 주기로 글로벌 인사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2030 글로벌 인사 전략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는 인사의 디지털화였다. 그 일환으로 2023년부터 전 세계 조직에 SAP 기반 연봉 인상 관리 모듈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EMEA HR을 총괄하는 동시에 Global HR Strategy Board 멤버로 글로벌 HR 전략 수립과 실행 방향을 논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 운영의 현실과 글로벌 표준화의 방향이 만나는 접점에 있었기에 이 프로젝트를 초기 단계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연봉인상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는 IT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공정성의 기준, 인사 거버넌스,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 더 나아가 글로벌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정립하는 종합적인 조직 변화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I. 표준화라는 착시
우리 회사는 글로벌 인사 체계를 구축한 지 10년이 넘었다. 2011년부터 글로벌 성과관리, 인재 육성 절차, 글로벌 보상관리 지침과 연봉 조정 절차, 글로벌 직무 체계, 공통 직무평가 방법론, 전 세계 모든 직무에 대한 표준 직무 프로파일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인사 자료들은 sharepoint에 공개되어 있고 모든 HR이 사용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글로벌 프로젝트팀은 각국 인사 리더들에게 글로벌 절차의 준수 여부, 현지의 실제 운영 방식, 연봉 인상 결정 기준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했다.
각국 인사 리더들의 답변은 비슷했다.
“글로벌 절차와 동일하게 운영합니다.”
“성과와 시장 내 연봉 수준을 조합해 연봉 인상률을 결정합니다.”
답변만 놓고 보면 각국의 운영 방식은 이미 충분히 정렬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시스템 모듈을 설계하는 단계에 들어서자 같은 용어 뒤에 가려져 있던 현장의 차이가 드러났다.
‘성과’의 정의가 달랐다
A 지역에서는 핵심성과지표 결과에 역량 평가를 더한 뒤, 전사 조정 과정을 거친 결과를 성과로 정의했다. B 지역에서는 핵심성과지표와 역량 평가 결과에 해당 직원의 이직 가능성과 핵심 인재 여부까지 반영했다. C 지역에서는 역량 평가 결과에 관리자의 재량을 크게 반영했다.
모두 동일한 엑셀 양식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한 단계만 깊이 들어가 보니 각기 다른 계산 방식과 판단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성과라는 단어에 모두가 동의했지만, 그 안에 무엇을 포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되어 있지 않았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같은 기준으로 의사결정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연봉 인상 예산의 서로 다른 의미
예를 들어 동일하게 4.3%의 연봉 인상 예산을 배정받은 두 국가가 있다. 한 국가에서는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에 따라 전 직원에게 4.0%의 일괄 인상이 이미 보장되어 있었다. 성과에 따른 차등 인상에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은 0.3%에 불과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다른 국가에서는 4.3% 전체를 성과에 따른 차등 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표면적인 예산 수치는 동일하지만 관리자가 실제로 행사하는 재량권은 달랐다.
공정성에 대한 관점 차이
어떤 시장에서는 고성과자에게 더 큰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중국 시장에서는 성과 수준에 따라 인력을 30%, 60%, 10%로 구분하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다. 반면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직원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안정적인 결과를 유지하는 것을 공정성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각 시장이 가진 가치 체계 사이에서 글로벌 원칙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했다. 어느 한쪽의 방식을 모든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전 세계가 공유할 원칙과 현지에서 조정할 수 있는 범위를 구분해야 했다.
글로벌 인사 체계가 성숙할수록 본사 인사가 느끼는 정렬의 착시는 강해질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용어와 양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같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 쉽다. IT 시스템 도입을 통해 지역이 실제로 어떤 기준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II. 모호함을 배제하는 IT 시스템의 속성
평소 내 경영 원칙 중 하나는 “규칙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조직에는 늘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모든 상황을 문서화할 수 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기존에는 현장 리더와 HR 이 대화를 통해 그 빈틈을 메워왔다. IT 시스템은 그 회색지대에 대한 명확성을 요구한다.
연봉 인상 대상자는 정확히 누구인가?
관리자가 시스템의 추천 값을 변경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예외에 대한 최종 승인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누가 어느 범위까지 정보를 볼 수 있는가?
예산을 초과했을 때 누가 개입해야 하는가?
서로 다른 의사결정자가 충돌할 경우 누구의 판단이 우선하는가?
시스템은 필수 입력 항목을 통해 그동안 대화와 관행으로 다루던 질문에 분명한 답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명시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던 정책과 거버넌스, 책임 소재를 하나씩 정리해야 했다.
