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도입을 '인력 대체'로 해석한 조직과 '일의 구조 재설계'로 접근한 조직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했다. 두 기업의 선택을 통해 AI 시대에 조직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빠른 속도로 AI가 개인의 업무에 연결되면서, 개인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조직은 이 생산성 향상을 ‘업무 수행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력 규모 조정의 기회’로 해석하고 있다. AI가 사람이 하던 일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사람을 줄이면 된다는 접근이다.
이러한 해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기업이 스웨덴 핀테크 (Fintech: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 기업이자, 유럽의 페이팔이라고 불리는 클라르나(Klarna)이다. 실제로 유럽의 젊은 층 사이에서 BNPL (Buy Now Pay Later: 선구매 후결제)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총 사용자가 1억명이 넘는다. 2024년 2월, 클라르나는 ‘AI 챗봇이 단 한 달 만에 월 230만 건의 고객 상담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 업무량은 기존에 700명의 고객 서비스 직원이 담당하던 수준이었고, 연간 약 1천만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발표했다. 클라르나의 CEO는 "AI는 이제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¹⁾고까지 선언했다.
이 선언은 곧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클라르나는 신규 채용을 1년간 전면 중단했고, 전체 직원 수는 5,500명에서 3,500명으로 줄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업무의 구조나 흐름을 재설계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사람이 수행하던 역할을 그대로 AI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워크플로우는 유지한 채 수행 주체만 바꾼 것이다.

AI 대체 이후 고객 불만이 빠르게 증가했다. AI는 고객의 질문에 여전히 답변했지만, 고객의 다양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환불 분쟁, 반복되는 오류, 감정적으로 격앙된 고객과 같은 맥락에서는 특히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AI는 동일한 패턴의 형식적인 응대를 반복했고, 고객들은 ‘로봇과 대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는 서비스 경험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심각해졌고, 결국 CEO는 2025년에 "비용 절감에만 너무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품질이 떨어졌다."²⁾ 라고 인정했다. 클라르나는 다시 채용을 시작했고, 복잡한 상담은 사람이, 단순 응대는 AI가 처리하는 구조로 되돌아갔다. 비용을 줄이려던 선택이, 결국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클라르나는 ‘업무’를 대체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포함된 ‘판단’을 함께 제거하고 있었다. AI는 상담을 이어갔지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더 이상 결정하지 못했다.
숙련된 상담 직원은 고객의 말 그대로가 아니라, 그 이면의 맥락을 읽는다. 규정에 없는 상황에서도 어디까지 재량을 발휘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반복되는 문의 속에서 진짜 불만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고객을 어떻게 진정시킬지에 대한 미묘한 대응 역시 경험 속에서 체득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매뉴얼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처럼 경험을 통해 축적되지만 명시적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지식을 암묵지(Tacit Knowledge: 언어나 문서로 전달하기 어려운, 경험을 통해 쌓인 조직의 지식)라고 한다. 문제는 이 암묵지가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이다. 직무기술서에도, 교육 자료에도 완전히 담기지 않는다. 오직 사람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발휘된다.
따라서 인력 감축은 단순히 ‘사람 수’의 감소가 아니다. 그 사람이 축적해온 판단 구조까지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클라르나가 700명을 줄였을 때, 조직은 바로 이 손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클라르나가 인원 감축을 진행하면서 추가로 발생한 문제는, AI를 감독하고 예외 상황을 판단할 인력까지 함께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고객 서비스 현장을 이해하는 인력이 감소했고, 챗봇이 처리하는 수많은 대화를 충분히 감독할 사람도 소수에 불과해졌다. 그 결과, AI의 오류를 적시에 발견하고 수정하는 것조차 점점 어려워졌다. 자동화가 역량을 줄이고, 줄어든 역량이 다시 자동화를 통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문제는 특정 기업의 실패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감독할 사람이 사라진 문제’처럼 보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AI 도입 과정에서 역할과 책임 구조가 함께 무너지는 현상이다. 특히 기존의 역할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인의 효율만 높이는 방식으로 AI를 도입할 경우, 이러한 문제는 조직 차원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 820명을 2년간 추적한 연구(2025)³⁾는 이러한 패턴을 보여준다. AI 도입 이후 개인 생산성은 향상됐지만, 협업과 책임 분담과 관련된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개인 수준의 효율이 팀 수준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개인 수준에서 관찰되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개인이 AI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팀 차원의 협업 방식에도 그대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서 Work Slop은 개인이 AI를 판단 없이 사용할 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용 방식은 결과물의 생성 과정과 판단 근거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결국 팀 안에서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를 흐릿하게 만든다.
팀 안에서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가 불분명해질 때, 각자가 AI로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모두가 AI를 활용해 빠르게 일하고 있지만, 그 방향은 연결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협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따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AI 도입은 개인의 효율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팀의 결합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시기, 전혀 다른 접근을 택한 기업이 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광고대행사 WPP 그룹이다. 전 세계 11만 명이 일하는 이 회사 역시 AI 전환을 추진했지만, 출발점부터 달랐다. AI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부터 다시 정의했다.
일의 구조를 재설계하기 위해 WPP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직무 재정비였다. 11만 명의 글로벌 직원에게 5만 5천 개의 직무 타이틀이 존재했고, 비슷한 직무를 가진 사람도 부서와 국가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이처럼 직무에 대한 정의가 분절된 상태에서는, 어떤 업무가 자동화 대상인지, 어디에 AI를 적용해야 하는지조차 일관되게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WPP는 AI 도입보다 먼저 일의 구조를 정리했다. 자체 AI를 활용해 5만 5천 개 직무를 600개의 핵심 역할로 통합했다.⁴⁾ 이는 전체 인력의 84%를 포괄하는 수준이다. 이후 이 역할들을 기준으로 750개의 태스크와 18,000개의 스킬을 매핑했다. 그리고 각 태스크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것, AI가 사람을 보조하는 것, 사람만이 수행해야 하는 것.
이 분류를 바탕으로 역할별 플레이북(Playbook: 역할별 AI 활용 방식과 책임 범위를 정의한 실행 지침)을 구축했다. 기존 직무기술서에서 출발해, 팀 내 역할로 재정의하고, 최종적으로 AI 활용을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3단계 구조다. 플레이북의 핵심은 각 역할마다 ‘어디까지를 AI에 맡기고, 어디부터를 사람이 판단할 것인가’를 명확히 구분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도구 도입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의 경계를 다시 설계한 작업이었다.
특히, 이 과정이 기술팀이 아니라 경영진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CHRO, COO, CFO가 함께 참여해, AI 전환을 기술 도입이 아닌 조직 설계의 문제로 다뤘다. 그 결과 역할별로 20~25%의 업무 여력이 확보됐고, 2025년 말 기준 75,000개의 AI 에이전트가 이 구조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 클라르나는 인력을 AI로 대체했고, WPP는 일의 구조를 AI의 역할에 맞게 바꿨다.
클라르나와 WPP의 차이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 조직은 지금 사람을 줄이고 있는가, 아니면 일을 다시 설계하고 있는가.
첫째, AI 자동화 전에 ‘역할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무엇을 자동화할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어떤 역할에 조직의 핵심 판단과 경험이 담겨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자동화 가능한 태스크와 조직 고유의 암묵지가 얽혀 있는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 구분 없이 자동화를 시작하면, 효율과 함께 판단도 사라진다. 클라르나가 놓친 것은 바로 이 지도였다.
둘째, 역할 재설계는 HR의 일이다.
WPP의 사례가 보여주듯, AI 전환에서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AI와 사람의 역할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 결정하는 것은 인사 설계의 문제다. 직무기술서와 평가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AI를 쓰면서도 기존의 방식으로 일한다. 그 결과 개인의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조직의 결과물은 연결되지 않는다.
셋째, 떠나는 사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관리해야 한다.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어떤 암묵지가 함께 빠져나가는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이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역량의 공백은 AI가 채우지 못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이는 단순한 인력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판단 능력을 잃는 문제다.
AI는 조직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사라진 역량은 더 느리게, 더 큰 비용을 들여서만 회복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전환의 속도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그리고 그 판단을 구조로 설계하는 것이 AI 시대 HR의 역할이다.