많은 기업이 IT 프로젝트를 기술 과제로 접근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직의 의사결정 체계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가깝다. 시스템은 조직이 이미 가지고 있던 모호함을 가시화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리더십의 역할은 반드시 통일해야 할 원칙과 현장의 판단에 맡길 영역을 구분하고, 회색지대를 누가 책임 있게 판단할 것인지 정하는 데 있었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조직이 반드시 더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세밀한 규칙은 오히려 현장의 판단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예외를 만들어낼 수 있다.
III. 거버넌스의 재정의
권한과 정보 접근의 분리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는 비교적 단순했다. 지역 본부가 예산을 배분하고, 현지 인사팀이 검토를 준비하면, 현지 법인장이 최종 승인하는 방식이었다. 소수의 인원이 엑셀 파일 하나를 두고 협의했기 때문에 업무 접점이 단순했고 책임의 주체도 명확했다.
글로벌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본사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이 현지 직원들의 급여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기능 조직과 지역 조직의 관리 체계가 교차하는 복잡한 매트릭스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글로벌 기능 리더는 글로벌 차원의 우선순위가 급여 결정에 반영되기를 원했다. 글로벌 보상팀은 글로벌 기준이 제대로 준수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글로벌 기능 담당 인사 비즈니스 파트너는 글로벌 기능 리더의 요구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해 시스템 접근 권한을 요청했다.
관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감한 개인 급여 정보에 접근할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보에 대한 관심과 실제 의사결정 권한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거버넌스 원칙을 세웠다. 특히 ‘볼 수 있는 권한’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구분했다.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더 큰 결정권을 갖는 것은 아니며, 글로벌 책임을 가진 리더라고 해서 모든 지역의 개인별 급여 정보에 접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아래 질문에 대한 논의에 사용했다.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의견을 제공하는가?
누가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책임지는가?
IV. HR의 변화
관리자 오너십을 지원하는 파트너십
연봉 인상 결정을 IT 시스템에서 진행하게 되면서 관리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시스템은 인사가 사전에 입력한 추천 값, 성과 조정 도구, 분석 자료 화면과 예산 현황을 제공한다. 그러나 각 숫자가 직원의 처우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해석하고, 구성원 간 차등을 결정하며, 그 결과를 직원에게 설명하는 책임은 관리자의 몫이다.
보상 결정에 대한 설명과 책임이 관리자에게 이관되면서 HR의 역할도 달라졌다. HR은 관리자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기보다, 관리자가 데이터에 근거해 자신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량 강화 파트너로 전환했다. 의사결정 지침과 직원 소통 자료를 제공하고, 실제 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시뮬레이션) 환경을 운영했다. 그러나 교육을 제공하고 지침을 배포하는 것만으로 관리자의 행동이 바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리더들이 실제로 보상 결정의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기까지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일부 조직에서는 시스템 도입 이후에도 현업 관리자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아 상위 조직장과 HR이 급여 결정을 대신해야 했다.
리더십 전환에는 학습할 시간과 실수할 여지,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효율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조직의 리더십 역량을 높이는 데 필요한 투자였다.
V. 글로벌 HR 리더가 얻은 세 가지 교훈
1. 표준화의 핵심은 의사결정 원칙과 논리다
프로세스의 표준화는 쉽다. 의사 결정 로직의 표준화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어떤 원칙에 따라 결정하며, 예외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공유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2. 용어보다 구체적인 정의가 먼저다
같은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실제 산출 방식과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성과’, ‘공정성’, ‘시장 수준’, ‘관리자 재량’과 같은 표현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무엇을 포함하고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며, 의사결정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둘 것인지까지 합의되어야 실제 운영 기준이 된다. 시스템의 입력 항목을 설정하기 전에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글로벌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합의를 서두르기보다 각 지역이 같은 용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3. 보상 시스템의 변화는 리더십 전환을 요구한다
시스템의 변화는 조직 전체의 변화관리 과정이다. 특히 HR 관련 시스템은 HR 도 변화에 적응해야 했고, 리더들도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결론: 결국은 리더십과 조직문화!
컴펜세이션 트랜스포메이션, 즉 보상 체계의 전환은 본질적으로 선택과 책임, 그리고 신뢰에 관한 과제였다.
시스템을 통해 얻게 된 가장 중요한 결과도 새로운 기능이나 더 많은 데이터에만 있지 않았다. 누가 선택할 것인지, 누가 설명할 것인지, 누가 그 결과를 책임질 것인지가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회사에 대한 신뢰는 리더가 어떤 원칙으로 결정했는지 설명할 수 있고, 그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며,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쌓인다. 연봉인상 IT시스템 도입 프로젝트는 사실은 리더십과 신뢰에 대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결정들이 쌓여서 장기적으로는 조직문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